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공덕비 / 안시헌
다섯 번으로 족한 일을 수북이 쌓아놓고
동여 맨 넥타이처럼
암만 몸부림쳐도 빠져들거나 아니 빠져나오지 못해
평생을 친정 한번 못 가진 할머님의
공덕비를 우해
올 것 같지 않은 시간에
이미 끝났을 버스를 기다렸다
가을비가 모처럼 내려
익어가는 낱알에 목을 축이게 하다 보니
벌써 산기슭에 경사진 햇살이 비치고 있다
공덕비는
이전에 여인네들을 위해 세워져야 하는
꼭 세울 수밖에 없는
내 마음에 일정이 드나들고 있다
숨겨도 알아차리고 몸을 맡길 수도 없는
지금은 작은 가슴에 숨어 있다
의뢰하지 않은 번외에 표를 받고 나니
정말 이번 명절에는 고향에 갈 수 있을까
깊이 패인 포트 홀을 지나치려면 심한 통증이 찾아온다
결정적으로 내 머릿속엔
돌아가신 어머님의
오석 공덕비를 세워야 하는데
어둠이 길을 어둡게 할 때
멀리 절집에 걸려 있는 나무물고기 배를
두들기는 소리 들린다
[우수상] 화분 / 정수경
화분에 구멍이 있군요
뿌리는 그곳에서 왔을까요
열쇠로도 채울 수 없는 문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건 화분에
무언가를 심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러니까 몸에도 문이 있군요
입구와 출구가 뒤바뀌는 회전문 같은
아시죠?
때론 몸도 출구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일탈 하나쯤 간직하고 싶어지는 날은 돌고 고양이가 가득
심어진 화분을 들고 나가죠 빈 몸으로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죠
문틈으로 파고드는 한 가닥 빛
그러니까 빛이 빠져나가는 저 문의 틈은
화분의 구멍 같은 것일까요
고양이를 심은 화분이라고 불러도 좋겠어요
구멍이 뚫린 화분
내 몸에 있는 빛들은
어느 구멍으로 흘러나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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