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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길 끝에 서면 모두가 아름답다 / 이상윤

 

 

길 끝에 서면 무두가 아름답다

시간의 재가 되기 위해서 타오르기 때문이다

아침보다는 귀가하는 새들의 모습이 더 정겹고

강물 위에 저무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것도

이제 하루해가 끝났기 때문이다

사람도 올 때보다 떠날 때가 더 아름답다

마지막 옷깃을 여미며 남은 자를 위해서 슬퍼하거나

이별하는 나를 위해 울지 마라

세상에 뿌리 하나 내려 두고 사는 일이라면

먼 이별 앞에 두고 타오르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이 추운 겨울 아침

아궁이를 태우는 겨울 소나무 가지 하나가

꽃보다 아름다운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 아니겠느냐

길 끝에 서면 모두가 아름답다

어둠도 제 살을 씻고 빚을 여는 아픔이 된다.

 

 

 

 

 

[우수상] 라면을 끓이는 낙타 / 송유나

 

 

이층 창을 열면 그곳의 녹슨 가마솥에 오후의 햇살이 자글자글 라면처럼 끓는 사막이 보인다. 다 부서진 피아노 한 대와 등 굽은 부서진 의자와 문짝이 떨어진 수풀더미에 묻힌 냉장고와 녹슨 플러그가 빠진 마른 뿌리 찍찍거리는 화면의 텔레비전 한 대 보인다. 늙은 노인 하나 온종일 사막을 걸어가는 지친 걸음으로 무거운 수레를 끌고 언덕을 내려가는 것 보인다.

 

즐비한 간판들이 번쩍이는 발아래 보이는 불빛 바다에는 하루살이 윙윙거린다. 딩동딩동 이따금 바람이 초인종 소리를 울리고 가는 다 늦은 저녁이면, 늙은 낙타같은 노인은 검은 그으름이 올라오는 석유풍로에 라면 국물이 넘치도록 공터의 허기를 끓인다. 축축한 낙타의 무거운 그림자 밤새도록 빨랫줄에 흔들려 땀을 말린다.

 

생의 넘쳐나는 욕망의 찌꺼기들이 조개껍질처럼 널려있는 갯벌같은 공터. 노인은 쓸만한 패조개 같은 추억들을 골라내었을까, 쌀부대자루마다 배가 불룩하다.

 

찢어진 박쥐 날개 같은 함석지붕에서 간간이 사막을 날아오르는 헬리곱터 소리 들려온다. 저 어디쯤 오아시스 같은 숨은 천공하나 있는지 모래 바람에 이는 빈터에 폴폴 날리는 풀씨들 희미한 음표처럼 날아다닌다.

 

새동지 같이 높이 매달린 우체통 속에서 참새 한 마리 재잘거린다.

 

 

 

 

 

[우수상] 얼음불꽃 / 조연호

 

 

부지깽이 끝에 매캐한 연기가 걸려 올라온다. 겨우 입 벌린 한 송이가 되어 엄마곁엔 순산한 셋째 계집애가 누워 있었다. 손가락 다섯, 발가락 다섯, 생식기를 꼼꼼히 살피고 나서 엄마가 편히 눈을 붙였고, 누룩곰팡이가 아랫목을 따라 끊임없이 기어다녔다. 달그락거리는 배고픔들이 따뜻한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밤새 꿈 앞을 서성대고 있었다. 강이 빈한한 날을 지난다. 부지깽이를 쥔 엄마의 손바닥에서 뜨거운 불곷나무가 자란다. 뿌리며 가지며 아궁이 속을 확확 드나들고도 나무는 아직 차갑다. 누이가 몰래 자작시를 보여준다. 그 싯구에 내가 유치한 눈물 훔치다가, 세 번째도 딸, 아빠가 뒤집어 엎은 상을 훔치다가, 이 저녁은 느닷없는 평화속에 끝난다. 강이 투명하고 가벼운 수의를 입고 강 건너 천안댁 할머니를 부르러 간다. 미역 줄거리가 끓고, 부지깽이를 저으면 화르륵, 엄마들이 일어서다간 도로 누웠다.

 

 

 

 

 

[우수상] 축일 / 박지현

 

 

마른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좁고 가파른 세상을 지나

여린 숨결로 언덕길 오르는 저 양떼들

추운 눈향나무,

이제 그들을 맞을 채비에 바쁘다

바늘잎을 곧추 세우며 하늘 귀퉁이도 찔러보며

어깨에 잔득 힘을 넣는다

작은 숲이 눈뜨는 소리

긴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하며

모두 한쪽으로 귀를 열어 얼음을 녹여내는

아아, 소금밭 축일!

고개 젖히고 가슴뼈 활짝 넓히는

눈향나무, 바늘잎 수북히 덥히는 솜이불에

바닥에 닿을 듯 휘어진 가지가 숙연하다

흐린 하늘 구멍 뚫린 듯 퍼붓는 은총으로 더욱

환해진 나무 둘레엔 그레고리오 성가,

투명한 음계를 밟고 올라온 저 양떼들 부근

연둣빛 물로 찰랑댄다

아픔 세상을 사르륵 녹여낸다

저마다 지거나 들고 온 세상 짐들을

가볍게 내려놓는 성당 뜨락

눈향나무는 한껏 몸 부풀리며 서 있고

 

 

 

 

심사위원 : 고형렬, 이수화, 허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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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무 아래서 / 임하혁(임세한)

 

 

아버지는 죽어서도 여전히 키 큰 나무다

피가 돌지 않는 아랫도리는 썩고

그 곳으로 벌레들이 몰려와 집을 짓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다

가지마다 연둣빛 자식들을 올망졸망 매달고

크고 탐스러운 열매들을 키워내는 가을이면

아버지는, 한 그루 풍성한 세상의 나무였다

그러던 나무가 갑자기 잎을 떨궈버렸다

바지런히 물 뽑아 올리던 뿌리도 말라버리고

햇빛 맘껏 끌어당기던 연둣빛 눈들이

시들시들 땅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바람 많은 세상의 무수한 죽음 중에서

모든 소임을 다하고 눈을 감은 아버지

그 성스런 최후가 무척 평온한 듯 보였다

아버지를 닮은 것이 소원이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의 행적을 따라가자면

비바람 모진 세월 오래 견뎌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내가 짓는 집들은 너무 작고

눈보라를 감당하기엔 아직 허술하다는 것을

이 고요한 아버지의 비밀을 엿보려고

바람은 국망봉까지 찾아와

푸른 잔디의 등을 부지런히 쓰다듬는다

가난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잎을 피운,

단단한 열매로 세상을 장식한 저 나무들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도 거룩한 희생임을

나는 안다, 바람 많은 날 뒤돌아보면

여전히 아버지는 한 그루 나무라는 것을

 

 

 

 

 

[우수상] 달을 키우며 / 이인주

 

 

댑싸리꽃 울타리 너머 휘영청

보름달이 걸리던 밤

방문을 열고 아버지가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맥고모자 깊게 눌러 쓴

앞이 안보이는 아버지는 불쑥

내 안에서 보름달을 꺼내 가셨다

안돼요 아버지, 그건 하나 뿐인 제 목숨이란 말예요

입안에서 또아리를 틀던 말들은 끝내 맥없이 주저앉았다

한 십년은 족히 걸릴껴

산사열매 술내음 풍기며 아버지는

그대로 문지방을 넘어 가셨다

누가 마른 하늘에 벼락을 치는지

옆구리가 마구 결리고 이날 이즉까지 달랑 달 하나

궁글려 시간을 키운 죄밖에 없는 년

방석을 깔고 오금저린 비망록을 쓴다

돌려주세요 아버지 동강난 달이라도 좋으니

흠집난 자리에 곱게 풀칠을 하고

한 십년 너끈히 품어 키울 터이니

들썩이는 장강의 물살 속 떠내려가는 환한 달

나는 멍청히 문설주에 기대어

달쪽으로 기울어지는 몸을 가누며

환장할 듯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백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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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강씨 아저씨 / 정순옥

-고향방문·3

 

 

어이, 이제 오는가

근디, 누구다요?

홀로, 동네 어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너무 가벼워진 몸 허공에 기대고

휘익 지나버리는 사람과 차 뒤꽁무니에

꾹꾹 세월 도장이나 찍고 있다

 

무서리가 몇 번 내린 뒤였던가

추수 끝난 번든 논배미 짚비늘

사람들, 몽글몽글 뭉개진 볏단 사이 들여다보며

위아래 동네 골목골목을 뜨겁게 달구었던 일

윗동네 자전거 여자와 몇 번 달빛을 몰래 본 것

그것뿐이었다고,

하얀 손사래 내어젔던 그 초겨울 이후

제방공사 사방공사장 돌밭그늘에 묻혀서

그 성긴 돌 틈으로 바람 밀어 냇물 강물

흘려보내느라 명절에만 나타나던

내 친구 아버지, 강씨

 

햇빛 쨍쨍한 토요일 오후

동네 앞 논배미 마다 새 뿌리내린 볏잎들

파랗게파랗게 나풀거리는데

골목 어귀에서 비뚜루 돌담밑 해그늘 지고

해 묵은 짚비늘로

그냥 앉아 계시네 그렇게, 아저씨

 

 

 

 

 

[우수상] 티푸나 / 김정원

 

 

담양 수북에서 읍을 거쳐

순창에 이르는 24번 국도변에는

메타세콰이어가 나무굴을 이루고 있다

겨울이 되어야 침엽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 활엽수들은 이국정취를 풍기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큰 행복을 거저 준다

그런데, 30년의 행복을 삽시간에 앗아가는,

울화통이 터져 절로 욕 나오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고속도로 통과, 벌목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서명도, 사이버 공격도,

시위도 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밤낮 기계톱 소리 요란하더니

황토피 흐르는 길만이 벌렁 발가벗고 쓰러져 있고

자동차 안의 찌푸린 얼굴들이

속력을 낸다

 

돌이켜보면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길러주고 지켜준

나무 논 쌀 가축 물 공기 흙 하늘 박테리아…… 조상 같은

생명체들 아닌가

아름드리 나무를 인정사정없이 베고

큰길을 내는 것은

생명을 업신여기는 천박한 문명인의 일,

조상을, 마침내 나를 죽이는 일

아닌가

 

옛날, 아버지는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감 한두개씩 남겨두시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셨고

할머니는 대를 이어 지붕 위에 새들의 모이를 던져주셨지,

한 노승은 꼭두새벽 지팡이로 풀섶을 헤치며 가셨고

이 길을 따라 티푸나*의 깊이를 찾아서.

 

* 티푸나(Tipuna)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말로 조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우리가 일컫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의 조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 하늘, , 공기, 곡식, 짐승 등등, 즉 지금 나를 있게 해준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

 

 

 

 

아득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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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에서 제정 시행하고 있는 제4회 수주문학상 심사 결과 수원 임하혁(54)씨의 나무 아래서가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우수상에는 대구 이인주(37)씨가 달을 키우며1석을, 부천 정순옥(40)씨가 강씨 아저씨2석을, 광주 김정원(40)씨가 티푸나3석을 각각 차지했다.

 

지난 4월 공모 요강을 공고한 후 지난 81일부터 20일까지 접수한 결과 총 346명이 2,579편이나 응모했으며 2차에 걸친 예심과 2차의 본심 등 모두 4심을 거쳐 지난 26일 수상자를 확정했다.

 

응모자수나 작품의 질적 수준에서 유수의 전국단위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수주 변영로의 문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이 이번 공모를 통해 재확인되었다.

 

대상에는 500만 원, 우수상 3명에게는 각 1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되며 시상식은 928일 오후 3시 부천시청 대회의실에서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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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모기 선()에 빠지다 / 손택수

 

 

죽비(竹扉)

 

열대야다 바람 한 점 들어올 창문도 없이 오후 내내 달궈놓은 옥탑방

허리를 잔뜩 구부러트리는 낮은 천장 아래 속옷이 후줄근하게 젖어

졸다 찰싹, 정신을 차린다 축축 늘어져가는 정신에 얼음송곳처럼 따

끔 침을 놓고 간 모기

 

불립문자(不立文字)

 

지난 밤 읽다 만 책장을 펼쳐보니 모기 한 마리 납작하게 눌려 죽어

있다 이 뭣꼬, 후 불어냈지만 책장에 착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체액을 터트려서 활자와 활자 사이에 박혀 있는 모기, 너도

문자에 눈이 멀었더냐 책장이 덮이는 줄도 모르고 용맹정진 문자에

눈 먼 자의 최후를 그렇게 몸소 보여주는 것이냐 책속의 활자들이 이

뭣꼬, 모기 눈을 뜨고 앵앵거린다.

 

()

 

꼬리부터 머리까지 무엇이 되고 싶으냐 짙푸른 독을 품고 치잉칭 또

아리튼 몸을 토막토막 아침이면 떨어져 누운 모기와 함께 쓰레받기

속에 재가 되어 쓸려나가는 배암의 허물

 

은산철벽(銀山鐵壁)

 

찬바람이 불면서 기력이 다했는가 날쌘 몸놀림이 슬로우모션으로 잔

바람 한 줄에도 휘청거린다 싶더니, 조금 성가시다 싶으면 그 울음소

리 엄지와 집게만을 가지고도 능히 꺼트릴 수 있다 싶더니,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울음소리, 사라진 그쯤에서 잊고 살던 시계 초침 소리

가 들려온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간간

이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도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 저

많은 소리들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니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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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종로 / 김기연

 

 

마음의 외진 곳이 잔인하게 흩뜨려지는 새벽

나는 과묵한 종각을 지나서 종로 거리를 맴돈다

인도 곳곳에 쓰러져 있는 젊은 욕망 자루들을

밤을 버린 불빛이 난폭하게 비꼬고 있다

그들 위로 스쳐가는 살찐 야생 고양이들이

본능에 굶주린 듯 괴성을 할퀸다

나는 쉬지 않고 걸어가며

지친 다리에 우울한 숨소리를 기대보지만

마음은 구겨져 거리에 떨어진다

보도에 짓이겨진 쓰레기에 자신도 섞이고

마는 것을, 나는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었던

지난 기억들까지 쏟아 내며 빈속을 움켜쥔다

내가 쓰러진 자들을 밟고 서 있는 것은

지금 다른 누군가가 나를 잔혹하게

밟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위선의 거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아침을

짖어대고, 야광 띠를 둘러맨 사람들이

밤의 부스러기들을 쓸고 있다

한 남자의 심장 박동이

다시 종각을 지나며 요란하게 종을 친다.

 

 

 

 

 

[우수상] / 고경숙

 

 

개나리 흐드러진

미군부대 담장엔

하릴없이 풍선껌 불어대는 아가씨

기대서서

봄볕만 비벼댄다

발밑엔 납작 엎드린 바람 한 자락

두리번거리다

여기쯤일까

시간이 머문 곳

오가는 차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고함을 지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늘 운세는

소득이 없이 분주하다 했는데

주소불명으로 되돌아온

고향 소식도 자꾸 걸리고

아슬아슬한 영혼들이

고양이처럼 도시를 기어다니는

봄은 화사한 슬픔이다

고독한 기다림이다

 

 

허풍쟁이의 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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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호명呼名 / 김효정

 

 

익명의 나무들에게 눈 맞추던 봄햇살이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이름 불리워질 때마다

연록색 잎 비죽 내밀거나

노오란 웃음으로 한껏 흐드러지거나

도도한 미소로 시선 날렵하게 치켜뜨면서

저마다 이름표 내걸었다

 

아파트 담장 아래 뻥튀기 아저씨도

봄볕이 불러 나왔다 보다

동그런 송잡이에 햇살 자락 감아 돌리면

후끈 달아오른 공기 아른아른 녹아내리고

 

'뻥이오~' 외침이 하얗게 퍼졌다

담장 너머 짐짓 딴청 피우던 나무도 덩달아

옥수수알만한 꽃망울 펑펑 튀기며

풍성하게 매달린 향기로 벚꽃이라고 퍼뜨렸다

 

그 향기 날 부르는가 싶어 마음 마저

하얀 쌀 튀밥처럼 부풀어 나갔니

누가 호명하였을까

그늘진 담벼락 선거 벽보엔

몇 번 보았음직한 낡은 미소들

'뻥뻥' 소리만큼이나 커다란

이름표 달고 줄줄이 먼저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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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여게가 도솔천인가 / 문채인(문성해)

 

 

칠성시장 한켠

죽은 개들의 나라로 들어선다

누렁개, 흰 개 할 것 없이 검게 그슬린 채

순대처럼 중첩되어 누워있는 곳

 

다 부질없어라

살아서 쏘다녔던 거리와

이빨을 드러내던 증오

쓰레기통 뒤지던 욕망들이

결국은 이 몇 근의 살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니

 

뒹구는 눈알들은 바라본다.

뿔뿔이 흩어져 잘려 나가는 팔다리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날렵하게 춤추는 저 검은 칼을,

 

이제는 검은 길을 헤매다니는 일은 없을 거야

발길에 차여 절뚝거리는 일도

마음에도 없이 꼬리 흔드는 일은 더더욱....

 

좌판들 위에서

꾸덕꾸덕해진 입술들이 웃는다

이제는 물고 뜯는 일 없이 한통속이 된

검은 개들의 나라에서

 

살아서 오히려 근심 많은 내가

거추장스런 팔다리 휘적이며 걸어간다.

 

 

 

내가 모르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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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겨울숲 우화 / 김충규

 

 

겨울 숲이 뜨겁다 나무들이 서로서로 끌어안고 있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숲속의 좁은 길이 내 발자국을 보듬고 있다 새떼가 후루루 날며 하늘의 푸른 심줄을 당긴다 흙 속 잠들었던 벌레들이 고개를 내민 채 후후 숨을 쉰다 구겨진 햇살이 나무의 밑동을 감고 있다 숲은 고요한데 느닷없이 짐승들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숲 밖으로 말발굽소리 들린다 이를 악문 비명이 찢겨져 들린다 탕, , 총성이 연속적으로 울리고 산이 몸을 뒤척인다 하늘의 심줄을 문 새들이 뚝뚝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나무들이 일제히 빈혈을 일으키며 감고 있던 어깨를 푼다 내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온 바람이 잔기침을 토하며 새들의 빈집을 흔들어 보인다 그 속에 갇혀 있던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며 숲의 고요는 흩어지고 총성에 섞인 말발굽 소리들 날뛴다 빠르게 해 기울고 온순하던 바람이 얼굴을 벗은 채 칼을 물고 우우 미친 듯 숲을 빠져나간다 숲속은 일순간 어두워지고 숲 밖은 차츰 아우성으로 깊어간다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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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조롱박을 타다 / 유종인

 

 

조롱박에 실톱을 들이댔다

덜 익은 하얀 씨앗들,

뻐드렁니처럼 햇살에 웃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이 갈라져 나왔다

나를 대신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 바가지를 쓰세요

한 몸으론 그냥 썩을 몸,

갈라져 제 속을 파내야

누군갈 오래도록 퍼먹일 몸!

조롱(嘲弄) 때문에 모든 걸 끝낼 순 없다

먼저 타낸 갈색의 씨앗들

담뱃진 잔뜩 낀 이빨로 웃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재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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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문학상은 <논개>의 시인 수주 변영로(1897~1961년) 선생의 詩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됐으며 부천을 빛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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