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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몰운대 시편 / 유종인

 

푸른 안개와 주홍빛 구름에 가려서

근해(近海)는 거칠 거 없는 바람의 행로가 되었나

아니다 크나큰 돌부리처럼 구름에 가린 섬들에 발이 걸려

어떤 바람은 코가 깨져서 드디어는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던 몸을 드러낼 뻔 했던 곳,

안개가 서서히 밀릴 때면

그게 바람이 몸을 얻어 진솔의 옷 한 벌 갈아입는 기척이려니 싶은 새벽,

광야와 어둔 골짝을 지나 사막에서마저 흘리고 다닌 몸

어디 내 맞는 옷이 있는가 안개의 탈의실 한켠에 선 바람을

붉은어깨도요와 삑삑도요와 알락도요가

큰노랑발도요마저 불러 바람의 보일락말락한 허릿살을 흘끔거릴 때

바람은 차마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몸을

안개와 구름에 가린 섬 뒤로 숨기며 산산이 흩어지듯

저 투명한 방랑기, 저 색깔을 입힐 수 없는 역마살(驛馬煞)

도로 안개에 능놀다 부푸는 구름그림자마저 털고

몰운대의 긴 한숨처럼 묵묵한 갯바위의 정수리를 짚고 사라진다

 

 

이에 홀로 묵묵한 섬들이

안개의 주렴 너머에서

이제껏 파도와 적막의 뒷배를 자처한 섬들의 으늑한 행색을

습습한 몰골법(沒骨法)으로 뭉클하게 그려내는 수묵(水墨)의 파도소리,

번지는 그 파도에 조금씩 섬의 눈썹그늘이 짙어오고

새삼 소금물에 갈퀴발이 저린 괭이갈매기의 울음도

횡축(橫軸)의 몰운대도(沒雲臺圖) 왼쪽 한귀퉁이에 붉은 낙관(落款)으로 찍힌다

 

 

이제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 안개와 구름 속에서 한 피붙이로 살갑던

섬들마저

 

저마다 떨어져선 하얀 파도를 홑이불마냥 섬둘레로 끌어다 입고

몰운대 쪽으로 갈매기를 날린다

아까 안개와 구름 속에서 봤던 거는 눈감아 주기야, 몰운대여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어슴푸레 가리웠던 그 서늘한 장막 속에서는

어눌한 여명과 눈두덩이 뜨거워지는 먼동을 기다리며

한 생애에 두 번의 풍광에 능노는 오지랖을 사는 거야

안개와 비구름에 잠겼던 섬들이 깨어나며

 

 

몰운대에게 그윽한 눈웃음을 제비갈매기떼로 대신 날리는 거였다

 

 

 

 

[최우수상] 다대첨사(僉使) 윤흥신(尹興信) / 윤주동

 

1

 

임진년 그 함성에

그날의 모습으로

 

노을에 부서지며

소리쳐 오는 파도

 

쏘아라

비장한 군령

그 외침도 들린다.

 

 

 

2

 

왜군의 침략으로

핏물에 찌든 바다

 

그때의 울부짖음

귓전에 생생한데

 

순절(殉節)

다대첨사 윤흥신

 

 

파도 되어 묻혔나.

 

 

 

 

 

 

[우수상] 구평 가구프라자 / 배옥주

 

노부부를 내려놓은 3번 마을버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탈길을 오른다

산번지에 둘러싸인 가구 동네

볕 좋은 기슭의 가구대통령쥔장은

땡 처리 소파에 누워

노마진의 백일몽을 건너간다

길없슴 팻말을 간판처럼 끼고 서 있는

가나안포장공장

선물 같은 박스들은

지나간 봄날처럼 겹겹 포개져 있다

비옥한 약속의 땅에서

벌나비들이 젖과 꿀을 찾는 사이

사거리에 들어선 <나무마음> 공방

물푸레 책상은 누구에게 편지를 쓰려는 걸까

서랍의 속마음을 펼쳐놓고

푸른 물의 생각에 잠겨 있다

구평농장을 떠난 한센인들은

어디선가 간절한 삶을 꾸려가고

문드러진 발목으로 한 생을 버티는 의자 셋

느티그늘과 개미들이 쉬어가도록

기울어진 배려를 내준다

신평을 내려다보는 옥수수밭이

건장한 어깨로 울타리를 치는 구평

토박이로 자란 칡넝쿨은

 

 

거북섬을 향해 느린 순을 뻗어간다

 

 

 

 

 

 

[가작] 을숙도, 백조의 춤 / 김영욱

 

 

먼 길을 돌고 돌아온 강물은

짠물을 만나는 을숙도에서 쉬어갑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긴 여행에 지친 철새들도 을숙도에서 쉬어갑니다

 

저녁이 오면

태양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갯벌 위에선

백조들의 공연이 시작되지만,

 

사람들은 모릅니다,

발레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하얀 날개옷 입은 목이 긴 백조의 전설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백조들은 한 다리로 서서 잠을 잔다고,

발레리나의 원조가 우아한 백조라는 사실도

모른 체, 아는 척을 합니다

 

갈대숲이 들썩입니다,

긴 다리를 드러내고 날갯짓하는 무용수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갈대들도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작을 배우고 싶어

외발로 서서 꼬박 일 년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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