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학회學會 / 박해람
한 켤레의 물을 신고 걷는다.
자꾸 흘러내리는 물의 기장機長
물광내는 남자를 알고 있다. 수 천 겹의 물을 덧바른 남자의 손엔 까만 물때가 끼어 있었다. 적란운積亂雲인듯 하지만 흑연黑鉛이 낀 손톱이 열 개. 아침마다 짐승 하나가 송곳니로 빠져나가면 입속을 헹궈내던 물. 남자가 물로 닦아온 것들은 다름 아닌 짐승들의 발, 한 켤레의 구두가 번식시키던 질긴 노동.
물을 덩어리라고 인정하지 않는 학회學會의 간사를 지낸 남자를 알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물의 뼈는 쉬지 않고 졸졸 소리를 낸다고 했다. 돌 속에서 성호를 그은 물의 종류 중에는 나무빨래판이 있다고도 했다. 또 물을 세공해 파는 남자도 알고 있었는데 물은 와장창 소리가 없어 절대 깨지지 않는다고 했다. 바닥에 흘려도 쓸어 담을 빗자루가 개발되지 않았음으로 파편이 되지 못한다고도 했다. 또 어릴 때 물을 동생으로 둔 친구는 틈나는 대로 물을 업어주었는데 가끔 따뜻한 물이 등을 적셨다고 했다. 물이 울고 물을 달래다 짜증을 내면 친구의 엄마는 물 흐르는 대로 살아라,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하류에 모여 살던 신발들을 찾으러간 친구는 발목을 삼킨 물에게서 평생 허우적거리는 법을 배워왔다고 했다.
가끔 그런 생각은 안하나?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는 물은 물물교환 하듯 지구의 곳곳을 섞어놓고 한 모금으로도 사막과 대항할 수 있고 모래들의 주인이며 지구의 제곱미터들의 합산이기도하며 모든 돛들의 정박지이기도 한 물은 미시시피와 황하의 그 길고 긴 거리로 지구를 둘둘 감고 있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물을 세공하는 남자와 물광내는 남자와 아가미가 달린 구두를 신고 뻐끔뻐끔 걸어가는 남자는 같은 이름을 하고 선미船尾라는 이름의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내 친구인데 훌쩍훌쩍 울고 있는 물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물엔 매운맛과 뜨거운 온도가 들어있고 단맛과 신맛이 들어있지만 맵고 뜨겁고 또 달고 신맛은 그날그날의 표정일 뿐이라고, 꼼지락거리고 비늘이 돋는 열 개의 발가락을 신겨주고 가는 것이다.
밀물을 접안시키는 도선사導船士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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