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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 K씨 / 이명윤
자판은 *빵을 굽거나 생선을 튀길 수 있다
자판에서 밥이 나오고 월세가 나오고
밀린 전기요금이 나온다
숙련된 손이 자판을 두드리면
다각, 다각, 다다다각,
모니터 속에 발자국을 남기며 그가 달린다
그의 눈을 자세히 보면
분해된 자음과 모음과 숫자와 이름 모를 기호들이
물고기처럼 유영한다
언젠가 그가 심혈을 기울려 만든 새 이름의 상품이
어디론가 날아간 뒤
온 우주를 뻘뻘 뒤지다 돌아온 그는 수시로
시간을 저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각, 다각, 다각각, 다다다다다,
생각의 재봉틀로 밥이 조립되고
단추 구멍 같은 시간 속으로 그가 달린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는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다
두 눈이 낮달처럼 휑하거나 뒷골이 팍팍 댕기는 것은
노동의 갸륵한 표식이다
그의 바지는 늘 깨끗하고 바지 속 두 다리는
식물처럼 바닥에 닿아있다
늦은 밤 사무실
그가 표의 창살 속에서 무의식의 기호로 갇혀 있다
비쩍 마른 두 손이 하얀 세상을 길게 쥐어뜯는다
하루의 전원이 좀체 꺼지지 않는다.
* 남진우시인의 시‘요리사의 밥상’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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