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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피나라 일기예보 / 김미량

먼저 구름 모습 보시겠습니다
지루성피부구름 여전히 북상 중입니다
오랜 염증으로 허리 잘린 나무들이 누워있는 곳
두피나무가 푸석푸석한 머리 흔들면 한 차례 싸락눈 내립니다
쎄라스톤 연고로도 녹지 않는 끈질긴 집착이 덤으로 내립니다
외출 시엔 우산을 준비하세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눈들이 위험하게 쌓여 눈사태도 발효 중이니
눈 다발지역은 잠시 대피를 바랍니다
상처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두피 아랫마을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손가락이라 불리는 건달 다섯 명이 몰려다니며
제집인 양 집집마다 빨간딱지 붙이고 다닙니다
가려움 심해지는 봄이 오기 전에 그들을 수배 중입니다
오후 3시 헬기를 투입해 두피지방 스케일링 실시합니다
폭풍 같은 한 시간 얌전히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바람이 두피지방을 지나가는 시간은 3시 40분
박하사탕을 빨던 바람의 혓바닥 두피를 핥고 지날 때
아으 알싸한 쾌감에 두 눈 감으셔도 좋습니다
앞으로 미스터 브러시군 두피지역 단독 방문합니다
부드러운 손길에 찰랑찰랑 가로수 흔들리면
웃음소리 마을을 술렁이다 잠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두피 전 지역으로 오후에 적은 양의 비 소식 있습니다
우울했던 마음 마른 타월로 뽀송뽀송 달래주시고
외출 시 검은 재킷의 유혹만 뿌리치시기 바랍니다
우산은 접고 사소한 고민 주저 없이 들고 나가
톡톡 털어 버리시길 당부 드립니다
이상,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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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한 근 끊어가세요

하얀 셔츠로 낯을 가리고
큐빅 핀으로 마음 빗장을 채운 밤,

도마 위에서 숭숭 잘려나가는
우울한 기억 한 점,
좌충우돌 바늘을 세우는
당신의 혓바닥 한 점,
나날이 늘어가는 바람의 이간질 한 점,
돌돌 말아
적당히 흘린 눈물에 효력 잃은 부적을 넣으면
소스 맛은 마음먹기 달라서 새콤한 후회도
달디단 희망으로 미각을 조종합니다

잇몸은 더 이상 이빨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꼭꼭 리듬을 씹으며 레일을
통과해야 합니다 당신도 맛보세요 이, 기가 막힌 안성맞춤 감정조절

후식으로 주문을 외워 비를 부릅니다
저 구질구질한 비는 예쁜 심장이 탐나는지
비의 몸에 빨대를 꽂기도 전에 내 몸을 덮쳐요
썩으려는 몸은 처방받은 방부제가 지탱해줘요
심장은 언제나 볼륨을 높이고, 혈압을 간섭하려들어요

저울조차 거부해 값을 매길 수 없는 나는
중년으로 분리된 근수 미달
이제 그만 어둔 터널에서 나를 뱉어버려요
맑은 피 수혈 받으러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갈 시간
누가 이 안대 좀 벗겨줄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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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합니다

전봇대에 나열된 집의 문패를 읽는다
오를 대로 오른 집의 몸을 잡고 까치발 딛고서면
거기, 높은 혈압 외부로 노출한
집주인 연락처 당당하게 걸려 있다
호주머니 속으로 낱장의 주인 떼어내 구겨 넣는다
전세 행 왕복으로 예매해둔 설움
꼬깃꼬깃 접어 둔 주머니 속 몇 번씩 안전을 확인한다
노란색 위험금지 구역에 불법으로 세운 집
원룸 투룸 쓰리룸 켜켜이 떡시루 닮았다
아랫목을 뜨겁게 달구고 지나가는 사람을 부르며
바람 앞에도 물러서지 않는 종이 집
어느 날 비라도 들이치면 원룸 하나 선뜻 내어주기도 하는,
저 집에 들어 집 한 채 찜하고 미친 척 살아보면 안 되나
미처 떼어내지 못한 창문 한 짝
팔랑팔랑 바람과 맞서는 위태로운 집
대출금 앞에 위태로운 게 어디 내 심장뿐인가
오르다 끝내는 하늘에 닿을
저 늘어난 집의 목에 깁스 채울 날 오리라
전봇대는 집 없는 자의 전용 자석 광고판
지붕도 없는 하얀 집이 입춘 지나도록 눈 맞고 있다
철컥철컥 내 눈이 먼저 붙어버리는
저기, 저 대기 중인 집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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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을 씹다

토막 난 개불이 꿈틀거린다
젓가락을 타고 오르다가
입에 닿는 순간 오므라들며 굳어간다
우리는 토막 난 바다에 둘러앉아 부지런히
고통을 덜어주는 의식을 치른다
초장을 듬뿍 찍어 개불의 비명을 지우고
엄지와 검지에 힘을 모아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면
매끄럽게 나를 통과하는 쫄깃한 주검의 맛
나도 한때 깊고 어두운 길을 통과해야 했다
정체 모를 점액질 흥건한 거리를 질척거리다
공연히 혓바닥을 깨물며
오랫동안 습기를 따라 돌아다녔다
태양 앞으로 불려가는
단 한 번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늘 아래 축축한 몸을 말렸다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향해 문을 연다
빈 접시에 누군가 나를 씹다가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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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에 대한 예의

안녕 사장님
당신의 긴 혀를 날름 끊어먹고 사라진 꽃뱀의 아지트는 어디 있나요
당신이 던져 준 부러진 토막말 줍느라 두 손은 바닥에 붙었어요
캐비닛에 한 달째 보류 중인 자존심도 이제 그만 결제를 해줘요
아랫배가 부풀어 오르는 사장님
당신이 키우던 말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위험해요

도마뱀은 당신이 사랑하는 애완동물
무서워요 사장님
밤마다 잘라먹은 꼬리의 살점이 이빨에 끼었어요
입 좀 다물어 봐요
비린내가 폴폴 날아와
내 얼굴에 불시착한 불행한 금요일
퇴근길에 또 당신을 만났어요
엘리베이터 안,
뽕브라가 들통 난 게 분명해요
심장이 오그라들어도 당당한 나는 올드미스
문이 열리고 펑! 연기처럼 사라지려는 찰라
스커트 뒷자락을 시침질하듯 찔러대는
당신의 반말이 바늘귀에 딱 걸렸어요

오늘밤 꿈속으로 놀러오세요
수술대 위에 누운 당신은 나의 환자
윙크 한 방이면 전신마취쯤 문제 없어요
아직도 웃고 있는 당신,
걱정 말아요 지퍼는 안전하게 보호해줄게요
배를 가르면 기형의 누 떼 한 쌍 웅크리고 있고
엊그제 회식 때 먹은 흑염소 울음도 고였을 테지요
꽃뱀은 두 개의 혀를 달고 스르륵 자취를 감추네요
불쌍한 도마뱀 꼬리 조각조각 이어 붙여요
아, 이제 문을 닫아야 할 시간
푹 꺼진 뱃속에다 작년 가을 햇빛에 소독한
들국화를 켜켜이 뿌리고 봉합해요
마취가 풀리려는지 기침을 하시는 사장님
내일 아침 향기로운 존댓말이 입속에서
빠져나와도 너무 놀라지 말아요
사장님, 내 맘에 맞게 당신을 조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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