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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 / 송인덕


빨랫줄에 걸린 할머니 조각보에

햇살이 조각조각 펄럭인다

명주실로 서로를 꼭꼭 붙들어 매고 있어

이쪽 저쪽 색깔들로 건너다닐 때마다

햇빛이 제 색깔을 바꾸며 논다

오래전 내 기억이 아직 어려서 뛰어 놀 때에도

우리집 남루한 밥상을 덮고 있었던 조각보


저 조각보는 우리집 가족사다

가족이어서 오히려 불편한 몇 명의 색깔들

그 틈이 헐거워질 때면

할머니는 손수 그 조각과 조각 사이를 집으셨고

저마다 울긋불긋한 가족

낡은 할아버지가 떨어져 나가시고 그 자리에

동생의 노란 색깔이 덧대졌으며

어쩌다 누군가의 불평이 실밥처럼 불거지면

“뭐든 같이 사는 게 좋은 뱁인거여”라는 입버릇을 꼭꼭 저며

새것이 되던 조각보


가난한 물이 빠져

이제는 그 색색의 기억들도 희미해져

허기진 밥상같이 텅 빈 마음들

그래도 예전을 생각하면 참 선명하던 밝던 색깔들

단단하게 명주실로 연결된 가족들이

오전, 빨랫줄에서

서로 튼실하게 엮인 채 팔랑거린다

한 집안의 내력이 잘 말라가는 오전이다





[심사평]


  한 편의 시가 참신성과 완성도를 두루 갖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참신성에 이 무게중심을 두다 보면 완성도가 떨어지고, 반대로 완성도를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참신성이 부족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 부문 심사는 작품들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얼마나 조화롭게 갖추고 있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 공모한 시 묶음을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대체적으로 신인다운 패기와 열정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의 초보자들은 완성도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도전적이고 창발적인 시상을 보여주는 게 일반적인데, 그 반대 현상을 목도한 것이다. 조금 서툴러도 새로운 시문법과 개성적 언어를 찾아나서는 예리한 전위정신이 아쉬웠다고 하겠다.

  이런 가운데 <조각보>, <거울을 품고 있는 저수지>, <내복>, <낯선 정겨움> 등의 작품이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이 네 작품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고 토론과 토론을 반복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조각보>를 당선작으로 뽑는 것으로 마음을 모았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참신성과 완성도를 고루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각보>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각보’라는 사소한 사물의 내력을 ‘한 집안의 내력’에 빗대어 표현한 기발한 작품이다. 작은 소품을 매개로 발발한 이미지뿐 아니라 일상과 서사를 아울러 개진할 줄 아는 솜씨가 마뜩하기 그지없다. 큰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박영원(충남대 영문학과 교수), 이형권(충남대 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당선소감]


  온종일 비가 왔다. 낮은 곳에 고인 빗물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 한 점 한 점 비꽃을 피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끔씩 물방울이 둥둥 떴다가 터지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것이 그런 것일까. 빗물의 파문과 파문처럼 인연이 겹치면서 서로를 알게 되는 것…

  우산 속 누군가의 어깨가 어색하게 부대껴왔다. 저녁부터 문득 생각난 듯 내리던 비는 어딘가 낯설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본 습한 기운에 몸이 나른해졌다. 차갑지 않았던 비는 마음의 온도… 그러고 보면 무엇이든 버리고 떠나려는 사람은 비를 사랑한다. 눈이 쌓여 녹아가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울컥울컥 솟아나는 마음이 침수(寢水)되는 지점에서, 거리가 비에 젖어갔다.

  사람을 오래 쳐다보지 못하던 습관을 만들어준 것도 사람이었고, 다시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가르쳐준 것도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준 상처와 부대끼며 살던 스물 다섯해 동안 천천히 배워온 것 같다. 따듯한 마음을 뿌리치지 않는 법.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왔고, 내게서 떠나갔다. 다가온 사람은 내게 없던 기쁨을 심어 주었고 멀어진 사람은 내게 없던 상처를 심어주었다. 기쁨과 상처가 글자가 되어 내 주위를 맴돌았고 그 중 몇 개의 글자를 붙잡아 두고 종종 밤을 새웠다.

  생각해 보면 내게 있어서 시를 쓰는 행위가 사랑을 하는 행위랑 많이 닮아 있다. 바깥에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했다면 원고지 속에서는 나와 세계 사이에서 무척이나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곳을 탈피하고 싶었고,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이들에게 나의 때탄 소맷자락을 빌려주고 싶었고, 수없이 많은 질문 속에서 알 수 없는 끓어오름으로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시로써 나는 소통하고 싶었다.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지만, 정작 수상소식을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문자 한 통 보낼 용기조차 없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나를 웃게 해서 고마운 사람들, 나를 아프게 해서 고마운 사람들, 늘 곁에 있어서 고마운 사람들… 모두 고맙다. 지금보다 더 용기를 내서, 더 오래 오래 함께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 주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열심히 더 아프게, 또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시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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