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내 안에 살아있는 사랑에 대하여 / 장옥자
[우수상] 비가1 외 2편 / 조수광
[우수상] 이불 냄새 외 2편 / 조혜영
묵을해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거꾸로 돌아가는세월이 노여울 때
나는 수덕사에 가곤 한다
수덕여관에 들러
두고 온 것들에 마음 쓰일 때
저녁예불 소리가
피어나는 한숨까지 달래준다
잘 구워진 아랫목에 누우면
삘기처럼 피어난 곰팡이털이
웅숭거린 몸 구석구석 파고든다
누군가 묻히고 간 발 냄새
땀 냄새 담배 내 묻은 이불이
가슴을 자꾸 문지른다
오늘은 시름 한 가락 못 달래고
먼 산자락만 쳐다보다 떠났을
추억 묻은 이불을 골라 덮는다
포크레인 소리 잠시 멎은 수덕사에서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철지난 흔적을
나도 꽃이불에 지려놓고 가고 싶다
잠은 멀기만 하다
[심사평]
장옥자의 '내 안에 살아 있는 사랑에 대하여', 조혜영의 '이불 냄새'(외 6편), 조수광의 '대화'(외 5편) 등이 이번 응모작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이었다.
'내 안에 살아 있는 사랑에 대하여'는 한 여성 노동자가 사랑에 눈뜨면서 그것이 노동자의 자각으로 이어지고 사랑과 운동의 조화 속에서 결혼에 이르렀다가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노동운동가로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한 끝에 다시 노동운동에 헌신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장시이다.
700행 가까운 긴 시이면서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것은 언어의 낭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도 간결하고 생략도 대담하다. 그러면서도 무리가 없고, 인물이며 장면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시인이란 쉽고 분명하고 힘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시는 이 세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쉽기도 하고 분명하면서도 힘이 있다. 그 힘은 무엇보도다 '아직도 나는 발전적인 노동조합 간부/전진적인 운동가의 자세/노래는 철의 노동자를 부릅니다.'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정직성에서 오는 것 같다. 이 정직성은 자칫 사회성에 치우쳐 뻔한 옿은 소리로 끝날 수 있는 소재를 개인적 문제로 환원하면서 감동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맨 뒷부분인 17장이 힘은 있지만 조금은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흠이 있다.
조혜영의 '이불 냄새'(외 6편)는 거의 전편이 표현에 무리가 없기도 하지만, 더 큰 미덕은 매우 따뜻한 시각의 시라는 점이다. 가령 '이불 냄새'에는 '포크레인 소리 잠시 멎은 수덕사에서/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철 지난 흔적을/나도 꽃이불에 살짝 자리 놓고 자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 따뜻한 시각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일 것이다. '무너지고 흩어지는 아픔들을 물리/분석을 붙인다. 이 시대의/산 부적이 되고 싶은 나는'(부적) 같은 구절도 빛난다. 노동자를 내세우지 않고도 노동자의 정서를 형상화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이팝꽃'이나 '물레방앗간'이 '부적'이나 '이불 냄새' 또는 '노래하는 한의사'에 비하여 처지는 까닭을 스스로 깨달을 때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대화'(외 5편)는 시를 많이 공부한 사람의 작품 같은데, 그런 사람이 항용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우선 소재가 틀에 박힌 것처럼 보인다. 이 세상에 시의 소재가 되지 못할 것은 없다는 말은 이미지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한 말이지만, 이 사람은 너무 시적인 소재를 고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감정의 낭비도 심하다. '왜 듣지 못하였는가 나는/꺾이는 싸리꽃 그 처절한/비명소리를'(싸리꽃를 꺾고서) 같은 도입부는 너무 과정되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감정의 분류를 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가 불분명한 것도 지기 인유하는 것 같은데,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바라볼 때 더 명확한 시기 쓰여진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화' 같은 시는 매우 뛰어나다.
이상의 작품 가운데서 장옥자의 '내 안에 살아 있는 사랑에 대하여'를 최우수작으로, 조혜영의 '이불 냄새'(외 6편)와 조수광의 '대화'(외 5편)를 입선작으로 뽑는다.
- 심사위원 신경림, 이행자
이팝꽃 / 조혜영
검지에 핀 꽃 / 조혜영
감자 썰다 검지에서 피 뚝 떨어진다
아리다
한 시절 아리게 산 적 있었지
하얀 광목천에
검지를 갈라 노동해방을 쓰고
한번은 검지를 깊게 베어
원직복직을 외치며 혈서를 썼는데,
지금 그 검지에서
붉은 피 뚝뚝 떨어진다
하염없이 피가 흐르고
도마를 타고 싱크대로 흘러가는데
옹이 박힌 손끝에서 꽃망울 터진다
나는 지금 무어라 쓰고 싶다
한번 꽃처럼 붉게 피어
가슴 깊은 상처를 다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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