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최우수상
우수상
추천작품
정인화 '불매가'
최동민 '보험별곡'
전경해체투쟁위원회 '사과 두 개' 외
백두산모임 '백두산' 외
정경규 '부평시장에서'

 

 

 

불매가 / 정인화

26. 아, 참으로 욕되게 살아왔네

아, 고개 조아리며 숨 죽여 살아왔네
목구멍 풀칠 무서워
밤이면 밤마다 새순처럼 돋아나는 분노
비겁하게 꺾어가며 흐느끼며 살아왔네

코쟁이 나라에서 주문한 배 만들다
족장에서 떨어져 죽은 절단조장의 죽음을 보고
나만은 원숭이처럼 조심스레 족장타며
죽은 놈만 서럽다고 비웃고는
흩어진 밥부스러기 줏어 먹기에 바빴네
아, 내리치는 피묻은 채찍 앞에
꿇어앉아 두 손 비비며 치사하고 더럽게 살아왔네
그까짓 목구멍 풀칠걱정
바닥 기어다니는 똥개처럼 살아왔네

돈 있는 놈, 힘 있는 놈, 권력쥔 놈 앞에
지레 겁 먹고 살려줍쇼, 죽여줍쇼, 눈치코치 보며
참, 더럽게 살아왔네
권력과 돈과 힘 앞에 빌붙어
죄없는 동지 걷어차고 밀어내며
아, 참으로 욕되게 살아왔네

온갖 비열과 비겁함으로 얼룩진 우리들의 몸
이래도 죽지않고 살아있는 짐승같은 우리들의 몸
풀무 속에 던져져 이글이글 남김없이 타고싶네
산산조각 흩어지는 불씨로 다시 태어나고싶네

아, 다시는 이제 다시는
더럽고 치욕스럽게 살지 않을려네
목구멍 풀칠걱정도 내던지고
더러운 밥부스러기 걷어차버리고
쌓여진 분노로 앙금진 각오를
칼날처럼 가슴깊이 품고 살아갈려네

민주노조 일어선다 당당하게 세워보자!
잃어버린 노동댓가 투쟁으로 쟁취하자1

후려치는 채찍 나꿔채어 분질러버리고
기만과 권위로 번들거리는 얼굴 걷어차버리고
짱돌로 날아가 부딪힐라네
수만 개의 비수 되어 꽂혀버릴라네
다시 죽어, 차라리 다시 죽어
4,5월 피 토하는 진달래로 피어날려네
지지않는 진달래로 피어나
온 땅 뒤덮을라네










 

구체적 현장성과 운동의 실천성 / 김병걸




전태일문학상 시부문에는 예심을 통과한 15명의 작품들이 본선에 올랐다. 15명 중 [불매가]의 정인화씨, [보험별곡]의 최동민씨, [사과두개]외 많은 시를 응모한 전경해체투쟁의원회, [백두산]의 백두산 모임, [광부]의 성희직씨, [할아버지 이상해요]의 '시와 실행'동인 등의 작품들이 우선적으로 검토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인화, 최동민, 전경해체투쟁위원회, 백두산 모임 등 4명의 작품이 최종 심사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심사기준으로는 전태일문학상 제정의 정신에 따라 '노동해방 인간 해방운동의 구체적 현장성과 운동의 실천성이 객관적으로 표현되었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구체적 현장성과는 동떨어진 관념적 작품들은 수상작에서 배제 되었으며, 또한 기성시인이나 그에 준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오 '현장 시인'의 배출우선이라는 차원에서 배재되었다.
이러한 심사기준과 심사과정을 거쳐 전태일 문학상 시부문 수상자로 정인화씨 최동민씨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정인화씨의 [불매가]는 전체 심사위원회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출되어, 제1회 전태일문학상 최우수작은 시부문에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정인화씨의 [불매가]는 서사시적 요소가 깃들여진 종 28편의 연작시로서, 지난 1987년 울산의 현대조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일어난 '7·8월 노동자대투쟁'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1편에서 28편까지의 짜임새 있는 구성이며, 예심을 통과한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구체적 현장묘사가 결여된 채 노동해방의 당위성에만 치우쳐 있는 반면에 이 작품은 비교적 '노동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이라는 주제가 노동현장의 구체적 묘사와 함께 잘 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7·8월 노동자대투쟁'이라는 사건이, 짤막짤막한 연작시로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사건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군데군데의 생경한 표현들이 눈에 거슬리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라 하겠다. 하여튼 정인화씨의 [불매가]는 선명한 주제, 구체적 현장성, 짜임새 있는 구성 등이 다른 예심통과자의 작품보다는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최동민씨의 [보험별곡]은 정인화씨의 [불매가]와 함께 선정된 수상작으로, 주로 보험회사와 보험회사 직원들의 노동현장에서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최동민씨는 예심을 통과한 15명 중시를 다루는 솜씨가 가장 안정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시의 소재가 노동현장에서부터 일상적 생활과 정치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넓고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의 다양함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보면 주제가 조금 산만한 것 같고, 구성에 있어서도 완결성이 다소 떨어지고 있다.
조선남, 김강산, 이기홍씨 등으로 이루어진 '백두산 모임'의 작품들은 상당한 가능성을 엿보이게 해준다. [아가야 어린이날에]등의 작품에서는 마치 박노해를 연상할 정도로 노동현장과 일상의 삶들을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아가야 어린이날에]와는 달리 노동현장의 생생한 정서를 상실한채, 공허한 구호의 외침 내지는 노동운동의 사회과학적 해설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이점에서 매우 아쉽다. '시와 실행'동인의 [할아버지 이상해요]외 15편의 작품들은 경남 울주와 온산직역의 공해문제를 소재로 공해의 피해와 공해 피해주민의 이주문제를 다루고 있다. '시와 실행'동인들의 시를 다루는 솜씨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작품의 내용이 반공해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게도 수상에서는 제외되었다.
성희직씨의 [광부]외 12편의 작품에서는 광산노동자의 일상적 삶이 매우 구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노동의 문제가 개인주의적 차원에서 표현되고 있음으로 해서 노동해방의 본질에는 미처 접근하지 못하는 약점이 노출되고 있다.
최인석씨의 연작시 [작업일지] 5편은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보다는 문학적 형상화가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작업일지]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것은 거칠고 투박함에 ?나는 생동적인 노동자의 정서가 아니라, 조금은 우울하고 폐쇄적인 지식인적 관념의 정서가 느껴진다. 이 점에서 [작업일지]가 시적 형상화는 뛰어나다 할지라도, 시를 읽은 대상 즉 노동자의 입장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최인석씨가 '현실시각'동인으로 이미 기성시인에 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깝게도 수상에서는 제외되었다.
서수찬씨 [복개공사]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한달도 못가서 / 뚫고 일어나 떠내려 오는…"라고 부실 복개공사를 꼬집는데, 여기서 복개공사는 2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올림픽이 끝나면 금방 부너져 버릴 '허구'의 의미로서, 갇혀 신음하는 민중을 복개천의 오물로서 표현하고 있다. 분명 [복개공사]는 뛰어난 작품이지만 이외의 다른 작품들이 [복개공사]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김석준씨는 비교적 담담하고 소박하게 노동하는 자신과 주변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이는 다른 대부분의 예심통과자들에게는 볼 수 없는 '건강한 일상성'이 표현되고 있어서 우선 호감이 간다. 그러나 몇몇 작품에서 살아나는 이러한 건강한 일상성이 다른 작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나약한 일상성으로 떨어지고 더러는 거친 구호로 표현되고 있다.
김윤환씨는 어느 정도의 시적 재질을 가지고 있는 듯 하나 소재와 주제의 불분명함으로 인해 시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백창일씨의 작품들은 다른 예심통과자들과는 달리 주로 상징적이고 풍자적인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우선 제목만 보아도 [똥개], [보리방구], [씨뿌린 놈은 바쁘다] 등이 그렇다. 이러한 소재로 시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자칫 말장난이나 관념의 유희에 빠지기가 쉬운데, 백창일씨의 경우 역시 이러한 단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풍자적이고 상징적인 발랄한 상상력을 키워나간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경규씨의 [부평시장에서], 김태연씨의 [하늘나라에서], 유기성씨의 [희망만들기]등은 주제의 명확성, 구체적 노동현장의 묘사 등 제법 수준작이라 평가된다. 그러나 이 세삼람의 나머지 작품들에서는 위에 열거한 자굼보다 구체적 현장성이 결여되고 있고, 공허한 구호의 외침이 조금 과장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전경해체투쟁위원회의 연성흠 외 2인의 작품들은 경직되고 반인간적인 전투경찰의 삶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나는전투경찰.../방패는 나의 갈라진 조국이다/방패를 들고 서 있는 나는/제5공화국을 지탱해 온/초라한 전투경찰일 따름이다"라고 군부독재정권의 사병으로 전락해버린 십만 전투경찰의 고뇌와 몸부림을 폭로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쏘라면 쏘고/때리라면 때리고/잡으라면 잡는/빵과 채찍으로 훈련되어지는/나는/노예일 수 없다/전투경찰일 수 없다"라고 반인간적 조직과 구조로부터의 해방과 아울러 이땅의 진정한 민족-민중해방에의 동참의지를 결연히 선언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수상에서는 제외는 되었다 하더라도 인간해방투쟁의 차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반민족적, 반민중적 군부독재의 사병이기를 양심선언으로 거부하고 '탈영병'의 신분으로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는 전투경찰해체투쟁위원회의 외롭고 어려운 투쟁에 경의를 표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