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手巾 / 임은주
한 맘으로 비를 피했던 복사 벌 기행에서
호박엿 하나 물고 소독차 꽁무니연기 빼 닮은
물안개를 좇은 흔적 있다 한 자락 수건 쓴 적 있다
우산이 되었던 현수막의 긴 주름에서
어머니의 헌 皮가 만져졌다
빗방울 머금은 꽃,
그 꽃 꼭 쥐고 와서 봉투 흔들어 쏟았다
산 소독을 끝낸 물안개
머리 감싼 하얀 망울들 차창에 슬몃 차려놓을 때
유독 허리 휘도록 김 매는 꽃
쏘-옥 올라온 풀 숲 도라지 망울
오각으로 수건을 접었다
두른 수건 풀어 흔드는 콩 밭이거나 배추고랑 위
파밭만 두고 비탈 산 따라 굽는 허리 바라 본 수건이다
도라지 꽃은
밤을 지샌 비의 젖은 발
등이 휘는 바람 속에서 흙빛이 쏟아진다
자다 깰 때와 다른 잃어버린 보라의 나라
열 마지기 논 걷어가 귀 닫게 하고
흙탕물 걷으며 눈 닫게 한 장맛-비,
오각형으로 펑- 펑- 터지고 있다 도라지 꽃 피고 있다
한 방울 눈물 못 만드는 어머니 울음 되었다 나락 끝에 찔린 눈
나락을 끌어들인 먼 눈의 꽃술 되었다
산山마다 나무는 뽑히고 국수-집 나온 연기와 물안개 속
벗겨내도 벗겨지지 않는 아린 뿌리 가시 눈目으로 닫히었다
마주보다 따라 왔던 큰-물을 닦고 간다
*아우라지 빗色 백 도라지
* 아우라지;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아우러져 강을 이루는 곳이라 하여 아우라지라 불리우는 정선 아리랑가사(님을 기다리는 처녀상)의 유래지.
<제6회 부천신인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부천신인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수건手巾 한 장이 주는 상상력의 감동
시인은 시 한편을 쓰기 위해 소재로 채택한 사물의 끝자락까지 만져 보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때로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땀에 찌든 일상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시인의 손에서 재창조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심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시 쓰는 것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개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스승을 닮기도 하고 동료를 닮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습작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인에게 심사위원들은 높은 점수를 주게 마련이다.
이번 심사에서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수건>을 포함해서 2편이다. 그중 <나는 반죽이다>는 내면의 흐름을 반죽에 비교하여 노래한 기법은 참신했으나 진부한 시어들이 반복된다는 점이 약간 흠이다.
<수건>은 시어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고 수건을 도라지꽃과 동질화시켜 여러 각도에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내며 나락에 질린 꽃술과 울음 없는 어머니의 눈물로 대비 시켜 삶의 애환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큰-물을 닦고 간다'는 수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생을 달관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군데군데 얘써 꾸민 흔적이 흠이지만 수건 한 장에 담아낸 풍부한 상상력과 착상, 그리고 시어의 참신함에 당선작으로 뽑았다.
비록 당선작에 들지 못한 시들 중에서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 응모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음을 부기해 둔다. 부천 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단을 이끌어 갈 역량 있는 많은 시인들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박영봉 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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