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중고가전 수거 차량처럼 / 신용목

비온 뒤 지구는 커다란 비눗방울 속에 갇힌 것 같다. 울고 난 뒤 너는 너만큼의 비눗방울 속에 갇힌 것 같다.

차 마실래?
아니,
아무도 저어주지 않아서
물고기는 어항 속을 저 혼자 빙빙 돈다.

물고기는 녹지 않는다.
아픈 사람의 입술에 물려주는 젖은 헝겊처럼 빨래가 널려 있다. 빨래는 어항 같다. 아무도 마시지 않는다.

소리가 들린다. 차들이 왔던 길을 가는 소리.
물속처럼,
너는 오후를 조용히 보낸다.
후후, 불며 졸음이 졸음을 마시는 동안에도 옷은 조금씩 빨랫감이 되어간다.

책을 펼치고 어떤 문장도 읽지 않는다.
그래도

책 속에는 사랑이 있다. 이야기는 사막이거나 바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폭풍우를 건너는 낙타가 있고, 죽어버릴 거야. 문을 쾅, 닫고 나가서는 어느 모퉁이 식당에서 국수를 삼키는 순간이 있고
책 속에도,
책처럼 조용한 사람이 있다.
끝.

창문을 닫으려고 창가로 간다.

너머엔 학교가 있다. 여름이 운동장에 물길을 만들고 사라진 뒤 아이들은 다시 빗방울처럼 돌아올 것이다. 팔, 구, 사, 오, 전화번호를 크게 알리며 중고가전 수거 차량이 지나간다.

어항은 식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