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 정금희
그것은 선명한 결을 잘 익힌 맛이다
나의 하얀 말도 새벽 바다 동쪽 하늘을 잡아당긴다
잡아당겨도 그대로 서 있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
어린 바다 뿌리를 이리저리 파 본다
바위 속에서 물의 보푸라기를 잡는다
그 보푸라기를 비벼 차를 끓이면
주전자 속에 끓어오르는 물의 시간
폭포소리가 보인다
소나무 송진향이 보인다
잠이 정수리를 타고 내려온다
고향의 뿌리를 천천히 잡아당긴다
새벽 닭 울음
먼 빛의 진동소리가 보인다
그 맛이 뾰족뾰족하다
[당선소감]
"밤마다 사색하고 성찰하고 대화하는 계기로 삼아"
예배 후 밖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쳐진 벚나무들이 일제히 불 켜고 내게로 다가왔다.기쁜 순간이 내게도 이렇게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는구나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늘 낮은 데로 오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섬진강 줄기의 내 다락방 창에선 은어가 파닥거린다. 빛살에 놀던 내 어린 시어들도 보인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그 시어들이 하늘에다 화살을 쏘고, 반야봉 소나무 바람 속에다 옹알이를 풀어놓고 있다. 이제 얼마나 영혼을 갈아야 움틀지 모를 씨앗 하나도 깊은 곳에다 묻어두기로 한다. 밤마다 그 씨앗 곁에서 사색하고 성찰하고 대화하리라.
재미있는 상상력과 독특한 메타포 구사법을 일깨워주신 김영남 선생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구례문학 고 정기석 선생님, 정동진역 회원님들, 직장 선후배들, 경희언니,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께 장미 다발을 바칩니다.
기도 제목인 철없는 딸이 어머니께, 희미한 별로 웃으시는 아버지께, 시인임을 자랑하는 혜인 윤호 언니와 사랑하는 동생들에게 이 기쁨을 전하며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글을 예쁘게 보아주신 오승철 선생님을 비롯한 심사위원 선생님들, 뉴스제주 영주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깊이 뿌리 내리라는 당부를 자양분으로 튼튼하고 훤칠한 나무로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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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삶의 이력, 우리 생의 아름다운 집 한 채
2011년 뉴스제주 ‘영주일보 신춘문예’는 전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작품을 보내왔다. 심사위원들은 267편에 이르는 응모작을 윤독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민족문학인 시조에 대한 열정이, 바다 건너 탐라까지 불꽃처럼 타올랐기 때문이다.
제주지역 신춘문예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응모하신 많은 분들이 제주의 정서를 작품에 펼쳐 보였다. ‘해녀, 용두암, 오름, 서귀포, 우도’ 등이다. 작품을 무리하게 이끌고 가느라 그러한 시적 주제들이 큰 결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생활 속에서 발견한 소재들을 긴강감 있게 끌고 가는 응모작들이 눈에 띄었다. 감상을 진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치밀한 묘사와 관찰로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최종심에 오른 임태진의 「제비집」, 이창선의 「섶섬」,오창래의 「우도 생각」, 문제완의 「石衣, 바위가 옷을 입다」, 백점례의 「물의 길은 희다」가 올라왔다.
「우도 생각」은 우도를 어머니와 아버지의 절규로 중첩시키면서 시적 발상을 전환하였으나, 언어를 함축시키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石衣, 바위가 옷을 입다」는 4수로 이끌면서 시적 전개는 무리가 없었으나 부분 부분을 설명으로 처리해 전달의 힘이 약했다.「물의 길은 희다」는 시조를 다루는 부드러움의 힘은 앞섰으나 주제를 살리지 못해 난해한 면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임태진의 「제비집」과 이창선의 「섶섬」으로 압축되었다. 이창선의「섶섬」은 나뭇잎 섬으로 귀결하면서 그 풍경을 서귀포와 연결, 전개한 사유의 힘이 있었다. 예컨대 임태진이 다른 작품 「화재주의보」연작에서 보여준 삶의 비명과 탄식처럼. 그러나 「제비집」에서 사글세의 남루한 살림과 삶의 여정을 이입해 특히 “해마다 삶의 이력에 둥지를 틀고 산다”에서 볼 수 있듯이 춥고 가난한 우리 생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의 밀도를 더 높이 평가했다.
심사 결과, 당선작으로 임태진의 「제비집」을 뽑았다. 앞으로 더 깊은 사유와 서정을 펼쳐 시조문학의 재목이 되기를 바란다. 끝까지 남으신 분들의 작품에도 깊은 애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이번 계기로 도약의 시간을 갖도록 부탁드린다.
- 심사위원: 이승은 · 박현덕
[학생부 당선자] D-day / 송혜경
열 뚜우ㅡ시!
요 귀여운 꼬마아가씨가
여태 잠을 안자고 내게 시간을 알린다.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화면구석에 메모 하나가
얄밉게도 내게 오늘의 일정을 알린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눈 아래 검은 그림자가 내 얼굴을 집어 삼킨다.
잔잔한 여드름이 뚫고 올라와 자리한다.
책상을 살펴본다.
구김 없이 빳빳한 문제집이 나를 얄밉게 쏘아본다.
다 듣지 못한 동영상 강의가 자장가를 불러준다.
내일을 위해, 아니 오늘을 위해
이제 그만 따뜻하게 데워진 전기장판으로 달려가
그간 매고 다니던 피곤을 내려놓고 싶다.
한ㅡ시!
잠 좀 자라, 꼬마아가씨야!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화면구석에 메모 하나가
얄밉게도 내게 오늘의 일정을 알린다.
오늘의 일정 : 중간고사 D-day.
[시조 당선작]
제비집 /임태진
푸른 오월 하늘에 제비 한 쌍 날아와서
한 올 한 올 물어온 흙더미와 지푸라기
이 세상 가장 튼튼한 집 한 채를 지었다
사글세로 떠돈 세월 돌아보니 아득한데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의 보상인 듯
한 생애 빛나는 훈장 처마에 걸리었다
집이래야 단칸방 남루한 살림살이
굳이 인가에 와 터를 잡는 이유는
질기디 질긴 인연을 내려놓지 못함이다
결국 산다는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강남으로 돌아갈 날 죽지로 헤아리며
해마다 삶의 이력에 둥지를 틀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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