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폐교에서 / 장은선
동심원을 둥글고 둥글게 그리며
뭉게구름 따라 줄지어선 나무들
하기식 하던 가슴들 나지막하게 울리던
해맑은 풍금소리 멈추고
시냇물에 햇살이 구부러지는
먼지 낀 유리창 안엔
주인 잃은 낡은 책상과 걸상들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찌푸린 얼굴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가지치기 안 돼 머리를 풀어헤친 교목들
누구를 원망하듯 하늘을 뚫어대도
재빠른 다람쥐들 예전의 악동들처럼
오르락내리락 체조경기를 하고 있다
뛰고 숨고 넘어지다가
선생님 발자국소리에 화들짝 놀랐을
실내화 한 컬레
교실 밖 세상 문으로 쓸쓸히 향하여있고
여름날 물방개치고 물수제비뜨던
개구쟁이들이 화살로 쏘아 맞히던
하이얀 백묵조각들
읽다가 못다 읽은 동화로 흩어져
어느 길에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서로를 호명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심사평]
2백31편에 이르는 가편(佳篇)들을 심사하면서 우리는 작품을 뽑기보다는 제외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남은 작품이 「산골 폐교에서」「못생긴 소나무」「문상」「겨울-아버지의 유년시절」「내가 눈이 되어 내린다면」등의 5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산골 폐교에서」를 당선작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완성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서경적 묘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나, 시 전편에 흐르고 있는 정서는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애틋한 그리움, 소중한 추억들이다. 다만 종결부에 나오는 ‘화살로 쏘아 맞히던’과 ‘무엇이 되어 만날지’와 같은 싯구에 기성시인의 체취가 느껴진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시상 전개에 무리를 주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애써 접어 두기로 하였다. 공모제의 장점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완성도에 집착하므로 나머지 네 편을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으나 내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들 가운데 어느 한 편을 뽑아도 좋을 만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대문학상의 연륜과 함께 응모작들의 평균 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음은 큼 기쁨이었음을 밝히면서, 더욱 정진하시길 한 마음으로 빈다.
- 심사위원 : 손종호(시인, 국문학과 교수), 이동규(시인, 회계학과 교수), 현영민(영문학과 교수)
[당선소감]
아침에 뜻밖에 전화를 받았다. 문학상에 당선되었다는 나보다 밝고 명확한 목소리다. 전화에는 갖가지 사연들이 오고 가는데 이렇게 기쁜 말들이 오고 갈때도 있다.
민들레가 홀씨를 우주의 송신탑처럼 퍼뜨리는 계절의 여왕 오월의 끝자락에서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들도 열흘을 못간다더니 화사하던 철쭉과 연산홍이 저물어가 누렇게 탈색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다시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만개하여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찔러댄다. 그리고 어머니와 소녀인 딸이 아카시아 이파리를 따서 서로 가위 바위 보를 하며 한걸음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가고 있다.
세상살이도 저렇게 꽃잎을 세며 나아가는 것처럼 자연의 순리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급하게 달려가고 있는 걸까?
이 바쁜 디지털 시대에도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살냄새가 풍기는 아나로그 문화인 것 같다. 이것은 문학이 홀대를 받아 존재가치를 잃으면서도 스스로 융성이 꽃피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유행처럼 번지는 이농현상과 더불어 시골에는 그림 같던 산골분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덩그러니 빈 건물에는 꼬마주인들을 잃은 채 다람쥐 산토끼 청솔모등이 간간이 들리는 정류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주한 어린이들은 도시의 아파트단지 옆 협소한 운동장에서 온갖 확성기 소리와 차량의 먼지 등으로 맑고 순수했던 정서를 잃지는 않을까 도시의 온갖 문명을 즐기면서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시골과 동심의 아련한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소외된 것들은 존재의 그림자를 투영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거울이 돼주고 두레박줄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인간이 선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도 바르게 가려고 애쓰기 때문에 어설픈 글이나마 붙들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작품을 선하여주신 심사위원님과 충절의 땅에서 전통 있고 훌륭한 문학상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충남대학교 관계자님들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대학문학상 > 충대문학상(충남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5회 충대문학상 당선작 (0) | 2012.10.04 |
---|---|
제47회 충대문학상 당선작 (0) | 2012.10.04 |
제48회 충대문학상 입상작 (0) | 2012.10.04 |
제49회 충대문학상 입상작 (0) | 2012.10.04 |
제52회 충대문학상 당선작 (0) | 2012.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