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모래톱 / 윤빛나
몇 겹 이빨로 사납게 오르내리던 수난의 고집쟁이
가막조개 부둥켜안은 모래들의 습관을 긁어내던
똥색 월급봉투, 사그락 사그락
그 이름, 빨갛게 달구어진 희망 찬 사발을 건네주던 사막
붉은 노동 한 잔의 입을 걸어 잠근
숯검댕이 아버지 낡은 어깻죽지가
짊어지고 오던 막걸리 냄새 절뚝절뚝
그리움 푹푹 빠지는 신평공단길 골목창 지나
개망초 피는 집에 갓난쟁이 발톱들이 찾아오면
그 자욱한 찬장을 열어, 한 홉 사하의 꿈 물려주시던 어머니
가시리 풀 끓여 신문지 발라놓은 둥지는 만원이었다
냉이꽃 찌그려져 검은 모기 한 마리 갇혀 있던 동공 속
양은 빛 하오를 비추던 오래된 저녁
섬돌 위에 사람인자 걸어 놓은 검정 고무신 십일 문짜리
몇 땀 궤매 신은 작은 바다가 데리고 온
발가벗은 생멸의 알갱이들
참빗 쟁기를 뚝뚝
무명의 옷을 벗기던 안개의 머리카락
곱게 빗겨놓은 모래 언덕
깊고 긴 강물의 비밀만큼 쌓이고 만나서
종잇장처럼 헤어지던 방목지
사철 농구같이 구부러진 손가락
푸르른 전설이 기어 와서
사하의 궁전을 짓던 모래의 고향
청보리 빛 목소리 들리는 선잠결에
사하의 노래가 여울져오면
사글셋집 달빛 이불을 끌어당기는 새벽
울엄마 달여놓은 재첩국 한 양동이 보글보글
부추빛 사랑 한 다발 썰어놓고
일어나소, 일어나소, 아버지를 깨우던 멀구슬남 소반상
뒷문 밖 재두루미 엄마, 팔십 살 먹은 괘종시계
새벽밥을 먹여 놓고, 모래톱을 본다.
[최우수상] 을숙도 억새 / 김영욱
저것은 기다란 은빛 물고기
한때는 물 맑고 먹이 많던 바다에서
자손대대 번식을 약속했으나
바람에 살 다 뜯기고 뼈만 남아
하얗게 샌 머리칼을 부비며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가르고 서 있다
감기지 않는 문망울은 어둠 속에 감춰두고
꼬리지느러미를 면사포처럼 흩날리며
바람을 뿌옇게 애태우고 있다
그래도 한때는 옆선을 세워 물결을 주름잡던
저것은 은빛 물고기
어느새 제 속을 다 비우고 뭍으로 올라와
물구나무 자세로 허리를 살랑이며
달빛 아래 칼춤을 추고 있다
바람과 바당이 흘러한 밤바다
날개를 훔치다 푸새가 되었지만
물의 나이테를 부력으로 키워온 습성대로
바람의 갈기로 구름의 올가미를 만들고 있다
언젠간 하늘 끝까지 자맥질하고 싶던 욕망만큼
남몰래 부레를 부풀리는 몸부림이여,
맞은 바라기에서 들려오는 겨울 소식에
날로 여위어가는 은빛 날개여,
앙상해서 더욱 우아한 변신이어라.
[우수상] 모래경단 / 김지영
잔치가 벙어졌다아입니꺼
울 할매가 안보고도 척척 맹그는 만두맹키
동글동글 경단이 넓은 사장에 항거석인기라예
이래 빠르고 솜시 좋은 좋은 기 누구 작품인고 궁금하지예
달랑게라고 있심더
부끄럼이 많아가 대낮에는 모래집에 숨어있지예
그카다가 어두버지모 실찌기 나와가
눈자루 끝에 달린 크담한 눈동자를
요래조래 굴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븐가 말도 몬합니더
달랑달랑 집게발로 모래를 떠가 먹고는
남은 찌꺼기로 예쁜 경단을 만든다아입니꺼
뒷설거지를 요래 멋지게 하는 청소부 보셨는교
덕분에 다대포에 가모 나래비 선 경단을
우리한테 날마다 선물로 준다아입니꺼
오늘도 선물 받으러 함 가보까예
[가작] 모래톱의 오랜 기억 / 김용철
아버지가 고기잡이 나가신 날이면
설빔을 자꾸 입어보던 어린 밤이
강변 나루에 애기부들처럼 서성였다
어머니는 밤새 대청 작은 팔각상 위 놋그릇이
부처님인 양 절을 했고
건너방 누이의 짚단 같은 이불 속은
음악방송 주파를 맞추느라
모스 신호기 두드리는 공비보다 신중했다
지난 밤 비는 강을 억수로 뒤집어 놓았을 거다
윗물에 놀던 놈이나 수문에 서성이던 숭어들도
물이 잔뜩 올랐을 것라며
원양어선 선장이 된 양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
나룻배를 저어 가신 아버지
사라지는 배를 보며 돌아오던 길
논두렁을 달리던 연두색동 고무신도
물고기 마냥 팔딱거렸다
그날 밤 강물은 수문을 넘고 강둑을 밀어냈다
아침 나루터에는 수초에 엉켜 찢긴 그물이
아버지 주름처럼 놓여 있었다
비가 며칠째 내리고
포구에 묶인 배의 기척이 외기러기 울음이 되어
어두운 허공을 밟고 사라졌다
강이 둑이 넘던 날
이버지의 나룻배는 바다가 되었다
물이 바지던 날 하구언에는
강변 가장자리 수풀보다 넓은 모래톱이
아버지의 만선처럼 떠올랐다
갈대머리를 풀고 물고기처럼 주변을 서성이다
해질 무렵 서쪽 하늘이 바다에 붉은 울음을 짙게 토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오래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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