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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스모루, 새들의 집 / 김신숙

 

 

새는 날아가지

날아가다 언젠가는 구름이 되지

스모루라는 새는, 스모루라는 구름은

바다부터 가파르니 날갯짓이 비탈지다

아버지가 소작하던 귤밭있던 자리는

지금은 붉은 열매가

아파트 불빛으로 익어가고

오랜 세월 망보던 자리에 둥지를 튼

아버지, 아버지라는 새

연대 아래로 트럭 흐르는 소리

일 끝난 아버지 손 씻는 소리

가파른 땅은 등 굽어 걸어야 겨우

발자국 소리 별빛으로 비틀거리며

날 수 있을까

술 취한 사내가 휘청거린

망팟으로 내려가는 길

빈 주머니는 가파른 구름으로 환생하고

스모루라는 이름으로 숨이 마르고

아버지는 먼저 하늘로 날아갔다

연신 고개만 주억거리며

새들의 말을 듣는 연습이 필요하고,

뿔소라의 말을 건져올리며

젖어서 날 선 마들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엔

새도 보이지 않는다

그 텅 빈 날개,

숨 마르는 경계

스모루가 날아오른다

 

 

 

 

 

[가작] 마라도의 꿈 / 김선호


 

 

 

 

[심사평] 서귀포의 매력을 시적 감동으로 채워줄 작품을 기다리며

 

올해로 제4회째를 맞는 ‘서귀포 문학작품상’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 수는 모두 504편이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첫 회부터 어떤 정보도 개입되지 않은 블라인드 심사로 진행되었으며, 오로지 작품성으로만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린다.

 

이번 응모 작품의 경향을 살펴봤을 때 삶의 이야기를 시에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삶의 고단함과 서귀포의 전설, 서귀포의 상징성을 나타내려고 애쓴 작품들이 눈에 띄어서 작품을 읽는 맛이 났다. 잊고 있던 서귀포라는 이름을 꺼내어 불러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삶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시의 소재로 쓴다는 것은 관념성이나 추상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 경우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직접 경험일 경우에도 ‘시’가 갖는 함축과 비유, 상징으로 이야기를 녹여내지 못하면 날것으로 남아 일기나 산문처럼 흐르기 쉽다. 아쉽게도 그런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서귀포’라는 지명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수사법을 동원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결국 ‘시’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감동이 사라져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서귀포적이면서 시적인 응집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스모루, 새들의 집’과 ‘마라도의 꿈’ 그리고 ‘무태장어*의 편지’를 최종심에 올려놓고 고심하였다. ‘스모루, 새들의 집’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지명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스모루’라는 제주의 지명을 다른 사물로 치환하는 참신함과 그것을 통해 ‘아버지와 새’라는 이미지를 끌어낸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서귀포문학작품상’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주제나 표현에 있어 다소 미숙하고 가벼워 보였다.

 

‘마라도의 꿈’은 마라도의 이미지를 내면화하여 표현하는 데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하지만 문장들이 자기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주제에서는 멀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마라도의 꿈’이 보이지 않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당선작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무태장어*의 편지’는 서귀포라는 지명의 특색을 잘 살린 작품이지만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의미의 문장들로 긴장을 놓쳐버리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쩔 수 없이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시적 표현에 있어서 끌리는 작품도 더러 있었지만 형식만 있거나 이미지만 있거나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서귀포문학작품상>에 부합하는 이렇다 할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고심에 고심을 했지만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가작에 그치게 되어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서귀포의 매력을 담은 감동적인 작품들이 줄줄 나오길 기대하며 여기서 마친다.

 

심사위원 오승철 유홍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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