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골의 호랑이 사냥 / 김재현(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ㆍ1)
벵골의 호랑이 사냥꾼이 되고 싶었다.
갠지스와 브라마푸트라의 물줄기가 쌀을 익히는 저녁,
어딘가에서 노을처럼, 핏빛의 포효가 숲을 적시면
사냥꾼들은 엽총 한 자루를 쥐고 일어섰을 것이다.
호랑이의 두 눈은 긴 세월, 날카롭게 벼려진
달의 색채로 번들거렸고
몸을 뒤덮은 호반은 벵골만 나무의 뿌리처럼
호랑이의 노란 털을 가로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강이 땅으로 스며들어 곡식을 키우듯,
체액에 젖은 근육으로 두려움이 스밀 때
몸 속에선 한 떨기의 날카로운 열기도 고개를 들었다.
사냥꾼들은 그것을 용기라 불렀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냥꾼들의 용기를 사랑했을 것이다.
우리가 벵골의 호랑이 사냥꾼이 되었다면, 오늘은
갠지스와 브라마푸트라의 물줄기가 땅을 적시는 저녁이었고
황금빛으로 번진 벵골만의 쌀을 추수하는 날이었겠지만,
벵골 호랑이는 멸종했고, 우리는
오직 한 자루의 펜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호랑이가 있을 숲도, 호랑이도 없이
세상에는 이제 사냥꾼들의 총 드는 습관만 남았다.
호랑이가 없었으므로, 총은 겨누어선 안 될 곳을 향했고
우리는 유약해서 우리끼리의 펜을 들고 싸운다
강이 땅으로 스며들어 곡식을 키우듯, 체액에 젖은
근육으로 두려움이 스며, 한 떨기 열기가 피어났지만
우리는 그것을 용기라 부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갠지스와 브라마푸트라의 물줄기가 흘러도 지금은
敵 없는 敵意가 호반처럼 세상을 더럽히는 저녁,
벵골 호랑이 사냥꾼의 총 뽑는 습관만이 남아 있는 저녁,
사람들의 몸 위로 벵골 호랑이의 호반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나
호랑이를 사냥하는 그 뜻만을 유전 받은 우리는
벵골만을 지키기 위해 한 편의
詩따위를 쓰는 것밖엔 할 수 없는 저녁인 것이다.
[심사평]
지금 우리 시단에는 타자가 없는 세계에 묻혀 있는 떨거지가 있다. 세상에 살되 사진의 언어만으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타자의 언어가 다가갈 열린 문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진실은 자신의 진실일 뿐이다. 그들의 내면은 난잡하다.
이 같은 소통 없는 세계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난날의 어느 시기가 너무 큰 담론들에 짓눌려 있던 반동이 너무 길다.
바로 이런 시단의 풍속이 대학신문 응모작품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의 가능성에는 다른 풍속을 반드시 낳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 1회, 2회 응모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 감회와 함께 이번의 예선 작품을 보게 되었다.
세 개의 가작도 골라보았으나 부득이 한 개의 당선작만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당선작이 있다. ‘벵골의 호랑이 사냥’이다. 이것을 주저 없이 추천한다.
시풍이 있다. 시풍이 위풍당당하다. 문체가 역동적이다. 자기 속의 어떤 정서적 배설이 아니라 탁 트인 야생에의 투신이 생동감을 일으킨다. 또한 인류사적 사고가 담겨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에도 소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토록 커다란 서술행위가 계속되기 바란다.
심사위원: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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