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항공 풍경 / 정재돈
창궁에 오르면 구름은 소금밭이고
시푸른 하늘은 광활한 바다이다
바다위에 소금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물음표
모두가 풀지 못한 저 의문 속에 살고 있다
나도 하늘에 올라 깜냥깜냥
칩거해 있는 나를 찾아 본적이 있다
검붉은 혼돈의 땅에 살고 있는 나
그 안에서 허둥지둥 세월에 떠밀려 살아왔다
창궁에 오르면 그 속에서
알 수 없던 내가 불쑥 튀어나온다.
하늘에는 잃어버린 내가 살고 있다
잠시 땅을 잊고 오롯이 하늘 품에 안으면
나는 가장 빛나는 별이 된다.
별보다 빛나는 꽃이 된다.
하늘에서 비행기보다 좋은 말은 없고
조종사보다 말을 잘 다루는 마부는 없다
비행기가 날개를 펼치자 잠긴 하늘이 열리고
열린 문으로 잃어버렸던 새들이 날아왔다
방안에 앉아 기분 좋은 노래를 불렀다
비행기는 승무원들의 푸근한 보금자리
시푸른 창궁은 승객들의 미더운 소망 저장고
구름 위에 올라 한껏 하늘 문 두드리니
얼키설키 묶인 매듭이 비단실처럼 스르륵 풀렸다
[우수상]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 이병철
아프리카를 찾아 떠나는 비행에는
나침반이 필요 없어요
바람이 공기결을 오물오물 물어뜯어
지름길을 표시해주거든요
새들의 발바닥이 날개를 두드리면
리듬에 맞춰 한 걸음씩 쿵쾅거리는 세계의 초침
오늘의 여행은 경쾌한 음악이지요
바오밥나무의 기지개는 소낙비만큼 향기롭고요
태양이 누는 똥은 사탕수수보다 달콤해요
날다가 힘들면 지나온 길들을 잡아 당겨
촘촘한 그물침대를 만들어요
사바나의 노을은 탯줄을 닮았고요
꾸불텅꾸불텅 늘어진 콩고강 끝엔
킬리만자로의 배꼽에서 만년설이 빛나고 있어요
상아해안이 멀리서 젖냄새를 띄워 보내면
내 엔진에서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와요
노래는 나비가 되어 죽은 물소의 뼈에 내려앉고
푸르디푸른 빗방울이 되어 건기의 초원을 적시지요
나는 언제나 아프리카를 꿈꿔왔어요
바람의 젖니가 뾰족해지면
내가 날아가는 따사로운 길은
천 개의 파인애플이 열린 밤하늘까지 이어지고
때마침 지평선과의 줄다리기 끝에 딸려오는 바다가
파도 속에 글썽거리는 눈망울로 나를 알아보네요
활주로를 쓰다듬는 건초 냄새
달빛이 커다란 상아를 휘두를 때
무거운 몸을 천천히 내려놓은 나는
아프리카의 젖을 물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어요
[장려상] 항공 / 황익순
비행기에 있을 때
나는 한 사람의 눈시울 속에 있다
크림처럼 떠다니는 구름은
공중 위로 여행의 순간을 운반한다
내 어깨에 지난 기억이 창밖에 그림 그려지고
그리운 사람의 눈시울 속에 있듯
말이 없는 순간, 빗장뼈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뜨거운 여름의 순간이 마음 가득해질 때
서편 하늘에 여울로 고여 있는 노을
먼바다가 보일 때
이제는 지상조차 아득한 구름 사이로
보이는 물결무늬로 밤은 찾아오겠지만
어둑한 밤도 일출도
물결로 오가는 여정
공항으로 불어오던 먼 바닷바람은
여행길의 말 없는
첫 배웅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밖 풍경에 붉은 꽃다발을 안고 가는 듯
비행운은 공중 위로 길을 내고 있고
창밖의 바람이 내 이름을 부른다
어느새 끝난 여행, 귀갓길의 이 짧은 안식을
포옹의 방식으로 비행기에 앉아
색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듯
이제는 여행을 끝내야 할 때 다시
한 번의 여행이
기다리고 있는 착륙의 순간
[장려상] 비행의 꿈 / 이지현
내가 아주 어릴 때
비행기 흉내를 내려면
두 팔을 뒤로 뻗고 몸을 앞으로 굽혀
온몸으로 비행기를 만들었다.
내가 노란 옷 입은 병아리일 때
비행기를 그리려면
몸통을 그리고 날개 둘을 가로로 하여
색연필로 비행기를 그렸다.
내가 초등학생이란 이름으로 불릴 때
비행기 노래를 부르려면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목청을 돋워 비행기 노래를 불렀다
내가 처음 교복을 입은 청소년일 때
비행기를 만들라면
글라이더에 고무동력기 날리며
푸른 꿈을 창공위에 펼쳤다.
소매에 금줄 달고 금테 모자 쓴 어른일 때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여행하는 모두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라며
승객을 안전하게 모셨다.
[장려상] 활주로 / 김선홍
너른 잔디밭에 누워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문득 비행기 한 대 지나가고 상념은 그 꼬리를 따라 기차놀이중 숨바꼭질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생이라는 회전목마 위에서 뱅글뱅글 맴돌이치던 너와나 추억들이 지나치는 비행기의 꼬리를 물고 새파란 하늘 한가득 무대를 펼쳐 하나뿐인 관객을 위해 연극을 하지 어쩌면 추억은 그리도 가볍게 자유롭게 창공을 훨훨 날아가는지 나도 미친 듯이 사랑이라는 활주로 내달리면 그 한결같이 곧게 뻗은 짧은 길을 내달리면 그러면 하늘위로 올라 널 잡을 수 있을까 여전히 추억 속에서 숨바꼭질 하는 너를? 오롯이 곧게 뻗어 하늘로 오르는 유일한 길 거기엔 어떤 속임수도, 가식도, 거짓말도 없어 출발선에서 달려 나갈 준비를 하며 널 기다려 본다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함께 하늘로 오르기를 바란다 나를 유혹하는 그 모든 거짓들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오로지 너만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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