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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내 안에 살아있는 사랑에 대하여 / 장옥자

 

[우수상] 비가1 2/ 조수광

 

[우수상] 이불 냄새 외 2/ 조혜영

 

 

묵을해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거꾸로 돌아가는세월이 노여울 때

나는 수덕사에 가곤 한다

 

수덕여관에 들러

두고 온 것들에 마음 쓰일 때

저녁예불 소리가

피어나는 한숨까지 달래준다

 

잘 구워진 아랫목에 누우면

삘기처럼 피어난 곰팡이털이

웅숭거린 몸 구석구석 파고든다

 

누군가 묻히고 간 발 냄새

땀 냄새 담배 내 묻은 이불이

가슴을 자꾸 문지른다

 

오늘은 시름 한 가락 못 달래고

먼 산자락만 쳐다보다 떠났을

추억 묻은 이불을 골라 덮는다

 

포크레인 소리 잠시 멎은 수덕사에서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철지난 흔적을

나도 꽃이불에 지려놓고 가고 싶다

 

잠은 멀기만 하다

 

 

 

 

내 안에 살아있는 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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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장옥자의 '내 안에 살아 있는 사랑에 대하여', 조혜영의 '이불 냄새'(6), 조수광의 '대화'(5) 등이 이번 응모작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이었다.

 

'내 안에 살아 있는 사랑에 대하여'는 한 여성 노동자가 사랑에 눈뜨면서 그것이 노동자의 자각으로 이어지고 사랑과 운동의 조화 속에서 결혼에 이르렀다가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노동운동가로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한 끝에 다시 노동운동에 헌신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장시이다.

 

700행 가까운 긴 시이면서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것은 언어의 낭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도 간결하고 생략도 대담하다. 그러면서도 무리가 없고, 인물이며 장면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시인이란 쉽고 분명하고 힘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시는 이 세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쉽기도 하고 분명하면서도 힘이 있다. 그 힘은 무엇보도다 '아직도 나는 발전적인 노동조합 간부/전진적인 운동가의 자세/노래는 철의 노동자를 부릅니다.'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정직성에서 오는 것 같다. 이 정직성은 자칫 사회성에 치우쳐 뻔한 옿은 소리로 끝날 수 있는 소재를 개인적 문제로 환원하면서 감동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맨 뒷부분인 17장이 힘은 있지만 조금은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흠이 있다.

 

조혜영의 '이불 냄새'(6)는 거의 전편이 표현에 무리가 없기도 하지만, 더 큰 미덕은 매우 따뜻한 시각의 시라는 점이다. 가령 '이불 냄새'에는 '포크레인 소리 잠시 멎은 수덕사에서/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철 지난 흔적을/나도 꽃이불에 살짝 자리 놓고 자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 따뜻한 시각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일 것이다. '무너지고 흩어지는 아픔들을 물리/분석을 붙인다. 이 시대의/산 부적이 되고 싶은 나는'(부적) 같은 구절도 빛난다. 노동자를 내세우지 않고도 노동자의 정서를 형상화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이팝꽃'이나 '물레방앗간''부적'이나 '이불 냄새' 또는 '노래하는 한의사'에 비하여 처지는 까닭을 스스로 깨달을 때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대화'(5)는 시를 많이 공부한 사람의 작품 같은데, 그런 사람이 항용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우선 소재가 틀에 박힌 것처럼 보인다. 이 세상에 시의 소재가 되지 못할 것은 없다는 말은 이미지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한 말이지만, 이 사람은 너무 시적인 소재를 고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감정의 낭비도 심하다. '왜 듣지 못하였는가 나는/꺾이는 싸리꽃 그 처절한/비명소리를'(싸리꽃를 꺾고서) 같은 도입부는 너무 과정되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감정의 분류를 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가 불분명한 것도 지기 인유하는 것 같은데,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바라볼 때 더 명확한 시기 쓰여진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화' 같은 시는 매우 뛰어나다.

 

이상의 작품 가운데서 장옥자의 '내 안에 살아 있는 사랑에 대하여'를 최우수작으로, 조혜영의 '이불 냄새'(6)와 조수광의 '대화'(5)를 입선작으로 뽑는다.

 

- 심사위원 신경림, 이행자

 

 

 

 

 

 

이팝꽃 / 조혜영

 

검지에 핀 꽃 / 조혜영


감자 썰다 검지에서 피 뚝 떨어진다
아리다

한 시절 아리게 산 적 있었지
하얀 광목천에
검지를 갈라 노동해방을 쓰고
한번은 검지를 깊게 베어
원직복직을 외치며 혈서를 썼는데,

지금 그 검지에서
붉은 피 뚝뚝 떨어진다
하염없이 피가 흐르고
도마를 타고 싱크대로 흘러가는데
옹이 박힌 손끝에서 꽃망울 터진다

나는 지금 무어라 쓰고 싶다
한번 꽃처럼 붉게 피어
가슴 깊은 상처를 다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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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동 블루스 / 유정탁

 

 

추석 보너스로

동그라미 여섯 개가 통장에 찍히던 날

기숙사 계단을 오르며 얼빠진 표정으로 히죽 웃던

사내의 술 내음이 코끝에 걸렸다

벽돌담 아래 순대 어묵이 그리운 밤

우리는 무 쟁의 특별 목돈을 묶어둔 채

일찌감치 포장마차로 향하고

그날 밤 총총히 순대를 썰던 아줌마

이렇게 일찍 순대가 다 팔려나간 적 없단다

양정동 밤 물결 깊게 흘러도

공장 굴뚝 연기는 목젖으로 흘러들고

먹빛 공간을 지우며 휘파람을 불었다

봄날 부르짖던 함성

공장 구석구석 붉은 녹처럼 묻어나고

둥글게 영그는 달

오늘 더욱 서글픈 빛으로 흘러드는

감옥의 밤도 있는데

백만 원 목돈이 어루만지는 가슴에 술 붓는 버릇만 늘었다

열적게 도망가던 그날

오지 않은 사람들을 원망하며

훈장처럼 남은 발목의 상처로

스스로 위로하던 여린 가슴아

한번쯤 펜을 세우리라, 매운 다짐 뱉던

내 입술의 짧은 오기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다

스스로 합리화시키던 그 말은 굴복이었다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고 있는 거다

낙서처럼 어눌한 양정동 침묵의 가슴에

고성 방가만 휘갈기고

목돈을 주어도 오늘 밤 우리는 시내로 나갈 줄 몰랐다

 

 

 

부끄러운 건 우리가 아니고 너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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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삶의 구체를 담는 노동시

 

노동시라는 선입관 때문일까. 응모된 시들이 한결같이 틀에 얽매여 있다. 노동자로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이 각양각색일 터인데 한 색깔로 칠해져 있어, 이런 경우에는 으레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반응해야 한다는 도식이 나와 있다는 느낌을 준다. 결국 노동시가 노동자의 삶의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인데 여기에는 '문학'은 뒤로 제쳐놓고 '목소리'만 담음으로써 노동자의 실상과 구체는 빠뜨리고 관념과 주장만 남겨놓은 80년대 노동문학의 폐해가 크다. 고백하건대 응모된 시를 읽으면서 심사자는 적잖이 지루했다. 그래도 유정탁, 한민자, 이창수, 박금란의 시들은 읽을 만했다.

 

유정탁의 시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노동시의 전형이다. 좋은 뜻에서는 우리 노동현실에 충실한 내용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나쁘게 보면 새로운 맛이 전혀 없다. 한결같이 투쟁만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도 시의 맛을 반감시킨다. 지도자연하는 자세는 80년대의 몇몇 영웅시인으로 끝내도 좋지 않을까. 노동자의 삶의 구체를 담지 않고는 노동시가 노동자로부터까지 외면당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를 전개하고 말을 다루는 솜씨가 매우 능숙한 점은 살 만하지만 노동시가 가진 폐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금란 씨는 많이 써본 솜씨 같은데 역시 노동시의 단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가 노동자와 민주노조에 대한 깊은 사랑과 굳건한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시에서 갈등과 회의가 동반되지 않는 사랑과 믿음이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성다운 섬세한 대목이 군데군데 엿보이면서 시 끝에 맛을 보탠다. 이것이 더 깊어지면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민자의 시는 어찌 보면 다른 노동시와는 많이 다르다. 좀 허약한 듯 보이지만 섬세한 감정의 흔들림 같은 것은 잘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시로서 덜 성숙했고 응모한 시편이 모두 토막시라는 느낌을 주는 흠이 있다. 읽기에 쉬운 것은 좋지만 쓰기도 너무 쉽게 썼다는 느김을 주어 감동도 줄이고 있다는 점,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창수의 시들은 좀 작위적이다. 또 어떤 표현은 너무 낮익어, 동향 선배의 시에 너무 신세지고 있는 것 같다. 진보적인 발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우리 것, 토착적인 것에 대한 일방적인 경도는 실은 너무 낡아 식상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좀더 자유로운 열린 생각으로 시를 쓰면 더 좋은 시가 써질 것이다. 시에 동원된 말도 더 폭이 넓어져야 할 것이다.

 

- 심사위원 신경림 (시인)

 

 

 

 

사람, 발자국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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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심지 / 오도엽

 

 

굵어야 할 것이 있다

돈 욕심만 가득한 마음보 말고

직밟으려는 권력 욕심 말고

겉만 번지르한 명예심 말고

굵어야 할 것이 있다

가진 것 없는 몸뚱아리

팔뚝이 굵어야 한다

힘줄 툭툭 솟은 노동만이

거미줄 친 목구멍 건진다

굵어야 할 것이 있다

아침마다 힘 쓰는

똥발이 굵어야 한다

몸속에 남아야 할 영양기 빼고는

숙변 하나 어뵤어야 튼튼할 수 있다

그리고 굵어야 할 것이 있다

푸른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허리펴고

마을 앞 당산처럼 굵어야 할 것

겨례 사랑의 마음

백성 사랑의 마음

 

굵어야 할 것이 있다

갈보의 가랭이처럼 험하지 않는

잔 바람에도 휙휙 고개 트는

자연 동산의 풍향제 같지 않는

가시나인지 머슴아인지 볼 것 없이

희끄무레한 밀가루 살갗에

멀대같이 겅등거리는 꼴 말고

거무탱탱하게 그을려 탄력 넘치고

천리를 내달릴 허벅지의 근육으로

한번 버티면 꿈적도 하지 않는

그런 싸움꾼의 다리로 지켜야 할

굵어야 할 심지가 있어야 한다

길이 멀수록

바람이 거셀수록

 

 

 

 

[우수상] 수도물로 오는 봄' / 곽장영

 

 

 

 

[심사평]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 좋은 시의 첫째 조건

 

예심을 거쳐서 올라온 작품 가운데 다음 다섯 분의 시기 주목을 끌었다.

 

하태성 '앉은뱅이 저울'

유정탁 '달맞이꽃'

이문희 '아무도 울지 않았다'

오도엽 '머리를 깎으리'

곽장영 '수돗물로 오는 봄'

 

하태성의 시 중에서는 '굴비 굽는 저녁''생과자 굽는 손'이 읽을 만하다. 우선 세상을 보는 긍정적이고 따스한 눈이 호감을 준다. 소재를 가까운 생활에서 있는 점도 살 만하다. 그러나 두 편이 다 소품이라는 느낌을 주는 흠이 있고, '앉은뱅이 저울'은 정리가 덜 된 느낌을 준다.

 

유정탁의 '달맞이꽃1'은 노동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장점을 갖고 있고 '2'는 노동자 아내의 고단한 삶과 외로움을 돋움새기고 있어 나름대로 호소력을 갖는다. 한데 '1'에서는 비유가 적절치 않고 '2'에서는 아내의 외로움이 과장되어 있다. 노동시의 상투성 같은 것이 보이는 점도 흠이다.

 

이문희의 '아무도 울지 않았다''해고일기'는 힘도 있고 리듬도 있는데 너무 얘기에 매달려 있어 시의 맛이 덜하다. '작은 동지에서 전화를 건다'는 귀여운 딸아이를 빌어 노동투쟁가가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전하는 뜻이 분명한 것도 큰 장점이다.

 

오도엽의 '머리를 깎으리'는 결의와 힘으로 넘치는 시로서 회의와 고뇌를 알맞게 배합하는 등 술달된 솜씨를 보이고 있으나, 행사를 위해 쓴 시인 듯 그 한계인 상투성 같은 것이 보인다. 하지만 '굵어야 할 것이 있다'는 노동시로서뿐 아니라 시기 갖추어야 할 여러 보편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우선 리듬이 있는데 이 리듬은 곧 힘으로 연결되고 있다. "굵어야 할 것이 있다"의 반복도 효과를 거두고 있어 가령 "몸뚱아리"-"팔뚝"-"똥발"을 자연스럽게 "겨레 사랑의 마음" "백성 사랑의 마음"으로 이어주고 "한번 버티면 꿈쩍도 하지 않는/그런 씨름꾼의 다리로 지켜야 할/굵어야 할 심지"를 이끌어 낸다. 적당한 속어를 쓰는 것이 시를 얼마나 살아 있게 만드는지 눈여겨볼 대목이다. '꼬창모''이젠 살 만한데' 모두 시의적절한 발상이요, 생각도 바르고 건전할뿐더러 뜻의 전달도 분명하다. '우리 것이 제일인 겨'는 뻔한 알레고리 같으면서도 시기 재미있다. 오도엽의 시를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것, 이것이 좋은 시의 첫째조건이라는 선인의 말이 생각난다.

 

곽장영의 '수돗물로 오는 봄'은 노동시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밝은 분위기가 좋다. 수돗물에서 "백두산 천지를 넘쳐/두만강 압록강으로 흐르는"을 연상해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기서 다시 "아직도 살아 있는 내 몸뚱아리"를 확인하다니 얼마나 놀랍고 발빠른 상상이랴. '일장기 휘날리는 전폭기로 대한민국을 날려버리는'은 제목이 너무 장황하고 황당하다. 그러나 독특한 발상과 전개는 살 만하다.

 

위에서 들어 보인 시 가운데서 오도엽의 '굵어야 할 것이 있다'를 최우수작으로, 곽장영의 '수돗물로 오는 봄'을 우수작으로 뽑는다.

 

- 심사위원 신경림(시인)

 

 

 

최우수상
우수상
오도엽 '굵어야 할 것이 있다'
곽장영 '수도물로 오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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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지리산 /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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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내 시의 주제는 / 이철산

 

 

 

 

 

 

 

 

 

 

 

강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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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그의 목소리는 피곤하지 않은 고음

 

70년대에 사회적 할례식을 받은 세대에게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그 어둡고 막막했던 시대의 창공을 섬광으로 채찍질하는 뇌성번개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대학이라는 피뢰침 아래에서 어떤 갚을 길 없는 부채의식과 접선과 그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20년 뒤, 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이 문학상에 응모된 여러분들의 시편들을, 이른바 '심사'라는 명목으로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새 잊어먹었던 빚을 재촉하는 명세서들을 다시금 대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투고된 작품들을 여느 문학상 심사에서처럼 진품을 골라내는 보석 감정가의 잔뜩 찌푸린 눈으로 더 이상 볼 수 없었으며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서 나는 어느 수준에서 포기하고 읽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침내 내 눈이 황규관의 <해방연서 1>9편을 만났을 때 번쩍 일어났던 시적 광채는 단순히 노동현장 체험을 저당으로 하여서 비슷한 것을 강요하는 것 같은 다름 응모작들을 일시에 빛 바래게 했다.

 

'나는 노동자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의, 소위 노동문학이나 민중시의 상투형들은 이번 응모작들 가운데 일정한 시적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황규관은 그것을 벗어나고, 그러나 그것을 우회하지 않고 자신의 음성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돋보인다. 물론 그의 목소리는 고음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잘 조절된, 말하자면 구조를 가진 소리이며, 그래서 듣기에 피곤하지 않다.

 

사람을 금방 피곤하게 하는, 글로건화된, 이를테면 '투쟁', '해방', '노동'과 같은 완강한 말들을 그가 영락없는 시속에 녹여내는 것은, "내 하루의 노동이/강물에 몸던져 빛나는/한웅큼의 햇살처럼 벅찰 때/그대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해방연서 1)라는 구절 아니 "진달래는/오래 오래 운 눈빛처럼 더욱 붉고"(내 조국이 식민지일 때)라는 구절에서 입증되듯이 세상과 사물에 대한 그의 빼어나 서정적 시선 탓이리라.

 

심사위원 전원은 제6'전태일문학상'을 황규관으로 하여금 감당하도록 하는 데 유보없이 동의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이 흉흉한 90년대에 '새로운' 노동 시인(나는 그를 그냥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이철산의 <야생 황기>7편을 가작으로 상정한 것은 어쩌면 그가 더 길게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신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시는 시인의 생애를 두고 볼 일이기 때문이다.

 

- 심사위원 황지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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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가작

맹문재 '미싯가루를 타며'
김현아 '소나기'
조미라 '겨울산'

 

 

 


[심사평] 

 

눈에 번쩍 띄는 시는 없었지만 일하며 싸우는 사람들의 아픔과 따뜻한 마음을 읽게 해주는 시가 많아 즐거웠다. 노동자라면 으레 내세울 법한 구호를 앞세운 틀에 박힌 시가 예년에 비해 훨씬 줄어든 것은 노동시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말해주는 것일 터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노동자의 삶과 일에서 나온 "노래"가 있었으면 하는 점이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들 중 특히 네 사람의 시가 선자의 관심을 끌었다.

 

<미싯가루를 타며>(맹문재)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날로 하고 생활의 힘겨움을 씨로 해서 짜여진 따뜻한 시다. 시가 전체적으로 절망적인 분위기보다 희망적이고 어둡기보다 밝은 느낌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이 시의 미덕이다.

 

"어머니의 귀앓이도 동생의 수업료도/ 얽히고 설킨 우리집의 농협 빚도 장작 패듯 쪼개 내 조자고같은 진부한 표현을 "겨울 바람의 날개쭉지를 확 확 잡아 당기는 이 풀기"로 신선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솜씨도 상당하다.

 

굴뚝연기-목화송이-노동자의 한숨-가래침과 욕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엮은 <굴뚝연기>도 노동자의 아프고 힘든 생활을 잔잔하게 드러내는데 성공한 가작이다.

 

<겨울산>(조미라)은 갇혀 있는 이의 바깥에 대한 그리움이 아프게 가슴을 때리는 시다.

 

"시든 겨울산이/ 이 푸른 옷과 같이 푸르게 뒤덮힐/ 그 때는/ 함께 갇혀있는 청계산을/ 구치소 담너머로 넘겨주자고"같은 대목은 실제로 이러한 삶을 겪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표현이리라. 소재와는 달리 시가 가볍고 투명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 시의 장점이다. <외출 3>도 간결하면서도 맵게 오늘 이 땅에 깔린 아픔과 분노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데, 가령 "세상 사람들의 꿈이 숨죽이는 오늘"의 표현은 지은이의 현실에 대한 바르고 깊은 인식을 엿보게 한다.

 

<소나기>(김현아)는 시속에 일정한 얘기를 담고 있는 특이한 시인데, 사설이 많은 것이 흠이면서도 거꾸로 재미로도 되고 있다. 시를 억지로 꾸미지 않고 술술 나오는대로 써내려간 것 같은 방법도 시를 수월하게 읽히는 요소가 되고 있다.

 

"문득 전선줄을 타고가/ 그녀를 안아 오고싶다"는 동료들에 대한 따뜻하고도 깊은 사랑은 <소나기>뿐 아니라 매편에 넘치고 있지만, 이것이 자칫 늘어지고 처질 위험을 안은 사설조의 그의 시들을 힘있고 활기찬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미장공 형에게>(정연석)와 그 밖의 시들은 간결하면서도 쌈박한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미장이라는 작업에서 "금이 간 우리들의 허리에/ 한강변 모래 곱게 곱게 걸러서/ 흔적없이 바른다"는 말하자면 남북을 하나로 잇는다는 이미지를 끌어내는 것은 상투적이어서 조금 진부하다. 우리 노동시 또는 민중시의 고질로 지적되고 있는 청승과 넋두리가 철저하게 배제된 <현장에서 2,3>의 치열한 시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심사위원 : 신경림·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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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하 '검은땀의 잉크 우리들 노래의 피(1)'
정동후 '시련이 오리라'
서정홍 '아들에게'
정해민 '우리는 가족이다'

 

 

 

검은 땀의 잉크, 우리들 노래의 피 1 / 정수하


절름발이 소녀의

낡고 슬픈 무쇠베틀이었다

달 아래

네 노래의 불씨들을 촘촘히 자나가는 저 흰손은


남동 뒷골목

주린 등짝 하얗게 야윈 손등에 달이 뜨면

머언 남쪽나라 강뚝 옛 어머니집에 하얗게 샛바람 뜨면

열두자 종이폭에 이글이글 진달래꽃 수를 놓았다


전라도땅 남동 뒷골목이었다

참새 하나 꿈젖는 양철지붕 붉은 벽돌담에

꺼멓게 탄 등불 기름베로 더덕더덕 기운 저 그림자들

흙바닥에 끌려 억새처럼 뻗신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소녀는 납을 뽑아 판을 짜고

물먹은 잉크덩이 휘휘 저어 로우러를 돌리며

나는 새도록 톱니바퀴 가죽벨트에 달빛을 감아

베틀을 굴렸다

덜커덩 덜컹 실피 뽑아 체인을 타며

삼베 같은 종이폭 길게길게 네 시들을 자았다


달 아래

병들고 지쳐도 기계이빨 앙다물고

네가 부르던 옛싸움의 노래가 줄줄이 공장바닥을 적셨다

검은 잉크땀이 달을 따라 온밤을 벌겋게 먹칠을 했다


아아 지금은 더욱 멀고 애끓는 남도길

소녀의 고향은

한애비 달구질에 쑥잎만 타던 강나루터 철로변이었다

여름날 소쩍새가 옛 투사들의 돌무덤을 치솟아 날고

망월동 가는 외딴 길섶 칙칙한 지하벽마다

내 형제들 두손의 망치질도 끊기고 푸른 만신창이로 뒤척대는

저 고요한 매장 아래 터벅터벅

다시 네가 떡깔나무숲처럼 은밀하게 뿌리를 밀고 가는 밤마다

남동 뒷골목 절름발이 소녀는

닳아빠진 무쇠베틀 덜커덩 덜컹 세월을 짜고

나는 갱지 위에 네 시를 불꽃처럼 심어나갔다


수십년 때묵은 쪽발이나라 재산반입품

철사끈으로 조이며 톱니바퀴 밀고 당겨 목줄을 이어나갔다

절름발이 내 소녀는

침침한 종이뭉치 전등불 아래 얼굴마저 녹아내렸고

나는 모든 절망과 사랑의 노래들을 자판으로 찍어눌렀다


남동 뒷골목이었다

철야의 달은 양철지붕 붉은 담벽을 느릿느릿 흐르고

낡고 슬픈 베틀에 앉아

절름발이 소녀는 새도록 진달래꽃 수를 놓았다

가난이 죄일세라 죄일세라 공장바닥 한구석

엄니 잃은 핏덩이 조카놈을 품에 안고 베틀을 타며

얼어붙은 기름밥에 석탄불을 적셔 삼키며 세월을 꿰맸다

창 너머 푸른 샛빛 저 뜬조각들 하나 둘 종이폭에 엮어나갔다


보아다오, 내 형제들, 민중의 시인이여

너는 언제나 이렇게 다시 태어나고

달빛 젖은 잉크로 저 베틀에서 조금씩 조금씩 길러졌다

밤마다 두툼한 땀과 눈물의 옛 책갈피마다

따뜻한 별과 우렁찬 힘의 무기들이 다듬어져 새겨지고

네 노래는 젊은 일꾼들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거대한 뿌리가 되어갔다


전라도땅 남동 뒷골목이었다

낡고 슬픈 베틀에 앉아

절름발이 소녀는 밤마다 박해받는 세상의 자식들을 노래했다

철삿줄로 꿰맨 고물인쇄기계 톱니바퀴 덜커덩 덜컹

머나먼 옛 고향집 어머니 길따라 네 시들을 종이폭에 짜고

나는 저 달 아래

검은 기름피를 뚝뚝 바닥에 흘리고 있었다

 

 

 


1992년 제4회 전태일문학상 시상식이 종로 뒷골목 민예총 강당에서 있었다. 나는 대학 4학년 소설창작 시간에 아무렇게나 쓴 소설 말고는 처음으로 써본 소설을 가지고 단편소설 부문 상을 받게 되어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해직교사라는 신분이었고, 소설 내용은 당시 91년 투쟁의 와중에 전투경찰에 의해 타살당한 성대생 김귀정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명동성당 농성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있지만, 그때도 나는 소설가보다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쓴 소설이지만 왠지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투고를 했다가, 덜컥 상을 받고 보니, 기쁨보다는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시상식장에는 나 말고도 각 부문 수상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시 부문 당선자인 정수하 씨가 보이지 않았다.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도, 그리고 이후에 <지리산>이라는 출판사에서 수상작품집을 내고 축하 모임을 할 때도 정수하 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서 무얼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나는 가끔 그 사람이 궁금했다. 수상작이 준 강렬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작품이야 워낙 아마추어 티가 역력해서, 그때 소설 투고작 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내가 뽑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 당선작은 마치 김지하의 초기 시처럼 가슴을 고통스럽게 헤집어놓는 힘이 있었다.


수상작품집에는 모두 4편의 시가 실려 있다. 하나 같이 호흡이 긴 작품들이다. 심사를 맡은 신경림, 김남주 두 분이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해놓았다.


정수하는 먼저 시정신의 치열함이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피나 땀 같은 끈끈한 정서도 이 시가 결코 작자가 손끝으로 쓴 시가 아님을 말해 준다. 또 “나는 모든 돌과 씨앗과 물거품마다 새벽빛을 짜넣고/ 철의 연자매 아래 밤을 빻아 흰 쌀가루를 봉지에 쓸어담으며/ 뿌리처럼 공장과 대지를 전진해 가야 했다”(「멀고 먼 노래의 길 위에서」) 같은 표현은 관념만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 육자배기 가락을 연상시키는 끈적거리고 청승스러운 가락도 시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 한데 너무 장황하다. 모호한 표현도 군데군데 보인다.


수상작품집에는 ‘1957년 정읍 출생. 사진식자기사․마스타공․설비공․용접사로 근무’라는 간단한 이력이 붙어 있다. 이력을 통해 어렴풋이 살아온 내력을 짐작해볼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그 이후 다른 작품이 발표되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수수께끼처럼 사라진 정수하 시인!

정수하 시인의 작품을 읽노라면 가슴이 컥! 하고 막힌다. 남도의 한 맺힌 정서를 이렇듯 유장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러면서도 힘차게 토해놓을 줄 아는 시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정수하 시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 게 안타깝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문학이 뛰어난 시인 한 사람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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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오철수 '노동자와 기계가 만나 눈물흘릴때까지'
조호상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
이행자 '병상에서'

 

 

[심사평] 진실을 찾는 노동시의 힘 

 

예심을 거쳐 네편의 시가 본선에 올라왔다. 둘은 짧은 시들이고 둘은 장시들이다. 모두가 본선에 올라올 만한 충분한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욕심을 말한다면 노동자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노래한 시들이 있었으면 하는 점이었다. 또 모두가 '노동시'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 없었다는 점도 아쉬웠다.

 

그래 살아야지(2)는 노동자의 삶을 소박하고 꾸밈없이 노래한 점이 호감을 준다. 포장마차 풍경을 빌어 20, 30, 40, 50대 노동자의 모습을 각각 몇 마디로 인상적으로 스케치해 보임으로써 메마르고 내일이 없는 이 땅의 노동현실을 노래한 포장마차 풍경은 시로서의 재미도 갖추고 있다. 한데 시들이 너무 평이해서, 지은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고민에 빠져있다는 느낌을 준다.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이래서인 것 같다.

 

병상에서 1(10)을 읽으면서 '피로 쓴다.'는 표현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 시들은 그야말로 피로 쓴 시들이다. 이런 경우 전혀 꾸미지 않고 재주도 부리지 않은 점이 미덕이 될 수도 있다. 가령 딸 선영이를 망월동 무덤에 묻어놓고 전국민주화운동 유가협 회원이 되어 열심히 싸우는, 판사한테 공정하게 재판하라고 호통을 쳤다가 도리어 8개월씩이나 징역을 살고 나온, 그러면서도 만날 때마다 반가워 잡는 두 손 사이로 따스한 정이 흐르는 '남도의 어머니 선영이 어머니'의 모습도 소박하고 꾸밈없는 표현이어서 더 감동적이다. '식모로 살다 가는 것과/시인으로 살다가는 것에/무슨 차이가 있을까?'같은 자신에 대한 회의와 자조 같은 것도 소박한 것이어서 더 무게가 있다. 다듬으면 상당히 좋은 시가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는 시의 앞에서 밝히고 있듯 어느 전자공장의 노조워원장인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다. 이 노동자 ''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다가 학교도 다니고 잘 살게 되리라는 꿈을 안고 따르던 이웃의 목사를 따라 상경한다. 하지만 목사는 ''를 부려먹기 편한 식모 부엌데기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뒤늦게 안 ''는 그 집을 뛰쳐나와 구두약공장에 들어간다. 구두약냄새에 시달리며 쉬는 날도 없이 하루에 열넷, 열 다섯 시간씩을 넘게 일하다가 옮겨가는 곳이 전자공장, 여기서도 ''는 첫날부터 불량이 났다고 욕지거리를 당하고 뺨을 맞는 곤욕을 치른다. 이때 동료들이 편을 들어 주면서 ''는 생전 처음 친구도 사귀게 되어, 자취방에서 함께 밥도 해먹고 놀러도 다닌다. 그러다가 자취방에서 함께 모여 공부를 시작하고 이것이 마침내 노동현실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다. 그리하여 ''는 노동자의 싸움에 앞장을 서게까지 되고, 결국 '아무도 가라 하지 않는' 이 길을 걸어 지금 푸른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여 법정에 서 있는 것이다. 시의 전개에는 무리가 없다. 이야기가 계속 전개되는 중간에 ''의 오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7. 그리고 지금 나는)도 단조로운 서술을 깨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비록 실재했던 인술의 이야기이니는 하지만 ''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과정의 묘사가 약하다. 극적인 사건이나 반전이 꼭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더 절실하고 긴박한 상황의 설정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표현도 전체적으로 좀 느슨하다.

 

노동자와 기계가 만나 눈물 흘릴 때까지역시 실제로 있었던 TC전자 노동자들의 위장폐업 철폐투쟁을 그린 것이다. 이 장시의 주인공도 여성 노동자이고 시골 출신이다. 두 편의 장시가 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하지만 노동자……」누가 나를……」과는 뼈대가 크게 다르다. 누가 나를……」이 단순구조 1인칭 화법을 채용하고 있는 반면노동자……」는 중층구조에 3인칭화법을 쓰고 있다. 또 중간중간 삽화도 들어가 있고 등장인물도 많아 이것이 시의 재미를 돋구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가령 "매일 같이/집에 가는 꿈아니면 /아침 조회 시간/ 어제 불량을 낸 무전기 네 대를 들고서 /벌 받는 꿈을 꾼다."같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묘사도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면서 시를 생동감 넘치게 만들고 있으며, 얼굴이 아주 예쁘고 항상 긴머리를 묶고 있던, 손마디가 불거져 한여름에도 손을 주머니에 넣고다니던 "언니", 공장을 떠난 지 몇 개월후 김밥을 싸들고 철야 농성장으로 찾아온, 지금은 술집여자가 되어있는 "언니"의 등장도 시를 빛냈다. 그리고 힘도 있다. "떴다 하면 2만 명""노동자와 기계가 만나 눈물 흘릴 때까지"의 마지막 재목에서 이 시가 보여주는 힘은 전문성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성이 너무 드러난다. 또 결말이 너무 뻔하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수월하다. 문학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서 박수치는 단합대회 이상의 것이 되지 않으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진실을 찾는 깊은 눈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

 

- 심사위원 신경림,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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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김종석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윤중목 '그대들아'

 

 

[우수상]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 김종석

 

 

BTS와 아미 - 여덟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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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넓고 깊게 나아가는 노동의 문학, 해방의 문학

 

숱한 사람들이 최근 이렇게 묻는다. "전태일은 남한사회의 역사 속에서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라고. 이 질문을 구체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노동자 계급은 어떤 역사 속에서 누구의 손에 의해 탄생하고, 노동자계급의 탄생은 장차 누구의 사멸을 뜻하는가?로 환치된다.

 

'전태일 문학상'의 본질은 바로 이 질문의 답변 속에 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통해서만 성장. 사멸되는 자본주의 사회체제에 의해 자본을 가진 사람이 자본을 갖지 못한 사람을 임금노예로 고용하여 고귀한 피땀을 빼앗는 데서 노동자계급은 탄생된다.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은 자본의 무자비한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다. 자본의 경쟁에서의 패배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임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평한 세상에 대한 열망을 간절하게 지니게 된다. 이것이 새로운 세상을 위한 '인간해방의 전사!' '노동자 계급 해방의 전사!' 가 되어 새날을 열고 새역사를 여는 승리자로 솟구쳐 오르게 하고, 이는 바로 자본가의 발 밑에서 자본가의 무덤을 파서 그들을 묻어 버리게 될 철저한 주체세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 진보의 합법칙적인 흐름이다.

 

김종석씨의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는 이러한 과학적 법칙의 기초 위에서 분출되는 노동해방의 피어린 투쟁을 형상화시킨 작품으로, 이제까지의 단시. 연작시를 뛰어넘어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새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 이 빛은 김종석 개인에게서 발하는 빛이 아니라 남한사회 일 천만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내뻗쳐 나오는 새빛임이 현실적으로 분명함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새날에 대한 전망과 그 실현과제는 시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의 진보를 열망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 모두의 것이 된다.

 

이 땅에 처음 제시되는 노동해방서사시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는 해방을 가로막는 적을 선명히 제시하는 동시에 그 적을 무찌르는 무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마찬가지로 IMB노조의 윤병호씨의 작품 '그대들아'도 시가 사회변혁을 위한 무기가 되어 단결투쟁으로 진군하는 데 밑거름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생생한 대립현장을 기초로 하여 훌륭하게 입증시켜 주고 있다.

 

결심에 오른 이 두작품 외에도 많은 작품이 대체적으로 구체적 현장성이 뛰어나 생생히 와 닿기만 하지마, 현실 그 자체의 묘사에 머무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응모작품이 거의 모두 노동현장이나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소재로 채택하고 있는데, 이제는 노동현장이나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소재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문제로 시야를 넓혀 이 모든 문제를 소재로 채택하여 철저한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 심사위원 정인화

 

 

 

2회 전태일 문학상수상작품집 1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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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우수상
추천작품
정인화 '불매가'
최동민 '보험별곡'
전경해체투쟁위원회 '사과 두 개' 외
백두산모임 '백두산' 외
정경규 '부평시장에서'

 

 

 

불매가 / 정인화

26. 아, 참으로 욕되게 살아왔네

아, 고개 조아리며 숨 죽여 살아왔네
목구멍 풀칠 무서워
밤이면 밤마다 새순처럼 돋아나는 분노
비겁하게 꺾어가며 흐느끼며 살아왔네

코쟁이 나라에서 주문한 배 만들다
족장에서 떨어져 죽은 절단조장의 죽음을 보고
나만은 원숭이처럼 조심스레 족장타며
죽은 놈만 서럽다고 비웃고는
흩어진 밥부스러기 줏어 먹기에 바빴네
아, 내리치는 피묻은 채찍 앞에
꿇어앉아 두 손 비비며 치사하고 더럽게 살아왔네
그까짓 목구멍 풀칠걱정
바닥 기어다니는 똥개처럼 살아왔네

돈 있는 놈, 힘 있는 놈, 권력쥔 놈 앞에
지레 겁 먹고 살려줍쇼, 죽여줍쇼, 눈치코치 보며
참, 더럽게 살아왔네
권력과 돈과 힘 앞에 빌붙어
죄없는 동지 걷어차고 밀어내며
아, 참으로 욕되게 살아왔네

온갖 비열과 비겁함으로 얼룩진 우리들의 몸
이래도 죽지않고 살아있는 짐승같은 우리들의 몸
풀무 속에 던져져 이글이글 남김없이 타고싶네
산산조각 흩어지는 불씨로 다시 태어나고싶네

아, 다시는 이제 다시는
더럽고 치욕스럽게 살지 않을려네
목구멍 풀칠걱정도 내던지고
더러운 밥부스러기 걷어차버리고
쌓여진 분노로 앙금진 각오를
칼날처럼 가슴깊이 품고 살아갈려네

민주노조 일어선다 당당하게 세워보자!
잃어버린 노동댓가 투쟁으로 쟁취하자1

후려치는 채찍 나꿔채어 분질러버리고
기만과 권위로 번들거리는 얼굴 걷어차버리고
짱돌로 날아가 부딪힐라네
수만 개의 비수 되어 꽂혀버릴라네
다시 죽어, 차라리 다시 죽어
4,5월 피 토하는 진달래로 피어날려네
지지않는 진달래로 피어나
온 땅 뒤덮을라네










 

구체적 현장성과 운동의 실천성 / 김병걸




전태일문학상 시부문에는 예심을 통과한 15명의 작품들이 본선에 올랐다. 15명 중 [불매가]의 정인화씨, [보험별곡]의 최동민씨, [사과두개]외 많은 시를 응모한 전경해체투쟁의원회, [백두산]의 백두산 모임, [광부]의 성희직씨, [할아버지 이상해요]의 '시와 실행'동인 등의 작품들이 우선적으로 검토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인화, 최동민, 전경해체투쟁위원회, 백두산 모임 등 4명의 작품이 최종 심사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심사기준으로는 전태일문학상 제정의 정신에 따라 '노동해방 인간 해방운동의 구체적 현장성과 운동의 실천성이 객관적으로 표현되었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구체적 현장성과는 동떨어진 관념적 작품들은 수상작에서 배제 되었으며, 또한 기성시인이나 그에 준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오 '현장 시인'의 배출우선이라는 차원에서 배재되었다.
이러한 심사기준과 심사과정을 거쳐 전태일 문학상 시부문 수상자로 정인화씨 최동민씨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정인화씨의 [불매가]는 전체 심사위원회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출되어, 제1회 전태일문학상 최우수작은 시부문에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정인화씨의 [불매가]는 서사시적 요소가 깃들여진 종 28편의 연작시로서, 지난 1987년 울산의 현대조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일어난 '7·8월 노동자대투쟁'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1편에서 28편까지의 짜임새 있는 구성이며, 예심을 통과한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구체적 현장묘사가 결여된 채 노동해방의 당위성에만 치우쳐 있는 반면에 이 작품은 비교적 '노동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이라는 주제가 노동현장의 구체적 묘사와 함께 잘 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7·8월 노동자대투쟁'이라는 사건이, 짤막짤막한 연작시로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사건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군데군데의 생경한 표현들이 눈에 거슬리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라 하겠다. 하여튼 정인화씨의 [불매가]는 선명한 주제, 구체적 현장성, 짜임새 있는 구성 등이 다른 예심통과자의 작품보다는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최동민씨의 [보험별곡]은 정인화씨의 [불매가]와 함께 선정된 수상작으로, 주로 보험회사와 보험회사 직원들의 노동현장에서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최동민씨는 예심을 통과한 15명 중시를 다루는 솜씨가 가장 안정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시의 소재가 노동현장에서부터 일상적 생활과 정치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넓고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의 다양함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보면 주제가 조금 산만한 것 같고, 구성에 있어서도 완결성이 다소 떨어지고 있다.
조선남, 김강산, 이기홍씨 등으로 이루어진 '백두산 모임'의 작품들은 상당한 가능성을 엿보이게 해준다. [아가야 어린이날에]등의 작품에서는 마치 박노해를 연상할 정도로 노동현장과 일상의 삶들을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아가야 어린이날에]와는 달리 노동현장의 생생한 정서를 상실한채, 공허한 구호의 외침 내지는 노동운동의 사회과학적 해설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이점에서 매우 아쉽다. '시와 실행'동인의 [할아버지 이상해요]외 15편의 작품들은 경남 울주와 온산직역의 공해문제를 소재로 공해의 피해와 공해 피해주민의 이주문제를 다루고 있다. '시와 실행'동인들의 시를 다루는 솜씨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작품의 내용이 반공해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게도 수상에서는 제외되었다.
성희직씨의 [광부]외 12편의 작품에서는 광산노동자의 일상적 삶이 매우 구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노동의 문제가 개인주의적 차원에서 표현되고 있음으로 해서 노동해방의 본질에는 미처 접근하지 못하는 약점이 노출되고 있다.
최인석씨의 연작시 [작업일지] 5편은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보다는 문학적 형상화가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작업일지]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것은 거칠고 투박함에 ?나는 생동적인 노동자의 정서가 아니라, 조금은 우울하고 폐쇄적인 지식인적 관념의 정서가 느껴진다. 이 점에서 [작업일지]가 시적 형상화는 뛰어나다 할지라도, 시를 읽은 대상 즉 노동자의 입장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최인석씨가 '현실시각'동인으로 이미 기성시인에 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깝게도 수상에서는 제외되었다.
서수찬씨 [복개공사]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한달도 못가서 / 뚫고 일어나 떠내려 오는…"라고 부실 복개공사를 꼬집는데, 여기서 복개공사는 2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올림픽이 끝나면 금방 부너져 버릴 '허구'의 의미로서, 갇혀 신음하는 민중을 복개천의 오물로서 표현하고 있다. 분명 [복개공사]는 뛰어난 작품이지만 이외의 다른 작품들이 [복개공사]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김석준씨는 비교적 담담하고 소박하게 노동하는 자신과 주변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이는 다른 대부분의 예심통과자들에게는 볼 수 없는 '건강한 일상성'이 표현되고 있어서 우선 호감이 간다. 그러나 몇몇 작품에서 살아나는 이러한 건강한 일상성이 다른 작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나약한 일상성으로 떨어지고 더러는 거친 구호로 표현되고 있다.
김윤환씨는 어느 정도의 시적 재질을 가지고 있는 듯 하나 소재와 주제의 불분명함으로 인해 시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백창일씨의 작품들은 다른 예심통과자들과는 달리 주로 상징적이고 풍자적인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우선 제목만 보아도 [똥개], [보리방구], [씨뿌린 놈은 바쁘다] 등이 그렇다. 이러한 소재로 시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자칫 말장난이나 관념의 유희에 빠지기가 쉬운데, 백창일씨의 경우 역시 이러한 단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풍자적이고 상징적인 발랄한 상상력을 키워나간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경규씨의 [부평시장에서], 김태연씨의 [하늘나라에서], 유기성씨의 [희망만들기]등은 주제의 명확성, 구체적 노동현장의 묘사 등 제법 수준작이라 평가된다. 그러나 이 세삼람의 나머지 작품들에서는 위에 열거한 자굼보다 구체적 현장성이 결여되고 있고, 공허한 구호의 외침이 조금 과장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전경해체투쟁위원회의 연성흠 외 2인의 작품들은 경직되고 반인간적인 전투경찰의 삶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나는전투경찰.../방패는 나의 갈라진 조국이다/방패를 들고 서 있는 나는/제5공화국을 지탱해 온/초라한 전투경찰일 따름이다"라고 군부독재정권의 사병으로 전락해버린 십만 전투경찰의 고뇌와 몸부림을 폭로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쏘라면 쏘고/때리라면 때리고/잡으라면 잡는/빵과 채찍으로 훈련되어지는/나는/노예일 수 없다/전투경찰일 수 없다"라고 반인간적 조직과 구조로부터의 해방과 아울러 이땅의 진정한 민족-민중해방에의 동참의지를 결연히 선언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수상에서는 제외는 되었다 하더라도 인간해방투쟁의 차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반민족적, 반민중적 군부독재의 사병이기를 양심선언으로 거부하고 '탈영병'의 신분으로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는 전투경찰해체투쟁위원회의 외롭고 어려운 투쟁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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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문학상은 전태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문학상이다. 전태일 기념사업회에서 1989년에 전태일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드높이기 위해 만들었다. 해마다 시, 소설, 생활 글 등에 대해 시상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는 청소년문학상도 따로 제정하여 시상한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청년 전태일이 고단한 몸을 누이고 기록했던 글들이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 모두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글이 성실하고 치열한 삶을 진솔하게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전태일 문학상이 공장에서, 농촌에서, 학교에서, 각각의 삶터와 일터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함께 나눠 갖는 문학상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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