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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벽돌에 대하여 / 성지수

 

벽돌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네모난 감정을 따라서

점점 각이 지고 있었다

환절기에는 조심해야 한다

벽돌처럼 금방 뜨거워지고

빨리 식어 버리니까 나는

다혈질의 체질을 타고났다

 

무른 당신과 이야기를 했을 때

나도 물렁물렁해지고 싶어서 입을 열었으나

벽돌만 한 장 더 쌓아올렸을 뿐

아래에 쌓여 있는 벽돌들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다

나는 그걸 모른 체 했다

무너지지 않을까 아슬아슬한데 그 위로

벽돌이 하나 더 쌓이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고 벽돌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숨 쉴 때마다 균열이 간 벽돌에서

가루가 떨어져 상처를 냈다

사방은 어느 순간 막혔다

당신들은 밖에 있고 나는 내부 뿐이었다

벽은 조금씩 높아져 갔다

 

오늘도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속이 무거워져서 그림자가 질질 끌러왔다

입을 열려는 순간 벽돌 얹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나도

딱딱한 네모로 끼워지는 걸까

 

 

 

 

[으뜸상] 돌멩이 / 허주영

 

경주 남산 놀러 갔다 오신 어머니

산새 소리 쨍알쨍알 들리는

돌멩이 두 점 주워오셨네

휴지로 돌돌 싸 주머니에 돌돌 넣어 오셨을 것이네

돌아와 책상 위에 올려 놓아보니

집안에서 흙길에 돋아나던 솔바람 냄새 가득 차오르네

시집 읽다 종종 옆에 있는 돌멩이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서로 맞부딪쳐 보기도 하네

 

나는 돌멩이가 앉아있던 그 산길을 생각하네

등산객들 발길에 툭툭 채이던 그 자갈길을 생각하네

산바람에 긁히고 산짐승 발톱에 긁혀

고분벽화처럼 조각나기도 했을 저 돌멩이

비 오는 날엔 풀잎 아래 웅크리고 있었을까

햇빛 반나절, 냇물 소리 두어 달,

바람 냄새 한 됫박 들어있을 저 돌멩이

 

그 산돌멩이 어머니 손에 들켜 예까지 잡혀 왔을까

아무리 산노루 같은 눈망울로 쳐다보아도

이제 저 돌멩이는 더 이상 산돌멩이가 아니네

고향도 잃고 야성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저 돌멩이 햇볕이, 봄바람이 그리운지

자꾸만 여울처럼 울고 있는 것 같네

 

 

 

[으뜸상] 할아버지의 자전거 / 황재연

 

해거름이 낮게 깔린 오후

우리 외갓집 마당 한편에 놓인 자전거는

꼭 할아버지를 닮았어요

쪽마루에 앉은 할아버지의 버짐 핀 손은

자전거 바구니처럼 금이 가 있어요

칠이 벗겨진 자전거에선 녹슨 냄새가 피어올라요

 

할아버지가 힘차게 밟았던 페달은

정지된 채 허공에 박제가 되어버렸어요

헤드라이트는 할아버지의 어두운 앞날을 비추고 있어요

할아버지의 낡은 짚신 옆에는 지난 신문들이 쌓여있어요

공중에 희석되지 못한 찬바람이

신문을 자꾸만 들춰봐요

할아버지의 눈은 길을 잃어버린 바퀴 같아요

초점 잃은 두 동공은 애꿎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 바퀴는

찌그러진 날들을 머금고 있어요

이제 자전거 브레이크도

할아버지의 흘러가는 세월을 잡지 못해요

망가진 자전거는 고칠 수 있지만

할아버지의 빛바랜 기억들은 고칠 수 없어요

 

벌겋게 변색된 하늘의 색이

할아버지의 허연 머리칼 사이사이 스며들었어요

자전거 안장에는 할아버지 대신

타들어 가는 노들이 자리 잡았어요

외갓집 마당에서 낡은 체인랑 소리 대신

시곗바늘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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