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의 엉덩이 / 안주철(배재대, 국어국문학)
지나친 여름이었지만 낙동강은 강변을 벗어놓으며 흘러가고
돌들은 물 밖으로 빠져나와 엉덩이로 하늘을 비스듬히 받쳐
들고 데굴데굴 웃는다. 흑염소들이 겁 없이 강물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산과 구름을 묶을 만큼의 강줄기는 흑염소가
움직이지 않을 때마다 몸을 묶고 놔주지 않는다. 낮은 물 속
의 형상을 그림자로 보는 흑염소가 강물의 허리를 혀로 간
질어 물 밖으로 빠져 나온다.
강을 따라 걸어가면서 걸음마다 돌들은 채여도 엉덩이 속의
고개는 들지 않았다. 이마엔 몇 빛들이 담을 씻어내리고 돌
들의 엉덩이를 밟을 때 발바닥이 자꾸 웃는다.
고개를 숙여가는 담장 밖으로 큼지막한 돌들이 고개를 들것
도 같은 흐린 하늘 아래서 바라 보는 강.
늙은 강물이 절벽을 손으로 짚으며 흘러갈 때 굽어도는 강
안쪽 넓어지는 강변으로 갈대들이 바람을 털며 걸어다니고,
돌들은 고개를 엉덩이 속에 숨기고 강이 흘러가는 곳을 돌
돌돌 굴러가며 제 이름을 엉덩이로 굴린다.
[심사평]
우리 시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일까? 21명이 쓴 100편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젊은이들의 시가 그 답을 찾아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였다. 설혹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지향점을 엿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확실히 요즈음의 시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조용히 소곤거리고 있었으며, 앞을 향해 달려 가기보다는 천천히 걸어 가고 있었으며, ‘우리’의 폭넓은 연대를 꿈꾸기보다는 ‘나’의 작은 존재를 들여다보는 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특히 세상의 풍경과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그것은 상투성을 벗어나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적잖게 남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신선한 관찰력과 눈부신 언어의 조탁력에도 불구하고 감동의 불꽃이 튀기는 시들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삶의 진정성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대목을 이들의 시가 놓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대형 슈퍼마켓의 형광등 불빛을 받고 있는 야채는 얼핏 보기에 신선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말로 신선한 것은 지금 밭에서 뿌리를 박고 있는, 아직 뽑히지 않은, 더러는 몸에 흙물을 묻히고 있는 채소들이 아닐까?
저마다 고른 수준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손에 남은 것은 다섯 사람의 것이었다. ‘몽유도원도’는 깔끔한 작품이다. 시적 화자가 자기 주변의 여러 삶들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함께 응모한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시의 표면에 시인의 의도가 과다하게 노출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고금도 뱃길’은 ‘그리운 일 아직 멀어 섬으로 솟아있는 것이다’와 같은 읽을만한 부분이 시를 반짝이게 하고 있지만, 시의 주제가 한 곳으로 모이지 못하고 있다. ‘남해 이야기’는 이야기 전개 솜씨가 능숙하지만 능숙한 게 오히려 결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우다.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느낌을 시에서 빨리 지워내기 바란다.
‘돌들의 엉덩이’를 당선작으로, ‘왼손’을 가작으로 뽑는다. ‘왼손’은 군데군데 설익은 표현들이 섞여 있어 눈에 걸리나 체험에서 나온 작은 깨달음이 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앞으로 좀더 시의 말을 줄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목부터 재미난 발상을 보여주는 ‘돌들의 엉덩이’는 활달하게 펼쳐지는 상상력과 허세를 부리지 않는 언어 감각이 시인의 시적 재능을 짐작케 한다. 함께 보낸 다른 시들도 이 사람의 역량이 만만찮다는 것을 보증하고 있다. 좋은 시를 더 많이 쓰고, 또 쓰기 바란다.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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