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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가작

맹문재 '미싯가루를 타며'
김현아 '소나기'
조미라 '겨울산'

 

 

 


[심사평] 

 

눈에 번쩍 띄는 시는 없었지만 일하며 싸우는 사람들의 아픔과 따뜻한 마음을 읽게 해주는 시가 많아 즐거웠다. 노동자라면 으레 내세울 법한 구호를 앞세운 틀에 박힌 시가 예년에 비해 훨씬 줄어든 것은 노동시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말해주는 것일 터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노동자의 삶과 일에서 나온 "노래"가 있었으면 하는 점이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들 중 특히 네 사람의 시가 선자의 관심을 끌었다.

 

<미싯가루를 타며>(맹문재)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날로 하고 생활의 힘겨움을 씨로 해서 짜여진 따뜻한 시다. 시가 전체적으로 절망적인 분위기보다 희망적이고 어둡기보다 밝은 느낌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이 시의 미덕이다.

 

"어머니의 귀앓이도 동생의 수업료도/ 얽히고 설킨 우리집의 농협 빚도 장작 패듯 쪼개 내 조자고같은 진부한 표현을 "겨울 바람의 날개쭉지를 확 확 잡아 당기는 이 풀기"로 신선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솜씨도 상당하다.

 

굴뚝연기-목화송이-노동자의 한숨-가래침과 욕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엮은 <굴뚝연기>도 노동자의 아프고 힘든 생활을 잔잔하게 드러내는데 성공한 가작이다.

 

<겨울산>(조미라)은 갇혀 있는 이의 바깥에 대한 그리움이 아프게 가슴을 때리는 시다.

 

"시든 겨울산이/ 이 푸른 옷과 같이 푸르게 뒤덮힐/ 그 때는/ 함께 갇혀있는 청계산을/ 구치소 담너머로 넘겨주자고"같은 대목은 실제로 이러한 삶을 겪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표현이리라. 소재와는 달리 시가 가볍고 투명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 시의 장점이다. <외출 3>도 간결하면서도 맵게 오늘 이 땅에 깔린 아픔과 분노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데, 가령 "세상 사람들의 꿈이 숨죽이는 오늘"의 표현은 지은이의 현실에 대한 바르고 깊은 인식을 엿보게 한다.

 

<소나기>(김현아)는 시속에 일정한 얘기를 담고 있는 특이한 시인데, 사설이 많은 것이 흠이면서도 거꾸로 재미로도 되고 있다. 시를 억지로 꾸미지 않고 술술 나오는대로 써내려간 것 같은 방법도 시를 수월하게 읽히는 요소가 되고 있다.

 

"문득 전선줄을 타고가/ 그녀를 안아 오고싶다"는 동료들에 대한 따뜻하고도 깊은 사랑은 <소나기>뿐 아니라 매편에 넘치고 있지만, 이것이 자칫 늘어지고 처질 위험을 안은 사설조의 그의 시들을 힘있고 활기찬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미장공 형에게>(정연석)와 그 밖의 시들은 간결하면서도 쌈박한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미장이라는 작업에서 "금이 간 우리들의 허리에/ 한강변 모래 곱게 곱게 걸러서/ 흔적없이 바른다"는 말하자면 남북을 하나로 잇는다는 이미지를 끌어내는 것은 상투적이어서 조금 진부하다. 우리 노동시 또는 민중시의 고질로 지적되고 있는 청승과 넋두리가 철저하게 배제된 <현장에서 2,3>의 치열한 시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심사위원 : 신경림·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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