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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寂寞) / 김우진

 

 

정전은 늘 기습적이다 불빛을 집어삼킨 새벽 두 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어둠의 똬리를 튼 이곳은 바퀴들의 귀착지, 속도에 지친 길들이 한 자리에 멈춰 있다 저 길들이 잠을 털고 일어서는 시간, 어둠도 어디론가 쏟아져 내릴 것이니

 

희미한 불빛으로 어둠 속을 휘젓는다 쭈그러진 어둠의 주름살이 펴지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어둠에 묶여 살았다 이곳은 도시의 늪, 통째로 먹이를 삼키는 악어가 살고 있다 불빛 한 점으로 이 늪을 점검한다 지난여름, 한 여자가 악어에 물린 기억을 조심스럽게 플래시로 밀어낸다

 

달리던 길도 숨을 멎은 시간, 어둠 속에서 무럭무럭 살찐 적막의 푸른 살점을 떼어내어 입 큰 악어에게 던져준다

 

천장에 숨어사는 고요가 바닥에 엎드려 있다 저 고요의 현을 밟으면 짐승의 울음소리가 튀어나올 것이다 두려움이 집요하게 달려든다 몸에 고인 졸음이 빳빳해지고 보폭이 좁아진다 켜켜이 쌓인 적막에 등이 서늘해지는 순간, 신발을 질질 끌고 소리와 동행한다 지하 배수펌프가 덜컥 주저앉는 소리에 놀란 천장의 거미줄은 사유의 알을 쏟아 놓는다 보일러 배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 배후를 알 수 없는 저 뒤편 생각이 쭈뼛 일어선다

 

수십 층 적막의 무게가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 당선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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