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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등대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김정혜 김성배

 

■대상
그 섬이 불렀다 / 김정혜

 


욕지댁은 살아있을까?

욕지댁 딸이라 놀리던 언니들은 엄마 사십 구제 날

전쟁의 막바지 유복자 가슴에 묻고 뭍으로 온 오십년 전 그녀를 꺼냈다

세끼 밥과 나만 챙겨 업고 매일 용두산에 올라 수평선 바라봤다 했다

수평선 너머로 욕지댁은 가고 욕지댁 딸로 남은 나는

다리 밑에 주워온 아이보다 더 싫었던 말에 참 많이 울었다

약한 엄마 대신 가슴 열어준 그녀가 숨 쉴지 모를 그 섬이 불렀다

이틀 동안 섬 안길 걸으며 동그란 등으로 생선 말리며

아직도 삶의 지문 새기는 욕지댁들에게

부산 보수동 살은 적 있냐고 막연히 물었다

고메 밖에 심을 게 없어 뭍에 간적 있지만 금세 돌아왔다 했다

욕지 구석구석 함께한 남편이 파도에 쓸리고 쓸려

하염없이 동그래져가는 돌들의 소리 들으며

친정집 그녀들과 다른 나의 기질 이제 알았다 했다

뼈와 살을 돋우게 해준 젖줄이 덤으로 준 섬살이의 생명력을

 

 

 

 


■우수상

파도가 푸른 타자기를 치다 / 김성배

 


내 심연에 푸른 타자기 한 채 살고 있다
탁, 탁, 탁
사부자기 맨발의 유채꽃이 자진모리로 나서서
서성이던 파도가 굿거리장단 흥얼거리는
진지리길을 따른다
옷깃을 여미던 등대만 바다를
먹끈의 어둠으로 적어나가고 있다
참꽃 각질이 이는 하늘이 시든다
질 줄 아는 것이 피는 법도 안다고
입술 다 닳도록 파도가 바위에 쐐기문자를 새긴다
곰삭은 노을은 몸이 단 수평선에
이백여섯 개 뼈가 뒤틀리는
절정의 죽방렴을 쳐 놓는다
아직도 바람을 헤메던
나의 바다를 이렇게 엮어내기가 힘겨울까
파란 여백 위에 몸을 부려놓지만
숨찬 파도 얼룩 같은 활자판만 달그락거린다
질박한 바다를 이고 살아간다는 건
갈매기 울음에 절여진 이름 석 자에
물음표와 마침표의 투망을 던져놓는 일이다
'마침표를 찍는다고 끝은 아니다'
만년을 녹슬지 않는 질긴 파도소리가
동대만을 가득 메운다
하루해의 주름 속에서 지는 것들을 위한
맛있는 해거름을 바래하기로 한다
맛조개, 우럭조개, 불통조개, 바지락, 쏙……
무꽃 핀 갯벌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녁은 날것으로 잘 살아있다

 

 

 

 

 

시/시조부문 심사평

 

총 861편 가운데 예심을 거쳐 결선에 오른 작품은 70편이었다.
70편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70편의 경향을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바다나 등대를 소재로 한 시인들의 사물에 대한 태도를 비유적인 기법을 통하여 형상화한 작품들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바다 체험을 바탕으로 개인의 삶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는 경향이 다소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글쓰기와 연결시켜 형상화하는 작품들도 다소 있었다.
입상작 8편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시 속에 자신의 삶이나 살아온 생애가 진솔하게 녹아 있는 <그 섬이 불렀다>를 시 부문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골랐다. 동일인의 작품인 <어머니의 바다>도 수작이었으나 한 편을 고른다면 <그 섬이 불렀다>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의 삶을 객관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개연성을 획득한 솜씨가 뛰어났다. 특히 시적 인물인 ‘욕지댁’의 강인한 삶은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국의 전통적인 여인상 내지 어머니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심사위원 전원이 금년 등대문학상의 대상으로 결정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우수상 <파도가 푸른 타자기를 치다>는 구체적 공간을 감각화하고,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솜씨가 탁월하였다. 그러나 삶의 진솔한 면에서 <그 섬이 불렀다>에 밀렸다. 또 다른 우수상 <등대를 노래하다>는 긴 호흡으로 다층적인 주제를 형상화하는 능력은 돋보였으나 군데군데 버렸으면 하는 시어들과 표현들이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가작 <몇 층의 바다>, <바다 일기장>, <홍어>, <날치의 비행술>, <바다의 비밀 듣는다>도 모두 수준급이었으며, 바다체험과 사물들을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솜씨는 뛰어났다. 그러나, 시인 자신의 진실한 삶을 이입시키는 데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작품들이 모두 해양문학상으로서의 바다체험이 다이나믹한 이미지들로 점철되어야 한다
는 점에서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앞으로 해양과 바다체험이 녹아 있는 대작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시/시조 본심 심사위원 양 왕 용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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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등대를 노래하다 /조우리

1
난 작은 옷 조각을 아직도 입어요

2
녹말냄새 나는 선착장 달이 차자 무릎 위 달의 어감은 베갯잇 같았다
먼데 별 하나가 붉은 실화처럼 뜨거웠다
영혼의 깊은 아가미로 어둠은 수면에 묵었다
허공의 혼혈아처럼 뭍섬들도 서성댔다
흰 달이 여기 흙의 마음으로 바다에 흘러왔다
천천히 틈바구니란 말씀 하나가 뭍에서 내려왔다 그때 등대는 온다
파도는 고요를 씌우고 가는 물푸레에 실렸다
조용히 해안열차 달리는 밤하늘소리 듣다가 기찻길 속 할머님의 기도가 그리우면
거기 내가 첫 들고 왔던 운율을 부르고 싶다
세상 그리워지는 것들 가운데 가장 사무치게 떠오르는 것을 알고
그런 우리 마음가짐이 녹지 않았을 단문 울리다가
그 어느 날 누군가의 첫 굶주림처럼 하늘도 세상 그림에 빈 가슴 먹먹하던 날,
뜨거운 빛에 풀리는 밤의 음악들 바다 곁에 들려주고 싶다

3
경건한 별빛이 무릎을 꺾으면 그제야 밤의 사제가 촛대에 불을 밝힌다
어둠은 춥고 가늘고 어둠은 마치 깊은 도읍지의 여인 같다
내 영혼의 바다는 지금 곡선의 어머니다 간절한 우주 하나가 환절기로 밀려온다
누구든지 이 물 항아리 같은 파도를 건널 때마다 안과 밖의 지도가 안개에 깔렸다
깊숙이 어둠에 갇혀 두리번거리게 되는 생화다, 바다의 어조란
칙칙하고 ㅌ\캄캄한 선술집에서 한 곳을 응시하며 등을 띄우고 싶은 작은 욕망이다
손끝의 물안개가 포구로 떨어진다 가만히 무씨 하나 지켜주고 싶었다
 과분한 그대 사랑이 중력에 잠길지라도 가장 맑은 숨소리로 손등 위에 씻겨주고 싶은 밤
고단한 몸으로 질주하던 모든 것들이 오늘 순례지의 객이다
등대는 미열의 꿈과 같은 안식을 꿈꾼다 나는 오랜 바다의 풍습에 내일을 헌화하고 싶다

4
조카의 결혼식 전날 아버지의 승용차 타이어가 찢어졌다
가족은 온통 자꾸 거구로 후진했다
중고타이어 백화점엔 찢어진 바퀴 뿐, 바퀴가 굴러갔던 그 자리
볼트 풀고 서서히 팽팽했던 마찰력을 잠재운다 고무에 빛나는 가시들이 등뼈처럼 뚫렸다
마지막 생의 바퀴라며 큰일 날 뻔 했단다 바퀴가 망가지던 날 바다의 노래를 불렀다
새벽녘 아버지는 그렇게 제 자신의 지나날을 잊고 서간체로 너울거린다
혀끝에 찍어보았던 숱한 얼굴들 떠올려보며 다시 먹빛 바다를 묻힌다
바다의 시간은 잃어버린 세계와 열려 있다
어지러운 사연들을 빛으로 조금씩 물들일 때마다 파도는 잔잔해졌다
가족은 투박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마음처럼 애틋하다
얼굴이 조금씩 닳아가는 환영이 있다
딱딱하거나 물렁물렁한 열꽃하나 슬픔이 자지러진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처럼 먼발치에서 등대는 내 마음의 친구이자 아버지다






[가작] 몇 층의 바다 / 송향란

미처 깨어나지 못한 젖은 시간을
겹겹이 몸에 두른 건어물집
바다의 무늬만 남은 오래된 상처를 꺼내놓고
돌아누운 음습한 시간을 달래고 있다
수족관 속 작은 바다를 헤집으며
습한 공기를 밀어내는 질펀한 그늘이
기웃거리는 창에 매달려 있다
낯익은 풍경 속에 잠긴 바다
건어물집 간판에 실타래처럼 뒤엉킨다
나른한 침묵을 깨고
얼어붙은 수족관을 들여다본다
먼 바다를 그리는
유리벽 속에 갇힌 아가미들은
지금 안거 중이다
거친 물결을 뚝뚝 썰며
출렁거리는 파도를 게워내는,
질주하는 욕망을 잠시 내려놓는다
푸른 이마를 감춘 몇 층의 바다
오래 피멍든 마음을
낯선 시간 밖으로 밀어 낸다
붉은 피 낭자한 도마 위로
눈 부릅뜬 성난 바다가
거친 지느머리를 쏟아 낸다






[가작] 바다 일기장 / 임은주

바다를 음독하는 잠긴 하늘이 열렸다
바다는 해묵은 일기장
바다에는 잃어버린 내가 살고 있다

낙싯대 없이 바다를 꺼내 들었다
파도를 넘길 때마다 헤엄치는 살 오른 문장들
하늘을 후줄근하게 물들였다

방치해 두었던 무제의 일기장
소산한 낱말들이 한 곳으로 응집하고 있다
문자의 각을 세우고 제목을 반듯하게 추켜세웠다

아무렇게나 방생한 치어들
의문의 바다를 하염없이 떠돌아다녔었다
두 손 담그고 바다를 휘휘 저였다
하늘에서 등 푸른 성어가 파드닥거렸다
엄마의 푸근한 손이 시린 배를 어루만졌다

이마위로 스르륵 보름달이 번져왔다
광휘한 모서리가 행복하게 쿡쿡 찔렀다

바다를 꺼내어 읽는 순간
나는 온통 시푸른 하늘이 되어 갔다
바다에는 잃어버린 내가 살고 있다






[가작] 홍어 / 김대성

밖은 허전하고 안은 비좁았다
불빛이 닿을 수 없는 곳
눈은 내렸으나 눈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살았다
바다에 나가야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파도의 왼손, 왼팔, 외다리, 한쪽 눈으로 밀려왔다
두엄 속에서 죽은 사내들을 꺼냈다
홍어의 검은 향속으로 사내들이 돌아오고
다시 먼 객지로 떠났다
혼자 마을을 돌아다니는 등대 빛을 따라
낯선 사내들이 도착했다
몇 날 며칠 홍어를 삼키며 바다에 나가 죽는 법을 배웠다
발끝에 걸어온 길들을 매달았다
술값과 방세 대신 바다표범을 생각하는 동안
이불 홑청을 뜯어 수의를 짓고
홍어 애를 삼키며 제단을 만들었다
마을엔 눈은 또 내렸으나 사내들은 다시
파도를 보지 않았다






[가작] 날치의 비행술 / 김재근

파도의 숨소리로 수면은 출렁이고
물고기에게 입술을 그려주면
내게도 날개가 생긴다
옆구리를 찢고나온 단단한 날개의 힘으로 
이제 하늘에 오르겠다

심해에 들어 아가미가 부서져도
꿈속 부레가 어두워 날개가 찢어져도

바다가 환해질 때까지
파도가 끓어오를 때까지

한낮 태양의 불꽃을 삼키며 하늘을 난다
햇빛에 그을린 소금의 힘일까
살갗을 옥죄는 수압의 공포를 견디며
바닥을 치며 기포를 밀며
꿈이 떠오를 때까지
날치는 수면을 박차고 솟구친다

연약한 아가미로는 천둥과 번개를 이길 수 없다
흐릿한 눈동자로는 짐승의 울음을 들을 수 없다
원죄의 컴컴한 물속에서 부레마저 잃을 수 없다

태초의 힘으로 빛의 음성을
수면에 산란하며 체위를 바꾼다
태풍의 성난 순간을 부수며
저물지 않는 백야의 허공을 위해
나는 온몸으로 바다를 노래한다

바람에 눈동자를 씻으며
소금을 집어삼킨 아가미의 힘으로
눈동자에 고인 태양의 금빛 힘으로
온몸에 물갈퀴를 문신처럼 박으며
날개가 연주하는 음악으로
푸른 바다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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