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종이 / 김태형


누군가의 사연을 담은 종이

누군가의 눈물자국이 찍힌 종이

그 여러 종이 가운데

가슴 시리도록 살아 움직이는 종이가 있다.


곰팡이 핀 벽지아래 컬컬한 숨을 고르며

잠이든 어머니

반평생 구겨진 종이위에 자식 뒷바라지에

고단함으로 시커멓게 물든 삶을 적어오셨다.

새하얀 종잇장으로

세상에 처음 태어났던 그녀

무엇을 담아내는 것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종이처럼

그녀는 자신의 삶을 비워내고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으로

자신의 종이를 빼곡하게 채워갔다.

눈물은 맑은 봄비가 되어 내렸고,

눈빛은 햇빛이 되어 행간사이로 세상을 비추었다.


그녀의 종이위에 이제는 쉼표를 찍어주고 싶다.

쉼 없이 내달려온 그녀의 생

꿈틀거리는 문장부호를 찍어 그녀의 삶을 위로하고 싶다.

잠시 생략했던 그녀의 꿈을 그리고

그녀의 어긋난 치열처럼 힘들었던 삶에

소박한 웃음을 흘려 넣고 싶다.

몸을 웅크리며 잠자리를 뒤척이는 어머니

그녀의 꿈결 같은 종이위에

거룩한 마지막을 담아낼

새하얗게 돋아나는 여백을 보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