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소라여인숙 / 김영식


어린물떼새 발자국 안테나처럼 찍힌
해변가 모퉁이 외딴 집 한 채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
「자는 방 잇섬」 걸어놓고 주인은
종일 갯바위 너머 일 갔는지
마당엔 젖은 파도소리만 무성하다
집이 그리운 집게처럼 나는

풍랑주의보 내린 어로漁撈를 정박시키고
소금기 반짝이는 그 집 빈방에 들어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한다  

바람소리 켜켜이 비닐장판처럼 깔린
방바닥에 지긋이 손을 넣으면
오래 흘러온 것들이 제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
공중을 내려놓은 갈매기들이
깃 속에 낮의 시린 부리를 묻는다
등 굽은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모서리 둥글게 닳은 물결무늬 숙박계
세상에 없는 주소 꾹꾹 눌러 적으면
누군가의 등을 안아주던 흰 바람벽
위로 참방참방 헤엄쳐오는 숭어 떼
방파제 끝에서 인부 몇 돌아오고 나는
옆으로 누워 밤을 견디는 긴발가락집게처럼
온 몸이 녹아드는 아랫목에 누워
홑이불 같은 수평선 한 자락 당겨 덮는다

 

 

 

숟가락 사원

 

nefing.com

 

 

[당선소감]


해안선 같은 차창으로 어둠이
숭어 떼처럼 참방참방 밀려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먼 곳의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겨울 들판 같은 내 안의 나를 만나러가는 길이었을까요.
마을의 불빛들이 따뜻하게 엎드린,
수평선을 닮은 산자락 어디쯤 나도 흘러가 눕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
해조음인 듯 낯선 음성 하나가 귓바퀴를 파고들었습니다.
잠시, 그리고 오래 목이 메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울러 속이 빈 제 시의 항아리에 형형한 눈빛과 생기를 채워
세상 밖으로 출렁이게 해주신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손진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족들과 문창반 문우 여러분 그리고 멀고 가까운 곳에서 따순 눈동자로
지켜보아주신 여러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낮게 걸린 저 불빛이 어둠의 심해를 건너가듯
뚜벅뚜벅 시의 행보를 쉼 없이 내딛는 것으로 보답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심습니다.
밀물에 밀물이 섞여 만조를 이루듯
어둠이 먼저 온 어둠에 살을 섞고
은하를 흘러가던 별 몇 개도 내려와 발목을 담급니다. 별들의 굽은 등뼈가 둥글게 빛납니다. 나는
오래 이 바닷가에 앉아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심사평]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영식의 `소라 여인숙' 외 4편과 박창호의 `오십견'외 4편이었다.

박창호의 시는 일정한 작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체가 담백하고 과장된 진술이 없다.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씌어진 듯한 그의 시들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다. 상실감과 회한과 생의 덧없음, 차분한 어조는 시의 내용을 실감나게 하면서 독자를 숙연하게 하는 조용한 힘이 된다. 이런 미덕에도 불구하고 감상성은 그의 시의 큰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여문 마늘을 먹으면/ 아버지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같은 진술이 그렇다. 감상을 절제할 수 있는 냉정한 가슴, 객관의 자리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차가운 눈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선작으로 뽑은 김영식의 `소라 여인숙'은 선이 굵고 힘이 있는 작품이다. 새로운 표현에 대한 열정이 있고 사물들과 자신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돋보인다.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와 “모서리 둥글게 닳은 물결무늬 숙박계” 같은 묘사도 빼어나지만 “누군가의 등을 안아주던 흰 바람벽/ 위로 참방참방 헤엄쳐오는 숭어 떼” 같은 표현은 탁월하면서도 참신한 맛과 멋이 있다. 신인에게는, 그리고 문학에는 독자를 설레게 하고 놀라게 하는 이런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소라 여인숙'은 표현에 공을 들이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언어의 선택과 배치에 무척 신경을 쓴 작품이다. 그러나 함께 응모한 다른 시들은 `소라 여인숙'과 다소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썩은 생선들과 고래냄새, 그리고 범죄와 죽음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신인의 독특한 시시계를 우리를 주목할 것이다.

- 심사위원 : 김영기·최승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