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야자나무의 날개 / 이미순
어머니, 야자나무의 열매는 올해도 여전한가요.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하얀 눈을 보았어요.
창공에 얼음 꽃이 피는 계절이 있다는 걸
꿈의 날개를 펼친 후에야 알게 되었지요.
찬바람 속 날개는 꽁꽁 언 것처럼
한 번도 접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 꿈도 비행기 날개처럼
활짝 펼쳤어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길을 내던
비행기의 두 날개는 두고두고 꺼내어 읽는
소중한 한 권의 책과 같아요.
점점 실밥이 터져가는 내 작업복
겨울 가로수 길에 은행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속을 걸을 때면
마음 깊이 숨겨 둔 그 책을 꺼내어
한쪽 어깨가 기울어지지 않는 법을 자꾸 읽어요.
까만 동그라미가 많아진 통장
내 가슴 주머니에 꼭 찔러 넣어요.
껍질이 우툴두툴 해어질 때까지 살아온
계절을 아는 나무들
하늘을 향해 이륙할 준비를 하는지
잎 날개들 펼치는 소리가 들려요.
야자나무는 여전히 뜨거운가요.
[우수상] 최초의 비행 / 안지숙
비행
눈을 감았다 뜨면 여름이었다
뿌리 얽힌 나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계절을 건너뛴 풍경을 따라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불꽃을 당겨 환한 어둠 속으로
입 벌린 허공 속으로
비행기의 양 날개가 어둠을 가로지른다
오래전 묻어두었던 약속을 가슴에 품고서
어머니의 미소가 부풀어 오른다
꿈속을 횡단하는 새처럼 어깨가 들썩이고
악보 없는 음표들이 입안을 맴도는 이 순간
어머니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인데
당신의 큰 눈동자는 빈집을 닮아있었다는 걸
나는 너무도 늦게 알았다는 생각
허공을 움켜쥔 눈동자에 색이 덧입혀지고
기내의 적당한 온도가 온몸을 감싼다면
몇 개의 추억이 자리를 바꾸며 견고해질 것이다
최초의 비행을 꿈꾸던 당신의 그림자가
삶의 무게를 한꺼풀 벗어던지고
들뜬 아이의 콧노래처럼 가벼워지기를
당신의 환한 이마에
몇 줄의 문장이 꿈틀거리며 빛난다
교복을 입은 수줍은 소녀가
어머니의 품속으로 뛰어든다
[장려상] 민들레의 비행 / 최선옥
눈 밝은 햇살이
푸른 활주로를 정비하는 봄
먼 이국여행을 앞둔 민들레가 한 올 한 올 사연을 말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곳엔
눅눅한 기억을 말려야만 쉽게 풀리는 전례가 있고
바람의 갈피에 슬쩍 끼워 넣는 오래된 비행이 있다
추락과 결항과 불시착도 있어서
질 좋은 바람을 선별해야만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차도나 바다 속으로 뛰어든
깜깜한 비행
노선을 잊은 꽃씨들이 오들오들 떨기도 한다
스스로 날아갈 수 없는 불안한 활주에
기분이 시들기도 하지만
하얀 날개는 차츰 부풀고
유실을 고려한 민들레는 더 많은 씨를 껴안는다
말장화 같은 이탈리아와 코뿔소 같은 캄보디아와 엎드린 강아지 같은 페루,
지구본을 돌리며 착지점을 계산하고
새털구름을 압축해 뒷목에 괸
낙천적인 꽃씨 하나,
잠꼬대를 기내식으로 떠먹으며 꿈을 순항할 거라고 한다
하강기류를 감지하면
애기똥풀 노란 점멸등이 착륙을 안내해줄 것이다
난기류를 벗어나 공단으로 착지한 반쪽의 언어들은
뿌리가 얕아서
가벼운 부주의도 허투루 넘기지 못한다
몸살 앓는 송금이 있어야만 피는 국경너머의 웃음이 있다고
철야에 아직 귀항하지 못한 꽃씨들도 있다
연착 없는 알람시계가 깨우는 이른 아침
피부색 다른 걸음이
잠이 모자란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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