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장림포구 / 최일걸
장림포구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내지 않는
표류기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알록달록한 색체의 향연의 중심부에 닻을 내린다
우두커니에 침몰 직전의 위기감을 묶는다
내가 포구에 하역하는 여독은
온전히 내 몫이 아니었다
일정 부분 너의 몫이었다
모국어마저 낯설게 하는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도무지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다
햇살의 거친 붓놀림이 나를 훑고 지나가면
인상파 화풍에 휩싸인 나는
단숨에 숨은그림찾기가 되어버렸다
상념이 풍차처럼 어지럽게 맴을 그렸다
장림포구에선 길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그림자들이
벌떡벌떡 일어선다 벽에서 툭툭 튀어나온
그림들이, 힘차게 걸음을 내딛는다
거리 곳곳에서 마추지게 되는
다양하고 이색적인 조형물들과의 조각 맞추기는
통성명 없이도 두텁고 살갑다
본국으로 송환 중인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자꾸 나의 국적을 묻는다 장림포구 위에 뜬구름들이
망명정부처럼 소란스럽다 포구에
정박한 선박들이 출항을 서두르는 듯
일제히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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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을숙도에 살어리랏다 / 박복영
모래가 쌓일수록 발자국들이 엉킨 해질녘
썰물 든 자리에 수런거리는
새 발자국과 내 발자국이
흩어 모여 뒤엉켰다 갈뿌리처럼
물결 따라 떠밀려간 바람 같은 아버지는
갈숲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는 바람이 되었다
똬리 튼 뿌리의 안간힘처럼
미로 같은 날들의 어둠을 헤치며
그날 저녁을 맞은 어머니는
더 이상 모래톱에 새겨지던
자전거 바큇자국을 찾아나서지 않았다
안개 낀 날에 안개꽃이 된 갈꽃들을 뽑아
어머니는 놋그릇을 닦았고
푸른 녹을 지울 때마다
비린내를 터뜨리며 일어서는 갈꽃처럼 살았다
내일을 꺼내느라 닳은 어머니의 손톱 속
비린 계절을 지나며 깨어나던 형과 나
바람을 삼키며 아버지가 떨어뜨린
발자국을 찾아 흔들린 적 있다
부푸는 갈숲에 발목을 묻고도
지붕에 널어둔 생선을 뒤집으며
어머니는 가려웠던 우리들 생의 등을 긁어주었다
엉킨 발자국을 푸느라 발자국을 다 써버린 갈숲에서
우리는 휜 갈꽃을 뽑으며 야윈 무릎을 세웠다
갈대들의 수런거림이
소란스런 파도소리와 동거하며 잠이 들고
모래톱에 물결무늬가 그리움인 양 새겨지는 을숙도
모래가 쌓일수록
비린내가 빨래집게처럼 흔들리는 생을 꽉 물고
놓지 않고 있다
* 을숙도 :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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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하구에서 / 이정록
우리네 삶도 저 강 같은 것
언젠간 다다를 하구를 모두 생각하지
저기 백합등 아래 가로누운 도요등
부지런한 강물이 오랜 세월
물살의 흘림체로 쓴 모래섬의 서사
바람이 한 페이지 넘기면
물새가 행간을 짚어 가는 곳
각진 표정 지워 낸 모래알이
고스란히 서로에게 스며드는
여정에 마침표를 찍기까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왔겠지
흥그럽게 들판을 가로지르다
기슭을 맹렬히 후비긴 해도
물가 오두막 검게 탄 얼굴은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리
무엇을 떠나보내고
무엇을 깊숙이 묻어
그 많은 생명에 방을 마련해 두었나
어디서 손을 잡았고
어떻게 손을 놓았든
삶의 끝에서도 저럴 수 있다면
느긋하고 넉넉한 강의 끝처럼
물새가 노을을 가르는 저녁
하루의 생이 저리 뜨거운데
우리 한 생은 어떨까
[가작] 굽다리접시 / 원기자
저는 괴정동에서 태어났어요
얼마나 많은 계절이 스쳐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붓끝으로 저의 속살을 살살 헤집던 고고학자가
몇 백 년은 족히 흘렀다고 하네요
어느 대감마님 집에서 귀한 대접 받다가
만장을 휘날리며 앞서가는 마님의 장례 행렬을 따라
여기까지 왔어요
함께 매장된 부장품들은
놀란흙을 끌어안고 바람의 뼈가 된다는 걸
그의 후손들은 알까요
그때부터 매끄러운 테두리는 빛을 잃고
온몸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긴 세월을 견뎌왔지만
눈부심처럼 빛나던 고결함은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구덕산 줄기의 유적은
한 사내의 섬세한 손놀림으로 다시 빛을 찾았어요
다른 계통의 유물들도 저처럼
모서리를 곧추세우고 박물관 유리벽 안에 자리를 잡았네요
이제 고분을 기억하는 건
부서진 햇살 아래 우뚝 솟은 아파트 외벽이지만
괴정동 주민들은 알까요
돌덧널무덤에서 태어난 저를
[심사평]
제8회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은 117명 450편으로 시242편, 시조 85편, 동시53편, 수필40편, 소설 16편, 동화 14편 이었다.
상당수의 작품들이 사하구를 배경으로 한 지역성을 잘 부각시키고 있었다. 문학성과 창작성은 뛰어나지만 지역성을 살리지 못한 글은 심사에서 배제하였다.
운문분야 대상작「장림포구」 장림포구가 움직이고 있는 역동성을 잘 보여주었다. 시적 형상화는 물론이고 시에 담긴 이야기가 전하는 내용도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최우수작「을숙도에 살어리랏다」 을숙도의 풍경을 내면화 한 따뜻한 사랑의 눈길이 돋보였다. 시는 두근거리는 가슴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꽃이다. 우수작「하구에서」 마음을 열고 자연의 숨결을 포착한 시인의 예민한 감각이 느껴진다. 깊은 사색을 통해 무한히 확장된 시인의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가작「굽다리 접시」 우리가 나선 길에는 누군가 먼저 간 흔적이 남아 있다. 흔적이 남긴 생생한 모습을 내면화 시키는 미적 태도가 돋보였다.
산문분야 대상작 소설 「1979년 그 겨울 강 끝 마을」 1979년의 하단 갈대밭을 배경으로 야산의 억센 억새풀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진다. 탄탄한 주제의식으로 작가의 내적 성찰과 여정을 잘 녹여 낸 수작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우수작 수필 「그리운 어머님의 탯줄」 고향 상실이 가져다주는 현대 인간의 스산한 내면 을 영혼의 방향성을 지닌 맛깔스런 글 솜씨로 잘 그려내었다. 우수작 동화 「쇠제비 갈매기의 귀향」 철새 쇠갈매기 쇠돌이의 성장과정을 작가의 예리한 눈과 감각으로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가작 소설 「을숙 그라데이션」 을숙도 위에 펼쳐진 노을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 작가를 통해 을숙도의 아름다움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한정된 지역을 배경으로 창작해야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작성이 돋보인 작품들이 많았다. 강력한 서정의 울림이 전이되어 심사위원들도 정서적 파장으로 심사하는 동안 행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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