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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부인(竹夫人) / 김후자

 

 

재활용 쓰레기 더미 위에

죽부인이 누워계신다

다른 건 다 가져가도 사람들

죽부인에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한다

상처가 상처를 달래줬을 시간들이

구멍 뚫린 살 속으로 파고든다

조강지처 어머니도 버려진 적이 있었다

틈만 나면 밖으로 도는 아버지

휘파람 따라 둥둥 떠다닐 때

대숲에 휘청이는 바람소리만 안고

뒤척이던 어머니는

얇은 잠속에서도 늘 깨어있었다

아무것도 줄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

노을처럼 느적느적 돌아오신 아버지

버려진 아버지를 품에 안은 건

죽부인 당신이었다

곧은 성품,

흐트러짐 없는 당신이 누워계신다

움푹 패인 상처마다

괜찮다, 괜찮다 나지막한 소리

달꽃이 피었다

 

 

 

 

[당선소감] 시의 문고리를 잡고 제 글 중심에는 늘 어머니가

 

'시가 뭔지 아느냐'라는 질문엔 아직도 쭈빗쭈빗 말문을 잇지 못합니다. 이제 막 시의 문고리를 잡은 정도랄까요?

 

시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모호하고 불확실한 그 무엇에 나는 오늘도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아직 멀고도 먼 길이지만 제가 가는 이 길목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 제가 빚어낸 시들이 그분들의 가슴에 위안이 되길 바래봅니다.

 

시가 뭔지 문학이 뭔지 잘 모르시는 어머니, 그래도 당선 소식을 알리자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저의 글 중심에 늘 당신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시를 알게 해주신 제 주위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내일처럼 기뻐해준 선자와 언니, 오빠. 나를 안고 빙그르르 돌며 엄지손을 치켜든 딸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와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꼭 좋은 시인이 되길 바라던 나의 동생. 수정, 정화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다 못해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지난 시간들.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겠지요. 너무나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저에게 힘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 상은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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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죽부인' 통한 삶의 통찰력 돋보여 군더더기 없는 표현·선명한 주제의식 높이 평가

 

예년에 비해 수준 높은 응모작들이 많았다. 지나치게 멋 부리거나 애매모호한 작품은 줄어든 반면, 서정성 짙은 시들이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했다.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우경주씨의 '시계들의 소풍', 이경옥씨의 '해바라기', 김후자씨의 '죽부인' 등 세 편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우경주씨의 <시계들의 소풍>은 달리의 미술작품을 시적 소재로 삼아 인생에 은유한 점이 신선했다. 그러나 시계라는 소재에만 너무 국한한 나머지, 표현이 작위적이고 결구 부분이 안이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이경옥씨의 <해바라기>는 소재를 파고드는 집요함과 표현력은 높이 살만했으나, 시어의 명징성이 부족해 읽는 맛을 떨어뜨려 아쉬움을 남겼다.

 

심사위원들은 김후자씨의 <죽부인>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는 시적 표현과 비유에 노련함이 엿보였고, 선명하게 주제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쓰레기더미 위에 버려진 죽부인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어머니의 삶에 투영하는 방식이 억지스럽지 않고 능수능란했다. '움푹 패인 상처마다/괜찮다 괜찮다 나지막한 소리/달꽃이 피었다'와 같은 끝맺음도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김종철, 신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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