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심지 / 오도엽
굵어야 할 것이 있다
돈 욕심만 가득한 마음보 말고
직밟으려는 권력 욕심 말고
겉만 번지르한 명예심 말고
굵어야 할 것이 있다
가진 것 없는 몸뚱아리
팔뚝이 굵어야 한다
힘줄 툭툭 솟은 노동만이
거미줄 친 목구멍 건진다
굵어야 할 것이 있다
아침마다 힘 쓰는
똥발이 굵어야 한다
몸속에 남아야 할 영양기 빼고는
숙변 하나 어뵤어야 튼튼할 수 있다
그리고 굵어야 할 것이 있다
푸른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허리펴고
마을 앞 당산처럼 굵어야 할 것
겨례 사랑의 마음
백성 사랑의 마음
굵어야 할 것이 있다
갈보의 가랭이처럼 험하지 않는
잔 바람에도 휙휙 고개 트는
자연 동산의 풍향제 같지 않는
가시나인지 머슴아인지 볼 것 없이
희끄무레한 밀가루 살갗에
멀대같이 겅등거리는 꼴 말고
거무탱탱하게 그을려 탄력 넘치고
천리를 내달릴 허벅지의 근육으로
한번 버티면 꿈적도 하지 않는
그런 싸움꾼의 다리로 지켜야 할
굵어야 할 심지가 있어야 한다
길이 멀수록
바람이 거셀수록
[우수상] 수도물로 오는 봄' / 곽장영
[심사평]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 좋은 시의 첫째 조건
예심을 거쳐서 올라온 작품 가운데 다음 다섯 분의 시기 주목을 끌었다.
하태성 '앉은뱅이 저울' 외
유정탁 '달맞이꽃' 외
이문희 '아무도 울지 않았다' 외
오도엽 '머리를 깎으리' 외
곽장영 '수돗물로 오는 봄' 외
하태성의 시 중에서는 '굴비 굽는 저녁'과 '생과자 굽는 손'이 읽을 만하다. 우선 세상을 보는 긍정적이고 따스한 눈이 호감을 준다. 소재를 가까운 생활에서 있는 점도 살 만하다. 그러나 두 편이 다 소품이라는 느낌을 주는 흠이 있고, '앉은뱅이 저울'은 정리가 덜 된 느낌을 준다.
유정탁의 '달맞이꽃1'은 노동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장점을 갖고 있고 '2'는 노동자 아내의 고단한 삶과 외로움을 돋움새기고 있어 나름대로 호소력을 갖는다. 한데 '1'에서는 비유가 적절치 않고 '2'에서는 아내의 외로움이 과장되어 있다. 노동시의 상투성 같은 것이 보이는 점도 흠이다.
이문희의 '아무도 울지 않았다'나 '해고일기'는 힘도 있고 리듬도 있는데 너무 얘기에 매달려 있어 시의 맛이 덜하다. '작은 동지에서 전화를 건다'는 귀여운 딸아이를 빌어 노동투쟁가가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전하는 뜻이 분명한 것도 큰 장점이다.
오도엽의 '머리를 깎으리'는 결의와 힘으로 넘치는 시로서 회의와 고뇌를 알맞게 배합하는 등 술달된 솜씨를 보이고 있으나, 행사를 위해 쓴 시인 듯 그 한계인 상투성 같은 것이 보인다. 하지만 '굵어야 할 것이 있다'는 노동시로서뿐 아니라 시기 갖추어야 할 여러 보편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우선 리듬이 있는데 이 리듬은 곧 힘으로 연결되고 있다. "굵어야 할 것이 있다"의 반복도 효과를 거두고 있어 가령 "몸뚱아리"-"팔뚝"-"똥발"을 자연스럽게 "겨레 사랑의 마음" "백성 사랑의 마음"으로 이어주고 "한번 버티면 꿈쩍도 하지 않는/그런 씨름꾼의 다리로 지켜야 할/굵어야 할 심지"를 이끌어 낸다. 적당한 속어를 쓰는 것이 시를 얼마나 살아 있게 만드는지 눈여겨볼 대목이다. '꼬창모'나 '이젠 살 만한데' 모두 시의적절한 발상이요, 생각도 바르고 건전할뿐더러 뜻의 전달도 분명하다. '우리 것이 제일인 겨'는 뻔한 알레고리 같으면서도 시기 재미있다. 오도엽의 시를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것, 이것이 좋은 시의 첫째조건이라는 선인의 말이 생각난다.
곽장영의 '수돗물로 오는 봄'은 노동시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밝은 분위기가 좋다. 수돗물에서 "백두산 천지를 넘쳐/두만강 압록강으로 흐르는"을 연상해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기서 다시 "아직도 살아 있는 내 몸뚱아리…"를 확인하다니 얼마나 놀랍고 발빠른 상상이랴. '일장기 휘날리는 전폭기로 대한민국을 날려버리는…'은 제목이 너무 장황하고 황당하다. 그러나 독특한 발상과 전개는 살 만하다.
위에서 들어 보인 시 가운데서 오도엽의 '굵어야 할 것이 있다'를 최우수작으로, 곽장영의 '수돗물로 오는 봄'을 우수작으로 뽑는다.
- 심사위원 신경림(시인)
시 | 최우수상 우수상 |
오도엽 '굵어야 할 것이 있다' 곽장영 '수도물로 오는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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