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유리 상회 / 송유미
허름한 희망 유리 상회 창문은
수족관처럼 뭉클뭉클 몰려다니는
양떼구름을 키우고 모래 바람도 키운다.
어느 창틀에든 맞게 잘라 놓은
여러 개의 유리들은
골목길 모롱이에서 튀어나온
똑같은 크기의 승용차와 사람들을
무수히 복제해서 쏟아 내기도 한다.
때론 흐릿하거나 밝거나 어두운
희망 유리 상회 창문 안을 기웃대면
심해에 사는 거북이처럼
등이 굽은 주인을 만날 수 있다.
한 장 한 장 저마다 다른
바다를 품은 듯 바람에 잔물결 치는
희망 유리 상회, 문이 열린 날보다
문이 굳게 닫힌 날이 많은 희망 유리 상회
어쩌다 밤늦게 그 앞을 지나노라면
밤바다보다 고요한 침묵에
나는 지느러미 돋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된다
[심사평] 빛나는 인간적 가치를 찾아
전태일문학상에 작품을 보내주신 분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소외된 노동의 해방과 뭉그러지고 찌그러진 인간의 해방을 위해 스스로 빛의 길이 된 전태일 열사의 정신처럼 빛나는 글들을 만났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현장을 담아낸 이륜길 씨의「제305 창진호」, 김정원 씨의「오월哀」, 최늘샘 씨의「델몬트 망고 쥬스」에서는 현장으로 집중된 모순을 생생한 언어로 담아내는 힘이 빛났습니다. 그런데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이 받쳐주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구광렬 씨의 시편에서는 의미를 끌고 나아가는 힘이 돋보였으나 응축되지 못해 아쉬웠고, 박주석 씨가 보내온 시 중에서는 「반가유상 앞을 지나다가」가 눈에 띠었지만 다른 시편들이 못 미쳐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응모한 작품 전체가 고른 시적 성취를 이룬 작품을 수상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은 전태일 사상의 핵을 이루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실천 활동을 문학으로 왕성하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분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구를 충족하는 작품이 송유미 씨의「희망 유리 상회」외 2편이어서 이를 당선작으로 결정했습니다.
전편에서 인간 노동이 만들어낸 지혜를 새 세상의 골조로 삼아야 한다는 단단한 사상성이 돋보였고, 인상적인 면을 중심 형상으로 다듬고 그 안에 의미를 응축시키는 형상성이 좋았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 달리 현장에 충실하면서도 그 안에서 빛나는 인간적 가치를 찾아 예술적으로 드높이려는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선작이 이를 전적으로 충족하는 바는 아니지만 출발점에 세우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송유미 씨를 “지느러미 돋는 한 마리 물고기”(「희망 유리 상회」)로 세상에 내보냅니다.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 심사위원 맹문재(시인), 문동만(시인), 오철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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