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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김후자 / 고리

 


남자가 지하철에서 휴대용 접착고리를 판다
쉴 새 없이 상품을 선전하는 남자
스티커에 붙은 도금한 고리가 3kg 철근을 번쩍 들어올린다
그리고 다시 이를 앙다문 고리가 5kg을 들어올린다
제 덩치보다 몇 백 배 많은 쇳덩이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하루를 지탱하고 있다
남자가 고리에게 눈을 찡끗 감는다
고리는 펑퍼짐한 아줌마 서넛을 들어올린다
졸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깨어났다
남자가 신이 났다
고리가 있는 힘을 다해 지하철을 통째로 들어올리려 한다
절대 과부하가 없는 저 고리
남자의 생(生)도 번쩍 들어올릴 것 같은
견고하고 단단한 저 고리
좀처럼 끄떡없을 그 무엇도 번쩍 들어올릴
남자에겐 고리가 있다
남자가 구름 손잡이에 팔을 올린다
고리가 척 걸린다

 
 
 
 
 
 

[우수작] 김밥말이 골목 / 최일걸 

 

 

암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따개비모양

봉제공장들이 저를 단단하게 오므린 채 거꾸로 서서

수천대의 재봉틀로 하루를 돌린다

자꾸 달아나는 시간을 노루발로 고정하고

아찔한 곡선박기로 내일을 꿈꿔보지만

어김없이 되돌아박기가 여공들을 꿰매버린다

햇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지하 공장은 먼지로 포화상태,

재단사의 가위질은 쉼 없이 여공들의 꽁무니를 베어내지만

그래도 김밥말이 골목은 그녀들의 꼬리뼈에 매달려 있다

재단사의 줄자가 정오를 휘감으면

봉제공장 거리의 봉합선이 뜯기고

여공들이 한꺼번에 밥알처럼 쏟아져 나와

한 땀 한 땀 김밥말이 골목으로 향한다

양은냄비보다 먼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여공들은

수다를 첨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지만

김밥말이로 돌돌 말아 한통속이 된다

라면 다발과 함께 풀어지는 그녀들의 일상이

식당 아줌마의 손길을 거쳐 김밥에 뒤섞인다

식당 아줌마가 손으로 김밥을 꾹꾹 누를 즈음이면

그녀들은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다

접시에 담긴 김밥을 묵묵히 바라보며

그녀들은 옆구리가 터진 김밥처럼

네팔로 필리핀으로 소말리아로 연변으로

38선 이북으로 삐져나간다 

굶주린 가족들을 생각하면 일용할 양식도

독약처럼 치명적이어서

김밥을 목구멍에 넘길 수 없다

목구멍이란 얼마나 질기고 처절한 골목인가

과연 김밥 한 줄로 그 골목을 통과해도 되는 걸까

그녀들은 막막하고 까마득하다.

 

 

 

황학동 사람들 (외)

 

nefing.com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열한 분의 시들은 대체로 시대적 변화의 흐름과는 무관해 보일 정도로 우직하고 정직한 사유를 펼쳐 보인다. 그만큼 노동현실과 노동자의 삶의 조건이 사회의 다른 영역과는 달리 큰 변화 없이 정체되어 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소외된 현실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사회적 책임감과 의지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감각마저 현실의 중압감에 짓눌려서 고정되고 평균적인 시각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시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에 주목해 주었으면 좋겠다. 변하지 않은 것 가운데 변화를 읽어내고, 누구나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할 때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 할 줄 알고, 집단 속에 숨어서 소리칠 것이 아니라 벌거벗고 나와 세계와 정면으로 대면하거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온갖 풍상을 감내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정직하지만 개성이 부족한 시들을 읽으며 즐거움과 동시에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다시 읽고 나서도 두세 분의 원고를 읽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돋보이는 시들이 있어 우리를 긴장시켰다.

 

김후자 씨의 시들은 얼핏 보면 피상적이고 사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시적 대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깊은 사유 없이 이룰 수 없는 작품들이다. 절제된 언어와 세련된 표현력 역시 적지 않은 습작에 의한 성취로 보인다. 당선작 가운데 고리는 자본주의 상품에 대한 쾌락적 추종이 만병통치약처럼 허무맹랑한 확신을 낳게 하고, 나아가 인간의 삶을 강박적으로 의탁해 버리게 하는 물신화된 현대인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그밖의 시들도 고른 완성도를 보여준다.

 

최일걸 씨의 김밥말이 골목은 비상구 없는 봉제공장 다국적 노동자의 일상을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공장이 밀집한 골목(닫힌 세계)과 목구멍(목숨)과 김밥(일용할 최소한의 양식)이 한 지점에서 만나 서로를 비추며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유폐된 노동자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밖의 시들은 긴장이 떨어지고 현실비약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두 분에게 새로운 세대, 새로운 노동시를 열어갈 전위의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예심심사위원 : 이한주, 맹문재

본심심사위원 : 백무산, 최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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