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상] 창궁의 도서관 / 정재돈

 

수십개의 무궁화가 햇살을 대출한다

시푸른 창궁은 나무들의 도서관

한 여름 무궁화 꽃이 몇 권의 태양을 빌려온다

햇살 속에 박혀 있던 미지의 새들

꽃들이 미소 지을 때마다

미쁘게 날아와 꽃잎 위에 둥지를 튼다

새들이 날아오는 동안

이슬이 새벽 언저리에 서서

꽃잎 위에 소담한 아침을 만들면

새들은 바지런히 꽃잎 깨우고

무궁화는 한동안 사유의 길을 걷는다

새가 부리로 여름을 읽는 동안

숙련된 손으로 책갈피를 넘기는 바람

쉴 새 없이 화단을 들락날락

고루한 생각 흙속에 집어넣고

신선한 새들 흡입하는 무궁화들

한 여름 속 붉은 빛이 한 움큼씩 자란다

새들은 땅 속 심오한 곳으로 날아가고

줄곧 척박했던 대지는 삽시간

사색의 배설물로 후줄근하다

머지않아 책으로 가득했던 창궁이

허연 속살 삐죽 내밀며

화사한 날개를 퍼드덕 댈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