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제4회 <등대 문학상> 시부문 최우수 - 조수일

 

염장이 아버지


조수일



갯가의 지친 오후가 바람에 쓰러진 후 아버지는 이름 있는 모든 지느러미를 소금에 절여 냈다
아가미는 아가미대로
창란은 창란대로
부위별로 도려낸 자리
왕소금을 한 움큼씩 되박아
고통스러움을 향기로 추출하고 있다


상처 자리에 환한 영혼을 켜는 염장이


오늘은 풀치 떼가 가득하다
은빛 꼬리지느러미의 소란스런 비린내를
건넌방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날개를 읽어 캄캄하던 내 안이 분주하다
푸른 곰피자락이 너울거리는 홑이불을 배에 감고 문가로 기어간다
빳빳한 비닐 앞치마를 두른 채
작업을 서두르는 아버지 어깨에 잔잔한 파동이 인다
지느러미의 촉수 하나 다치지 않으려는
손놀림에 안도한 풀치 떼가
나 몰래 지난 세월을 뱉어낸다


아버지의 지문 안으로 녹아든 소금물
삶의 경계를 허물며 스러지고


풀,풀,풀잎처럼 말라 가벼워진 육신으로
하늘을 날게 될 풀치 떼
어둠만 드나들던 내 겨드랑이에
어느새 푸른 지느러미가 돋는다


기장항 입구,
한 많은 목숨처럼 바람에게 세월을 주고
소금으로 웃음을 절여내는 아버지
그물망처럼 촘촘히 시간을 엮고 있다

 

//                                                 

 

출처 : 고성문학회
글쓴이 : 박봉준 원글보기
메모 :

[우수상] 해안선에 대하여 / 김태수

해안선은 
아버지가 마음먹은 대로
묶을 수 있고
풀 수 있고
당길 수 있는
줄이었다

해안선이 아니었다면
목선은 난바다로 떠내려갔을 것이고
주복어장은 파도에 헝클어졌을 것이고
물고기는 끝없이 표류했을 것이고
미역은 널어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해안선이 튼실한 줄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섬마을이 허물어지자
산의 발톱에도
바다의 이빨에도
끄덕없던 해안선은 그만 없어지고
아버지는 생업을 접고 말았다

해안선은 
떠돌이가 되어
아버지 꿈자리에 맴돌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붙잡지 못하고 떠나셨






[우수상] 서해에서 / 진서윤

비어있는 것들에게도 당도할 기슭이 있구나
한랭전선이 통과한 서쪽 바다
북서풍의 물살에 빈 형체들이 밀려온 방파제를 본다
텅 빈 깡통과 플라스틱 용기 안에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가득 들어 있다
망망대해를 건너온 저 빈 여정들엔
모두 이국의 문자가 적혀 있다
가벼운 방향으로 밀려
혹은, 밀려간 어느 순정이
당신의 동쪽이었을까

시간은 둥둥 떠서 흘러오는 것일까
깊은 뭉치의 물길이 밀려와
얇은 파도의 끝자락으로 쌓이는 해안
소리만 요란한 부유물이다
바다가 혼잣말을 쌓고 있다
멀리 앓고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물 위에 무덤을 파는 이국의 문자들
익사체에 시작점 892바코드가 일렁인다
끊임없이 울렁울렁하며
서해의 모세혈관을 통제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가작] 간절곶 등대 / 조경섭

1
동해의 명치끝에 간짓대 자리가 있다

낮달이 발광기 안으로 빨려들어 간 어스름 녘
사내는 노을이 휘도는 나선형 계단을 오른다
등명기에 덮인 무명천을 걷어낸 후
급물살을 타는 곳까지 빛의 경계를 구획하기 위해
손때 묻은 항로표지를 펼친다

물의 절해고도 넘어오는 뱃고동소리 따라
불쑥불쑥 나타나는 해무가 불안을 가중시킬 때도
얇게 퇴적되는 파도의 숨소리조차 놓친 적이 없다
어떤 배들은 어창 속에
별자리와 연결된 허공을 훔쳐 달아나려 했지만
사내의 정교한 탐색에 걸려들었다
수명을 다해가는 반딧불이 빛까지도 재생해서 쓰는
그는 빛의 명인
파도 속에 터지지 않은 번개를 숨겨놓아도
점멸의 발원지인 자신의 등대에서 지정된 항로만을 터준다

2
그 옛날 고래를 쫓던 포경선이
이곳의 횃불 수신호에 따라 태평양으로 월경하고 돌아와
닿을 수 없는 불모지를 해도에 그려 넣었을 것이다
간절곶 앞바다에
1백80만 캔들의 불빛이 90해리 밖까지 비추는 지금,
멀리 유조선이 지나가고 컨테이너선이 뒤따른다
등대 안에서 사라지는 항로는 항시 비장했고
잠 속까지 깨어있는 사내는
낯익은 바다 위로 하늘 성좌를 풀어헤친다

3
키를리안 사진기처럼
우문의 바닷속에서 현답의 뱃길을 찾아내는 등대
어둠의 한복판으로 날아든 사내가
물과 허공만 그려 넣은 해도를 펼치고
퇴색하지 않는 야광으로 바다를 단단히 고정한다

어둠을 파고들어 빛을 꺼내는 간절곶에서는
수만의 반딧불이가 젖은 날개를 털고 있다





[가작] 철렁, 푸른 치맛자락 휘날리고 / 박지한

풀렁이는 해 조각을 건져 올리고
불면의 닻을 올린다
쏟아지는 아가미들 뒷 켠에 펄럭이는 도도한 물길

한 낮 땡볕에 와 닿는
저 밧줄의 윈치 감아올리고
밤새 지새웠던
불멸의 포세이돈이여, 길을 열어라

지난 염병할 그리움에다가
낙담마저 전신되는 쇄빙선의 침몰, 풍문에
지흔 따윈 백파에 내던지고
저 단단한 선수를 겨냥하여
강건한 깃대에도 나는 서툴게 튕겨났다
분분한 어깨에, 멈출 수 없는
고독보다 깊은 여름밤이 낯설어졌고
저 멀리 낮게 부상하는 용오름,
황량한 곳을 헤치고
원양의 발목을 탕진한다

달아나는 새떼들, 붉게 차오르고
긴박했던 순간을
연체하는 팽팽한 피로 속에

수백만 톤의 해무를 가르며
쇳덩이 철렁, 푸른 치맛자락 휘날린다






[가작] 낙지의 생애 또는 슬픔에 / 전길중

1
덥석 물은 주낙에 꿰어 몸부림치는
타우린의 슬픔이 소주 한 잔에 젖을 때
위로한 어떤 변명의 말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우수와 낭만을 얘기하며 웃었고
그런 날은 비가 내렸다
너는 본능적으로 흡반을 밀착시켜 버둥댔지만
꼬들꼬들한 질감을 용서받지 못했다

2
일각의 목숨이 날 선 칼에 저항한다
핏물 배인 도마에서 통통 튀는 울음으로
아무리 외쳐대도 푸른 바다는 오지 않았다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고독이 핏줄을 타고
맥없이 빠져나간다
새끼들 위해 제 몸 내놓는 알레고리가
질근질근 씹힌다
별을 키우던 갯벌이 가물가물하다

3
역류성 식도염을 앓는 바다가
태풍이 물어온 소식에 잠을 설친다
불길한 예감이 갯벌을 덮는다
어둠을 젓는 가늘고 긴 손의 춤사위를
해석하려 한 것이 참으로 어리석었다
발가벗은 행위예술가의 슬픔이 배어있다고
목숨을 건 마지막 걸작품이었다고
새삼스레 수선 떨고 싶지 않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