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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게 배우는 둥근 것들 / 박혜란

 

아직 다 녹지 않은 커피, 스푼으로 휘휘 돌리다보면 빙글빙글 어머니가 훌라후프 속에 있는 게야 돌아가는 훌라후프를 따라 어머니의 허리는 한쪽으로 기울곤 하던데 그 능선에는 왜 이리도 달이 많아 소란스러운지 애야, 길은 내 손바닥처럼 뻔하지 길이 멀어 보여도 지구는 끊임없이 돌아가지 않니 하시는 게야

 

바퀴가 지면 마찰하는 소리, 페달이 삐걱거리는 소리, 둥글게 부푼 어머니가 배를 쥐고 쓸러지는 소리, 자전거가 커다란 지구를 쥐고 돌리고 있지 휜 바람이 손끝의 둥근 지문을 매만지며 그 사이로 흐르고, 페달을 밟을 때마다 찰그랑, 찰그랑 주머니에 넣어둔 열쇠소리가 허벅지를 콕콕 찌르네 자전거에서 내리면 기묘한 리듬을 타고 마치 춤이라도 춰야 될 듯 흘러나오는 휘파람, 이제 그도 사라지고 없겠지

 

넘어지는 반대쪽이 아니라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꺽으렴 뱅뱅 돌돌 어미 말을 떠올려 보면 반드시 옆으로 넘어질 것만 같은 날들이 지나쳐가네 토성의 꼬리처럼 훌라후프 휘휘 돌리고, 수천 개의 달이 떠 환한 마음, 어머니가 가르쳐 준 자전거의 주법대로 나는 가로질러 가네 처녀 젖가슴 마냥 탱탱한 바퀴가 휜 길을 들어 올리지

 

바퀴자국을 따라 떨어지는 별 잃은 허공은 배꼽 속처럼 캄캄한 저녁이어라 지나간 밤들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둥긂을 따라 뻗어나가라 거친 숨을 내쉬며 종아리는 팔딱팔딱 소녀를 지나쳐 와서 잔 속 까만 블랙홀 속으로 시간을 이어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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