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구름 위의 저녁식사 / 서용기
오랜만에 네 가족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는다
입맛 까다로운 딸아이의 얼굴에 나팔꽃이 핀다
창밖에선 구름도 케첩을 발라먹는지 온통 붉다
이토록 높은 고도, 빠른 속도 안에서
아내는 그 동안 얼마나 이 밥을 먹고 싶었을까
아주 천천히 저녁식사를 즐기는 동안
식사를 마친 구름의 얼굴빛은 점점 검붉어간다
지구가 어둡다고 불을 켜고 일어서는 별들
철지난 영화 한 편 되살리는 리모콘
우주 미로 출구라도 찾는 듯
제각기 헤드폰을 낀 채 응시하는 모니터
땡볕 고스란히 스며든 고추장 튜브를 짠다
우리가족의 설렘도 사과처럼 익어가고
지상의 고달픔은 모래알처럼 작아진다
구름 속을 날아가는 새들처럼
아내여! 우리도 모처럼 흰 구름 한 잔 할까?
온가족 오붓이 식사하는 그 무렵
이미 동사무소에 주민등록증 반납하신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 자꾸만 떠오르고
[우수상] 산골에서는 / 김수희
김을 메다가
콩을 따다가
비행기 날아가면
허리 한번 펴시고
고추 따다가
무 뽑다가
비행기 지나가면
무릎 주욱 펴신다
나물 뜯다가
감자 캐다가
비행기 날아가면
온 몸 주욱 펴신다
우리 할머니
쉬어가며 일 하라고
아픈 허리 펴시라고
말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산골 하늘 비행기는
천천히,
일부러 천천히 간다
[장려상] 멀리뛰기 / 김민중
-할머니가 기다리실 텐데......
-제주도 바다는 어떤 색깔일까?
-미국 가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두근두근
콩닥콩닥
그 마음
모두 모아
두 팔을
날개 벌리고
힘차게 도움닫기해서
땅을 박차고
한숨에 날아오르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멀리뛰기
[장려상] 활주로의 내력 / 박미림 섬이다 [장려상] 즐거운 상상 / 김경구 왜 가끔 그럴 때가 있지. 남 앞에 섰을 때 말도 제대로 못해 나만 점점 작아 보이고 자신감이 뚝 떨어질 때 말이야 그럴 때 이런 건 어때? 비행기 탔을 때 내려다 본 세상을 떠올려 보는 거 아파트도 지우개처럼 작고 큰 논밭도 색연필로 칠한 그림처럼 작아 보이고 학교도 레고처럼 운동장도 손바닥보다 작게 보였잖아. 어때? 거인이 된 거 같지 않니? 마치 걸리버 아저씨처럼 영화의 킹콩처럼 말이야. 힘이 퐁퐁 솟을 거야. 이 세상의 나는 나 혼자 뿐이야. [장려상] 어떤 초대 / 류미월 멕시코공항 착륙 직전 상공에 펼쳐지는 야경이 절창이다. 보석한줌 뿌려놓은 듯 신대륙을 발견한 듯 도심의 불빛은 검은 모래 털고 갓 세수한 얼굴처럼 투명하게 빛을 발한다. 좁은 기내에서 움츠렸던 세포들이 툭툭 깨어나며 바람구두 신은 듯 일제히 몸이 가벼워진다. 고도를 낮추며 원경이 근경으로 바뀌는 진풍경은 공중을 누비는 비행기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유화 한 폭 같은 선물이다. 오랜 시간 낯선 곳 떠돌다 인천공항이 가까워지면 서해안의 절묘한 선과 진초록 김포평야는 엄마 품 같다. 삶의 동맥에서 뿜어오는 기운이 여독을 솜사탕처럼 녹여준다 . 구름위의 산책자처럼 초대된 공중의 그림 전람회를 마치고 오는 길은 한 폭 한 폭 멋진 풍경들이 가슴속에 스며 삶의 에너지로 불끈불끈 출렁인다.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사람들 썰물과 밀물 되어 오갈 뿐
벼랑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탄탄대로
길만 길이되는
섬과 섬을 이어주는 관제탑은 등대다
그곳에는 수시로 별이 생성하고 소멸한다
육중한 별은 천천히 내려왔다가
서서히 접어드는 하늘 길
가끔 연착된 별이 덤으로 반짝일 때도 있다
먼 곳에서 날아와 쉬고 있는 깃털 사이
비상하는 새떼들이 자유롭다
정비사의 지친 어깨를 길게 늘어놓고 있는 나른한 오후
별들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오랜 세월,
바닥은 모든 것들에게 공평하였다
우리만 욕망이 발동하여
어느 날 덜컥거렸을 뿐,
하늘 문 열리고 닫히는 곳에서
천개의 점멸 신호등들
적절한 각도에서 붉거나 흰 눈빛의 유도등
어둠의 저 편, 천리 경계 너머 밝혔다
곧은 길 솔기 끝이 시위를 당기는지
바닥이 기립 자세로 총총
나,
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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