陰 火
냉장고 위에 눈이 내린다
삭은 동체로 폐가를 확인하며
어떤 문이든 문은 과묵해야 한다는 듯,
집에 불을 지르고 동반자살했다는
고가도로 밑 폐가에서 나는 눈을 맞는다
화재의 잔재로 남아있는 보일러관은
옛 건물의 윤곽을 기억하는지 바람에
속을 사시나무 같이 긁힌다.
나는 발목 시리게 살아서 거기 그대로인
주춧돌과 함께 겨울 하늘을 바라본다
빈 마당의 마른 우물에
눈망울을 적시기 못하는 검은 상처들
내린 눈보다 내리고 있는 눈보다
우우 신음 소리 낮게 흘리고 있는
겨울 하늘이 자전거 위에 내려와
숨은 치정을 확인한다.
끊어진 체인 위
사선으로 어긋나고 있는 것들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살대만 남은 안장 위의 눈
[심사평]
계명문화상에 응모한 3백여 편의 시를 예심없이 읽었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는 줄었으나 수준은 대체로 높아진 것 같았다. 이것은 학생들의 관심이 문자 문학에서 영상 문자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양은 줄고 질은 높아지는 일반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심사 기준을 글쓴 이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했느냐 판단하는 형상성, 내용의 구체성을 살펴보는 구체성, 표현된 생각의 깊이를 보는 사상성에 두었다.
좋은 시는 우선 생각의 크기나 깊이보다 생각하는 바를 얼마나 시의 형태로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과 관계가 있다. 그것이 휼륭하고 깊은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시의 형태를 띄지 않고서는 말 그대로 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 때 초심자의 경우 이 점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응모작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대부분의 시가 말장난으로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해괴한 표현, 전혀 말도 안되는 상황설정, 가벼운 장난끼로 일관하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새롭고 발랄하기 보다는 경박하고 천박한 표현들이 많은 데 우려를 금하기 어려웠다.
<陰火>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공동묘지 등에서 볼 수 있는 귀신불을 뜻하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세계를 비극적으로 보고 있다. 이 비극적인 서정이 다른 작품들의 가벼움과 구별되면서 작품에 진정성을 부여하고 있다.
어둡고 우울한 젊은 날의 정성, 시대의식의 폐가에 내리는 눈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함께 투고한 나머지 두 작품에서도 만만찮은 시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축하와 함께 더욱 정진할 것을 부탁한다.
김용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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