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봉지 / 이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선생님 지금은 손을 들어도 되나요? 이런 질문까지 손을 들고 해도 되나요? 부족하다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똑똑똑똑, 문을 두드립니다. 뼈가 아픕니다. 오늘따라 더요.
안녕하세요, 인사합니다. 빈손을 흔들어 안부를 묻습니다.
문득 손을 든 나를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걸어갈 때 나의 냄새가 다른 사람에게 가기 전에 또 다른 나는 멈춰있고. 멈춰있고 싶은 것처럼.
그런 말들은 넘친다고요,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좀 예술적으로.
보이는 것 말고 집중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 이건 지워야 할 문장입니다. 무언가 있을 것 같지만 없는 문장이에요.
오늘은 많은 선생님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어쩐지 동시에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니 하다가 눈물을 흘릴 수도, 추모의 입을 열 수도 없습니다.
어제 동생이 그랬어요. 언니, 나 비닐이 생겼어. 아장아장 걸어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그 안에 어떤 것이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맨 처음 비닐을 기억해주면 좋았을 텐데. 언젠가 비밀에서 풀려나도록.
검은 봉지 안의 것들의 폭로. 더 이상 검은 봉지도, 폭로라는 단어도 필요하지 않는 세상이 만들어질 겁니다. 선생님이 일순간 사라졌다는 것을 기억할 테니까.
들었던 손을 내립니다. 한동안 볼륨을 낮추고 몸의 무게를 낮췄습니다.
도로 위로 비닐봉지 여럿이 떠오릅니다. 온몸을 뒤집고, 봉지 안의 추진력으로.
존경하는 선생님, 나는 문득 도로 위의 움직임이 더 배울만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존경하는 세력이 한 줄 두 줄 줄어들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더 이상 손 들지 않고, 도로에서.
'대학문학상 > 계명문화상(계명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7회 계명문화상 당선작 (0) | 2018.07.15 |
---|---|
제36회 계명문화상 당선작 (0) | 2018.07.15 |
제35회 계명문화상 당선작 (0) | 2018.07.15 |
제33회 계명문화상 당선작 (0) | 2018.07.15 |
제32회 계명문화상 당선작 (0) | 2012.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