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 윤이산
늙은 두레상에 일곱 개 밥그릇이
선물처럼 둘러앉습니다
밥상도 없는 세간에
기꺼이 엎드려 밥상이 되셨던 어머닌
맨 나중 도착한 막내의 빈 그릇에
뜨거운 미역국을 자꾸자꾸 퍼 담습니다
어무이, 바빠가 선물도 못 사 왔심니더
뭐라카노? 인자 내, 귀도 어둡다이
니는 밥 심이 딸린동 운동회 때마다 꼴찌디라
쟁여 두었던 묵은 것들을 후벼내시는 어머니
홀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비바람이 귓속을 막았는지
추억으로 가는 통로도 좁다래지셨습니다
몇 년 만에 둥근 상에 모여 앉은 남매는
뒤늦게 당도한 안부처럼 서로가 민망해도
어머니 앞에선 따로 국밥이 될 수 없습니다
예전엔 밥통이 없어가 아랫목 이불 밑에 묻었지예
어데, 묻어둘 새나 있었나 밥 묵드키 굶겼으이
칠남매가 과수댁 귀지 같은 이야기를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쓸어 모으다가
가난을 밥풀처럼 떼먹었던,
양배추처럼 서로 꽉 껴안았던 옛날을 베고
한잠이 푹 들었습니다
문밖에는 흰 눈이 밤새
여덟 켤레 신발을 고봉으로 수북 덮어 놓았네요
하얗게 쏟아진 선물을 어떻게 받아얄지 모르는 어머니
아따, 느그 아부지 댕겨가신 갑따
푸짐한 거 보이, 올핸 야들 안 굶어도 되것구마이
미역국처럼 뜨끈한 묵소리를 싣고
일곱 남매가 또 먼 길을 떠나는 새벽
[당선소감]
문청文靑의 새떼들. 저수지 위, 빈 원고지 일획 세필細筆로 점. 점점.. 점점점..... 고독했던 언 발목의 시간을 옮겨 적습니다. 한 번 비상에 허공, 한 편씩 식자植字되는 습작시들. 깃이 다아 빠지는, 발목 뼈 훤히 비어지는 연습비행. 아직은 저수지 활주로
시는 늘 네 마음의 정직한 기록인가 캐묻습니다. 사무사思無邪 없이 어찌 시와 가까이 할 수 있겠는가? 참언이 되지 못할까 나의 말을 들여다봅니다. 늘 뜨끔합니다.
외로워서 시를 썼습니다. 무위의 내 존재가 무서워 끊임없이 끼적거렸습니다. 그 외로움이 나를 살아 있게 했습니다. 외로움은, 시는 나의 존재증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백년 후쯤에도 시 때문에 외롭고 쓸쓸하고 더 높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종착지도 없이 가야 하는 외롭고 쓸쓸하고 높고도 먼 길, 그저 훈련처럼, 그러나 기꺼이 행복한 마음으로 걷고 뛰고... 하리라 마음먹습니다.
‘늘 깨어있으라’시며 세상과 소통하는 법 가르쳐 주신 손진은 교수님, 사무사 정신 일깨워 주신 이근식 정민호 김종섭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함께 시 밭 가꾸기 해 준 문우님들, 고락을 함께 하는 동인 <시 in> 동지들, 고맙습니다. 눈 흐려 안개 속에 헛걸음 놓던 저에게 지도 한 장 쥐어 주신 뉴스제주사와 정인수, 변종태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 선행의 아름다운 수레바퀴 따라 항상 지필묵이 분주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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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해마다 12월이 되면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한 달은 행복해진다.
문학 분야에서는 축제의 시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은 문단에 선을 보이는 신인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으로 새해 첫 날의 신문을 펼치게 된다.
「신춘문예」를 공모하는 신문사는 지방지를 포함해서 30여 개에 이르는데, 그 중 인터넷 신문으로는 뉴스제주가 거의 유일하다.
올해의 영주 신춘문예에 응모된 작품은 그 양적인 측면에서 어떤 신문사에 못지않게 많았다. 그 중에서도 시의 응모 편수는 거의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보면, 응모 편수에 비해 주목할 만한 작품이나 신인다운 패기를 보여주는 작품이 적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현대시의 흐름이 그러한 탓일까? 시의 경향이나 내용들이 지극히 사적이며 감상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한 이유로 작품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가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주제의식의 약화를 초래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김옥지(경기 평택), 양순진(제주), 윤이산(경북 포항), 이금미(충남), 이기철(서울), 이일옥(경기 안양), 최인숙(서울) 등 7명이었다.
이금미, 이기철, 이일옥, 최인숙의 경우는 상당한 습작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응모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다거나, 산문적인 이미지 전개 등으로 산만한 느낌을 주는 등의 아쉬움을 남겨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최종심에 오른 김옥지, 양순진, 윤이산 등 세 명의 작품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똑같이 뛰어나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의미보다는 각 응모자가 고만고만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옥지의 경우는 전편에 걸쳐 상당한 습작의 이력이 깔려 있고, 시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돋보였다. 하지만 응모작품 전편이 다소 서술적인 어투와 산문적인 어법으로 시상을 흐리고 있는 것이 흠이었고, 시의 행과 연에 대한 구분이 다소 억지스러움이 있어, 시 형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양순진의 경우는 시적인 상상력이 뛰어나고, 시상을 이끌어가는 힘이나 초점을 조절하는 능력은 우수하나 작품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이 흠이었다. 다시 말하면, 언어 구사 능력은 돋보이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힘은 있으나, 테마 의식이 약한 게 흠이었다. 또한 글쓰기에 있어서 구두점을 찍는 것은 독자의 원활한 독서를 위한 배려인데, 굳이 구두점을 빼야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까지 구두점을찍지 않은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또한 산문적이고 서술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윤이산의 경우는 응모한 다섯 편의 시가 고루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시상을 이끌어가는 힘이나, 시적인 상상력은 탁월한 편이었지만 군데군데 어휘 사용이 다소 어색하다거나, 연 구분이나 행 배열이 들쭉날쭉하여 안정감을 주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런대로 여러 차례의 논의와 장고를 거듭한 끝에 어렵사리 윤이산의 「선물」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한 편만을 뽑아야 하는 신춘문예의 특성 때문에 오히려 낙선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리며, 당선자에게는 축하는 물론 더욱 분발의 기회가 되기를 빈다.
- 심사위원 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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