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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호 구역  / 전인배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과, 3학년)


람보르기니가 지방 국도에서 사라진다 반듯한 밑줄을 그으며 증발해 버린 람보르기니는 악어주둥이 같은 주머니에 고여 있다 시속 222Km의 그림자를 끌고 소화되지 않을 속도로 덩어리져 있다 모든 주머니는 손가락을 그림자로 만든다 밑바닥에 달린 지퍼를 길게 그으면 그림자 속에 몸을 말아 넣은 아이가 둥근 다리로 이륜 바퀴를 만든다 할리 데이비슨의 배기량으로 바탕이 컴컴한 고동을 몰며 주머니를 긁는다 동전 꺼내듯 건져 오르던 아이는 실밥처럼 너덜거리는 왼쪽 다리의 균형을 맞춘다 과속 비보호 구역을 걷는 어스레한 걸음이 그림자 낯이다 안개 눅눅한 도로를 지나 벽장 속에 몸을 누인다 어머니는 고라니의 따뜻한 피로, 붉은 벽장을 들어낸다

 

 

 

 

 

[심사평]

 

시인과 독자 사이의 소통, 혹은 작품 독해의 문제가 한동안 시단을 뜨겁게 달구더니 그 기세가 한껏 누그러진 듯하다. 소통하고 싶지 않은 욕망도 소통의 한 방식이라고 본다면, 이즈음의 현상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라기보다 잠시 잠복기로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대학생들의 시도 그러한 기류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괴기스러운 말도 포즈도 없고, 일단 눈에 띄고 보자는 객기도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유심히 살펴본 것은 다섯 명의 작품이다. [학꽁치] 외 2편은 군데군데 빛나는 풋풋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이 사람은 사유의 군더더기를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상과 더욱 치열하게 대면해 결투를 벌일 준비를 하자. [건강한 이력서] 외 2편은 한 편의 시 안에 나름대로 적절한 서사를 구성해서 시를 전개하려는 의욕이 있다. 그 의도는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말의 밀도가 성기다. [새] 외 2편을 응모한 사람의 문장은 투명하다. 시를 어떻게 긴장시켜 끌고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는 듯하다. 때로 그 긴장이 지나쳐 말의 맥락을 놓치고 있는 게 흠이다.

 두 사람의 작품을 놓고 오랜 저울질이 필요했다. 그 하나가 [옹관묘] 외 3편이다. 활달하면서도 풍성하고 힘이 좋은 언어가 매력적이다. 게다가 만만치 않은 감각과 사유를 겸비하고 있다. [옹관묘]에서 ‘육신의 안쪽이 내세’ 라는 표현으로 점잖은 성찰에 이르고 있는 점은 이 사람의 내공이 상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 사람을 당선자로 뽑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깨에 불필요한 힘을 잔뜩 싣고 타석에 들어선 타자라는 느낌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앞의 안정적인 언어보다 불안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비보호구역] 외 5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현재의 성과보다 미래의 가능성에게 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당선작 [비보호구역]은 소품이지만 개성적인 상상력이 과히 일품이다. 주제를 언어의 안쪽으로 숨기는 솜씨도 뛰어나다. 이 시의 문장들은 하나씩 따로 끊어 읽어도 환각 같은 즐거움을 준다. 생의 통증을 이미지 안에 새겨 넣을 줄 아는 것도 호감이 간다. 함께 응모한 작품 중 [눈보라]도 신뢰를 더해주는 데 한몫했다. 축하한다. 다만 과도한 외국어나 외래어의 사용은 자제할 일이다. 한국어로도 충분히 우리를 낯설게 만들 수 있으므로.

 

심사위원: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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