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인력의 법칙 / 황현진(계명대 문예창작학전공·4)
어느 날은 멀뚱멀뚱 달을 보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손가락에 달을 걸어본답시고 툭툭 쳐보기도 하고
옛다 똥침이다 푹푹 찔러도 보다가
그날 밤 잠들면서 딴에는 우습다고 헤벌쭉헤벌쭉 거리다가
아직도 창 밖에는 달이 있는지라
아하, 내가 달을 갖고 논게 아니었구나
저놈이 뉴턴 앞에서 사과를 떨어뜨리듯 내 손가락 하나를
당겼다 밀었다 한 게로구나 싶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울 엄마 뱃속으로 나를 밀어 넣은 것도 너였고
때마다 뱃속 가득 밀물되어 들어와 두둥실 나와 놀기도 하고
썰물 때가 되면 나를 비틀어 끄집어내던 게 다 너였구나
네가 줄어들수록 둥글둥글 내 배는 부풀어오르고
내 뒤를 따라 다니는 긴 그림자가 날 잡아당기는 네 손목인지도 모르고
나는 여태껏 살아왔는데
달 안에서 절구 찧으며 산다는 옥토끼는 어디 가고 없고
탯줄을 그네 삼아 노는 갇힌 아이만이 달빛에 어룽거리는데
돌아누워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면
너로 인한 지난 스무 몇 해의 세월은 탱탱하게 잡아당긴 쿠킹랩 같은 건지도 몰라
[심사평]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시는 고도로 경제적인 이야기 방식이다. 그것은 물론 말수를 줄임으로써 도리어 의미 내용을 확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감정과 관념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기를 삼가고 매개물을 빌어 넌지시 둘러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시적인 이야기 방식은 언제나 구체에서 추상으로, 감각에서 깊이로, 평범에서 비범으로,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사소함에서 소중함으로 나아가는 데 있으며, 그 역방향은 단적으로 말해 비시적이다. 그것은 총알이 뚫고 나간 시체나 바늘구멍상자와 같아서 들어오는 길은 좁아도 나가는 방향은 놀랍도록 넓은 것이다. 혹은 그것은 작은 톱니바퀴처럼 저보다 몇 배 큰 톱니바퀴를 돌게 하며, 지렛대나 도르래도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것과 같이 일상과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되며, 그를 통해 일상과 자연에 가리어진 삶의 속살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입을 다물고 배로 웅얼거리는 복화술처럼 오랜 수련과 단련을 통해서만 터득되는 것이다.
예심을 거쳐 선자의 손에 들어온 작품들의 태반은 학생들이 아직 시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감각을 충분히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 결과 사회현실의 질곡과 기층민중들의 곤궁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의 본연이라고 생각하거나, 문맥을 비틀고 말과 말 사이의 간극을 넓힘으로써 독해 불가능한 독백을 흘려 보내는 것이 시의 위의라 믿는 오해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다만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았던 “평화 아파트”와 당선작 “만유인력의 법칙”은 그러한 오해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비사막”, “횡단보도에 버려진 책”과 더불어 “평화 아파트”를 선보인 학생은 요즘 많은 시인지망자들과 마찬가지로 기형도의 시문법에서 자양을 흡수한 흔적을 보이는데, 어디서나 이미지의 주먹을 날리는 날랜 상상력과 패기 넘치는 무장무애한 어법이 장차 유능한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비유컨대 초보자의 바둑처럼 여기 저기 들쑤셔 이미지의 집을 지으려 하나 끝내기를 제대로 못 하고, 공사가 중단된 가건물의 상태로 시를 분양하려는 듯 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당선작 “만유인력의 법칙”은 재기발랄한 어법과 신선한 이미지 채집으로 단연 주의를 끄는 작품이나, 때로 그 재기와 신선함이 장난기와 말놀음으로 치달아 아직 영글지 못한 과일을 따낼 때처럼 아쉬움을 남긴다. 마치 공을 가지고 노는 강아지처럼 먼 하늘의 달과 장난질하면서 그것이 우리 자신의 생식과 배태, 성장과 생존에 작용하고 있음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는 대목은 보잘것없음에서 의미심장함으로 나아가는 시어법의 방향을 제대로 짚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말미에서 ‘탱탱하게 잡아당긴 쿠킹랩’의 비유는 지금 이곳의 일상으로부터 시를 낚아 올리는 글쓴이의 만만치 않은 재주를 드러내 보인다. 다만 지나치게 연상에 의존함으로써 행과 행,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군더더기 부분을 제대로 깎아내지 못한 결함이 눈에 띄는데, 이는 함께 선보인 ‘손가락이 아프다’, ‘나른한 주말 오후’에서도 지적된다. 그러한 결함으로 인해 나날의 체험들로부터 길어 올리는 시의 두레박이 텅 비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수상자의 정진을 빈다.
이성복(문예창작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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