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최우수상] 등대의 재발견 / 한승엽

 

물결의 얼굴이 수십 개로 보이지만

겉돌지 않는 불빛처럼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면

이미 등대가 바다의 손금을 읽었다는 증거이리라

 

물결 속에 온 마음을 맡겨

미끄러지는 생을 단숨에 휘어잡는

저 예리하고 든직한 눈썰미가 뭇시선들을 강타했다면

지금쯤 물결의 혼란스러움은 좀 누그러졌을까

 

뱃길을 닦는 노동으로 어깨가 뻐근할 때까지

등대의 눈은 붉어진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온전히 잠들 수 없는 몸짓으로 뒤척이고 있다

 

새삼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의식이 가라앉았다가 한 순간 떠오르는 것처럼

불끈 솟은 몸집이 전부가 아니다

더 빠르게 밀려오는 것들을 마법처럼 다루느라

자신도 모르게 구도자의 자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설령 어느 날 빛을 잃어버려 목 놓아 울고 싶은

물결 위에서도 꼼짝없이 서 있을 뜨거운 눈빛,

오늘도 타고난 집중력으로

칠흑의 밤바다를 가로질러 꽃 같은 영혼에게로 향한다

 

아슬아슬한 자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고래심줄 같은 등대가 바로 당신의 등 뒤에 있다.

 

 

 

 

[상] 책 읽는 등대 / 김미숙

- 화암추 등대

 

등대는 독서광이다

낮이나 밤이나 바다를 읽는다

은사시 나뭇잎처럼 반짝이는 아침 햇살아래

멍게, 해삼, 전복, 소라를 채취하는

해녀들의 숨비 소리와

저녁노을 속 나뭇잎 같이 작은 통통배 위

노부부가 힘겹게 그물을 올리고 있는 모습과

물살을 가르며 날쌔게 자나가는

돌고래 떼의 웃음소리를 읽는 등대

양떼구름을 몰고 가는 늑대바람을 읽다가

월광소나타의 피아노 소리 같은 달빛과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된 신화를 읽기도 해

거센 파도와 비바람 헤치며 돌아오는

어선들을 읽을 때 남모르게 숙연해지기도 하지

바람이 거칠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서진처럼 눌러 놓은 섬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다를 읽다가, 바다에 반해, 시인이 되어버린,

그가 바다시집을 출판했다

시인의 이름은 화암추등대

오늘도 길이 남을 시 한편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다

 

 

 

 

 

 

 

[가작] 등대의 염원 / 김창석

 

뭍으로 오르려다 추락하며 스러진다

파도의 손 사례에 차갑게 눈을 뜨면

해조음 환청에 떨며 수평선에 기대서고

 

네 안부 침잠하다 부표로 다시 뜨고

흔들리며 서 있었을 오랜 목마름조차

먼 바다 물결너머로 되돌리며 서 있다

 

수천 년 지켜온 섬 파도에 멍들어도

어둠 속 어깨 짚고 올라온 꽃대처럼

여러 날 요통 참으며 조바심 깁고 앉아

 

경계병의 눈처럼 발아래 굽어보며

가슴속에 묻어 뒀던 오래 된 비원처럼

익명의 횃불이 되어 널 위해 타고 싶다

 

 

 

 

 

 

 

[가작] 청사포의 쌍둥이 등대 / 서상규

 

 

청사포를 밝힌 청사초롱인가

좌심실 우심방으로 나란히 서 있는

빨강 등대와 하얀 등대가

심장 박동으로 불빛을 퍼트린다

동백꽃 피듯 부풀어 오른 동맥을 

새볽게 번진 윤슬로 뻗쳐

아름다운 언약의 항로를 연다

두근거리는 가슴에서 공명하는

생명의 벅찬 선율이

실고추와 실파 같은 음계를 일궈

거친 파랑을 잔물결로 잠재운다

심장을 연주하는 깊은 울림이

짙은 안개로 덮인 심해에

은빛 파장으로 물길을 틔운다

어둠을 혈청의 반짝임으로 깨우며

두 몸을 한 쌍으로 엮은 불빛이

전생의 물고기인 양 유영한다

수평선에 경계로 맞닿은 허공 속

쌍둥이 별자리가 떠오른다

심장의 동력이 뻗어나간 소실점에

푸른 별을 켜든 청사초롱으로

좌심실 우심방이 나란히 빛난다

청사포에서 첫사랑을 이룬

빨강 등대와 하얀 등대가

새날로 둥근 해를 띄워 올린다

 

 

 

 

 

 

[가작] 내 오랜 습관, 야행(夜行) / 심근섭

 

외눈박이에 야행인 나는

오늘밤도 깜빡깜빡

점멸의 눈빛을 보낸다

 

여기가 바로

안전한 대피소라고,

지금 내가 비상구라고

끊임없이 눈짓을 한다

 

낮이면 물컹한 아픔에 젖어

턱 괴고 잠을 자고

밤이면 들메끈 고챠 메는

내 오랜 야행의 습성

 

나를 믿고 칠흑 속을 오가는

시선들 담보로 잡고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저 수평선으로 달려 나간다

갈 듯 나앉는

수평선 너머로 이것을 내 할일이라 믿는 게

내 오랜 야행의 버릇이다

속 깊이 접어둔 말들

바다에 환하게 꽂아보는 게

단 하나의 기쁨이다

 

 

 

 

 

 

 

[가작] 등대의 사랑법 / 우동식

 

선돌처럼, 빈 배 한 척 묶어두고

바람에 퉁기는 벅수로 섰다

빙하기 이후 팔천년을

음색고운 공명을 울리는 가문비나무여서

느리게 자랐으나 거칠어진 껍질 속에

질 부드럽고 결 총총한 사랑은

눈멀고 귀 닳았으나

바다를 향해

뒤척이는 바람을 잠재운다

님의 바다는 푸르고 잔잔해서

더 넓고 깊은 곳으로 출항을 하지만,

궂은 날 파도 일고 해무 잔뜩 끼어

온몸 칭칭 동여 메어 질 때 느끼

이놈의 사랑법은

느슨해지거나 조이거나 흔들리면서

매듭을 짓기도 하고 풀기도하면서

두 심장을 직조하는 질긴 끈,

매어 있지 않은 사랑도 없다

풀어두지 않는 사랑도 없다

쉬이 마음 풀어 비운

그 자리에 등대로 서 있는 것이다

 

 

 

 

 

 

 

 

[가작] 아버지의 등대 / 이동우

 

마당 백열등 갈아 끼우자, 번쩍

500와트의 등명기 빛이 내게로 쏟아진다

마당 깊은 집으로 이사온 후

줄곧 아버지가 갈던 등

 

스친 바람에 바지랑대가 힘없이 쓰러지던 밤

젊어서부터 등대지기로

섬 끝자락에서 파도를 모으던 아버지는

속이 좋지 않다며 병원에 간 뒤

날이 밝고 백열등이 꺼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수술대를 집어삼킬 듯 덤비는 너울과

수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마취에서 제때 깨지 못한 아버지는

깜박이는 등댓불을 찾아 한참을

선미도 앞바다를 헤맸다

수술실 무영등이 산란한 빛은 바다 위에서 잠시

은비늘처럼 반짝였을 뿐 이내 심해로 사라지고

 

병실 오후를 조금씩 갉아 먹는 투병과 간병

만조가 되고 폭우가 흐르면

하늘에서 바다로 물길이 이어져

수평선은 무의미해지고

병상마다 사연들은 가득해도

모두가 침묵하는 중환자실

아픔을 숨기기 위해 신음을 삼키는 자정께

팽팽한 긴장감은 누군가의 비명에 깨지고

그제야 눈치 보던 다른 아픔들이

전염된 듯 제 소리를 낸다

병을 달래듯 병명을 되뇌며 수발드는 가족들

 

생일 때면 한 번씩 전화하던 아버지의 목소리에선

갯내음이 묻어났고 등롱 주위로 모여든 갈매기들은

끼룩끼룩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등대는 빛도 어둠도 배도 파도도

모두가 아우러지는 곳이지,

헐벗은 바위 위의 삭막한 탑이 아니라던 아버지

 

아버지의 암 그림자를 업고 돌아온 저녁

대문을 열자 마당 백열등이 나를 안내한다

비 내려 질척이는 앞뜰에 다문다문 놓인 돌들

아버지의 등대가 비춘 길을 따라 걸어온 날들

통통배 한 척이 등댓불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온다

 

 

 

 

 

 

 

[가작] 등대의 시원(始原) / 장인

 

등대의 시원(始原)

바다는 늘 갓 태어난 간난아이처럼 온몸이 주름 투성이였다.

뱃길따라 또 다른 주름이 접히고 펴졌다.

파도의 써레질.

뒤파도가 앞파도를 가르고 접고 펼쳐진다.

경계 너머의 탈영토, 아장스망(Agencement), 다중체, 리좀(Rhizome).

출렁임은 주름이다.

전율, 출렁임, 감동, 흐느낌. 주름은 무늬. 무늬는 결.

바위도, 해변도, 절벽도 무늬와 결로 가득 차 있다.

곡률이다, 연속체의 미로다.

파도는 60억년을 쉬지 않고 출렁이고 있다.

지구의 생성과 함께 했다.

그리하여 시간은 파도처럼 흐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아직도 수평선 너머에서 밀려오고 있는 중이다.

등대가 파도의 얼룩을 덧칠하고 지우고 또 덧칠한다.

극한의 소진 상태로 밀고 나아가기 위한 몸짓일까?

그리하여 파도보다 더 큰 이유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잣대로는 그 이유를 알기 어려운 파도의 몸짓.

부표의 몸살보다 더 아픈 몸짓이 어디 있으랴.

바닷가 모래사장은 잠시 쓰러져 있기에 아주 좋은 곳.

사람들과 소주병이 나란히 누워 있는 곳.

이곳이 등대가 있어야 할 시원(始原)이구나.

 

 

 

 

 

 

 

 

[가작] 하얀 등대섬 / 정연희

 

 

 

하얀 등대섬

저구에서 소매물도로 가는

뱃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양대로 지어진 이름들,

긴 뱀처럼 생겼다는 장사도

말의 형상을 지닌 마미도

편하게 누워있는 소 모양의 어우도

 

‘멀고 먼 바다의 섬’ 소매물도로 가는 길에

종이배처럼 떠있는 섬들은

뿌리 없이 둥둥 떠 있지만

섬마다 하얀 등대를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섬 이름만큼이나 생업이 소박한

어부의 조상의 조상을 지켜낸 하얀 등대,

아들은 촘촘한 그물로 멸치를 잡고

어머니는 빛나는 가을햇살에 등줄기 푸른 멸치를 말리고 있다

그물을 깁고 있는 아버지의 등이

오늘따라 더 둥글다

 

하얀 등대가 살리는 가족이다

찬 바위를 밟고 시퍼런 바다를 지키는

단 하나의 의지

밤이면 품었던 해를 쏘아 내고

살신성인으로 홀로 서서도

정작 외로운 등대라는 이름만 지닌

멸치가족을 살리는 빛기둥이다 

 

 

 

 

 

[가작] 등탑에 오르면 / 김완수

 

 

속초 동명항에 가면

등탑도 바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등대인 걸 알 수 있다

바다의 푸르른 표정이 눈부셔

대로 난 철 계단을 오르듯

정신이 휘청거릴 것 같으면

뒤돌아 속초의 이목구비 한 번 보고

잠시 여정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곳

그러다 또 일상이 해무처럼 아른거리면

숫기 없는 설악산의 행방을 찾으며

떠나온 이유를 깨달을 수 있는 곳

 

돌산의 뜯기는 울음을 딛고

민충정공의 혈죽같이 자라다가

기어이 탑으로 선 걸까

홰를 든 대에 오르면

옛 산의 살점 같은 갯바위들 보이고

바위 등을 두드리는 파도 소리 들린다

저 멀리 떨어져 나간 영금정은

바다 위에 틀어 앉은 기억의 암자겠지

 

방파제도 등탑과 바다를 가르지 못하는 밤

달빛을 등에 업고

축항의 비린 면을 가리키는 등대전망대

속초 동명항에 가면

등탑도 바다의 얼굴을 살피는

등대인 걸 알 수 있다

 

 

 

 

 

 

[가작] 바다 우체국 / 최선옥

 

 

 

갯메꽃 속으로

 

뭉게뭉게 해무를 전송하는 바다

 

출어는 셔터를 내리고 걸쭉한 경매와 짭짤한 웃음은 지워졌다

 

 

 

속달로 부쳐온 파고 높은 사연들을 뒤져도

 

행방이 묘연한 행간,

 

먼 항로를 따라간 그는 언제쯤 반가운 소식을 보내올까

 

안부 궁금한 마음에 닿은

 

갈매기우편은 소인이 흐릿하다

 

 

 

서성이는 오후 뒤로

 

쓸쓸함을 들쳐 멘 묽은 어둠이 걸어온다

 

삼십 촉 달을 켜도 표정이 어두워 포장마차는 서둘러 불을 밝히고

 

모락모락 일몰 한 솥이 끓는다

 

 

 

익숙한 무료가 장마를 읽고

 

도마에 기록하는 바다체에 툭툭 잘리는 다족류의 하루

 

오래된 만선이 잔술로 비워진다

 

 

 

바다는 매번 파랑주의보에서 맞춤법이 틀리고

 

어두운 저녁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다

 

나선형계단을 올라가 촉수를 올리는 밤,

 

등대우체국에서 야광의 추신이 건너온다

 

 

 

파도에 그을린 묵은 우표 같은 얼굴을 붙여

 

넋두리를 동봉한 밤은 저마다의 섬으로 꽂히고

 

불면을 밝혀 낡은 주소를 다시 분류하는 우체국

 

수취인불명의 소식이 반송되듯

 

새벽녘이 되어서야 빛은 흘러나간 등대를 거두어들인다

 

 

 

 

 

 

 

 

 

[가작] 구엄 도대불* / 이타린

 

 

 

 

 

포구의 밤 길이 나로 하여

 

열리던 때가 있었지

 

오래 서 있어 등줄기가 당기는 동안은

 

새의 날개가 돋는 듯도 했었어

 

밤사이 시나브로 물너울에 기대어

 

애월 앞바다를 지키는 동안

 

물밑에선 거대한 오페라의 그림자처럼

 

바리톤과 베이스 음이 들려오곤 했었지

 

빛 한줄기 입술을 내어 파도를 따르면

 

긴 밤 내내 기울던 빛이 느리게 식어가고

 

최초의 빛은 여전히 나의 뿌리에서

 

촘촘히 울고 있었으므로 비로소

 

물의 길을 찾아낼 수 있었어

 

새별오름의 공양을 바라보는 날은

 

복사뼈까지 차오르는 물의 부레 안쪽을

 

잘 절여진 거품으로 덧대며

 

구엄리 포구의 소금빌레가 조명등 안으로

 

갇히는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었지

 

간절한 이의 기도 같은 수평선이

 

고이 접힌 태양을 한 뼘씩 밀어 올리면

 

바다와 하늘이 둘이 아니란 걸 이젠 알아

 

멀리 데칼코마니처럼 어선 한 척이

 

갯바위의 후렴처럼 일렁이는 새벽

 

가슴의 행간마다 아스라이

 

길을 내는 물길을 따라 무장 해제된 나는

 

이제부터 마법에 잠기는 시간이야

 

 

 

 

* 도대불 : 전기로 켜는 등대가 들어오기 전에 포구를 밝혀 주었던 등대의 원형

 

 

울산지방해양항만청(청장 정수철)등대를 주제로 한 2회 등대문학상 공모전당선작을 3일 발표했다.

 

등대문학상 당선작은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됐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단편소설 부문 대상에 양진영(서울 노원구·사진)씨의 얼음 등대가 뽑혔다. 얼음 등대는 남극을 무대로 한 신선한 착상의 작품으로, 주제가 선명하고 구성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문장도 깔끔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최우수상에는 시 부문 한승엽(제주시)씨의 등대의 재발견’, 수필 부문 이동열(충북 청주시)씨의 희망의 등대가 각각 수상했다.

 

우수상은 시 부문 김미숙(울산 동구)씨의 책 읽는 등대’, 단편소설 부문 김성준(서울 성북구)씨의 등대의 노래’, 수필 부문 김형옥(울산 울주군)씨의 어머니와 등대가 각각 꼽혔으며, 이외 각 부문 가작 총 30편이 선정됐다.

 

울산항만청은 시상식 장소 및 날짜를 추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수상자에게 개별 통보할 예정이다.

 

한편, 해양문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해양문화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개최된 이번 공모전에는 시(시조) 648, 단편소설 46, 수필(수기) 105편 등 약 800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2회 등대문학상 수상자 명단

 

대상 양진영 얼음 등대최우수상 한승엽(/시조) ‘등대의 재발견이동열(수필/수기) ‘희망의 등대우수상 김미숙(/시조) ‘책 읽는 등대김성준(단편소설) ‘등대의 노래김형옥(수필/수기) ‘어머니와 등대가작 김완수, 김창석, 서상규, 심금섭, 우동식 , 이동우, 장인수, 정연희, 최선옥(/시조) 김경순, 김득진, 김은혜, 김학규, 문호성, 박슬기, 서혜린, 신상현, 안병기, 최석규(단편소설) 김유석, 김현주, 박원종, 서상호, 서은정, 유진선, 이서, 이정혜, 하요아, 황숙이(수필/수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