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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 김윤희(서울예전 문예창작학ㆍ2)


1.


옥탑방, 창에 대고 입김을 불면 하얗게 얼어붙은 한 무리 되새떼가 날아오른다

북쪽은 어디일까. 성에가 녹은 자리로 골목을 굽어본다. 바람이 허랑한 몸속을 맴돌아 나가고 여린 날개뼈가 결빙 음을 내며 다시 얼어붙는다.

새들의 흰 뼈가 쌓인다. 하늘은 이름 없는 무덤처럼 흐려진다.


2.

나는 잠 속에서 날개를 포륵거렸다.

시신의 버드러진 기운처럼 겨울비가 내렸다.

나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것일까. 으르르딱딱- 이빨을 부딪치면 흰 사기들이 창틀에서 부서져 나갔다. 약한 것들은 제 몸이 부서질 때마다 소리를 냈다.

내가 깨뜨린 사금파리가 발밑에서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3.

해는 산그림자 속으로 떨어진다.

창에 볼을 문대면 푸릉- 콧김을 내는 짐승이 날개를 젓는다.

飛上, 飛上… 나는 가만히 손가락을 대고

손끝에서 반짝,

보안등 아래 물방울이 조랑조랑 달린다.

세상의 기울기가 다른 곳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새들은 북쪽으로…

손톱자국이 나게 유리창을 긁으면 맹폭한 짐승이 부푼 날개로 쩡, 하고 날아오를 것 같다.


온종일 하늘은 어둡고

실핏줄 뻗치는 성에꽃, 눈부시게 터진다. 

 

 

 

 

 

[심사평]


시는 기억을 재구성해서 언어로 드러내는 양식이다. 다시 말하면 기억의 형상화 과정이 시쓰기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조건이 따라붙는다. 하나는 기억 혹은 체험 내용의 선택과 배제의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언어의 형상화가 표현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인식의 문제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은 시인의 체험 내용을 알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현란한 언어의 운용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독자는 무엇보다 시를 둘러싸고 있는 시적 인식의 놀라움하고 은밀하게 내통하고 싶어 한다. 인식의 힘을 보여주는, 인식의 육박전을 펼치는 작품 하나 어디 없나, 하고 유심히 응모 작품들을 읽었다. 시를 고만고만하게 잘 쓰는 사람은 많은데, 놀라운 상상력으로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시는 드물었다. 마지막까지 여러 번 들었다 놓았다 한 시는 모두 여섯 사람의 작품이다.

 ‘어머니의 상자’와 ‘빈집’, 그리고 ‘소류지’ 세 편은 시에서 풀어 보이는 어머니와의 갈등이나 고통이 현실에 적절하게 밀착하고 있다. 그것은 시적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데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실의 누추함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길 줄 아는 힘도 느껴진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안이한 화해를 서두르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다.

 ‘겨울로 가는 길’은 나무라는 대상을 통해 스스로 인내하는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매우 안정된 호흡에다 “밖으로는 길을 덮고 속으로는 길을 내는 저 몸부림”처럼 눈길을 끄는 구절도 곳곳에 보인다. 앞으로 상상력의 확장에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은행나무 아래서’는 이미지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감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감정 조절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그런데 작자는 마지막 줄의 ‘세월’이라는 시어 하나가 시의 격조를 얼마만큼 떨어뜨리는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겨울 풍경을 흠잡을 데 없이 잘 버무린 ‘성에꽃’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말을 절제하는 기량과 무리 없는 묘사력을 무엇보다 높이 샀다. 함께 응모한 시도 만만찮은 솜씨를 발휘하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부디 좋은 시인이 되기 바란다.

 

심사위원: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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