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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 강현진

 

육각의 눈송이들이 내리는 겨울

그 안에 갇힌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들

책장이 육면으로 서로 마주 보고

책들은 서로 잠그고 쉬쉬하며

벌집 모양의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리게 한다


당신은 어디에 꽂혀 있는가

낡은 책의 첫 페이지를 거꾸로 읽어보기도 했다

붉은 활자들이 새 주둥이가 되어

내가 흘리는 눈물들을 받아마셨다

책을 한 삽씩 파묻을 때마다

도서관 가운데 나무가 한 뼘씩 자랐다

천사들이 나무를 오르며 꽃을 던지고

7개 태양을 등불 삼아 미로를 통과했다

책을 넘길 때마다 당신의 발자국은 정교했다

칼로 도려낸 글자들을 호주머니에 넣고

돋보기로 흰 페이지를 불사르며

고양이의 토막 난 꼬리들을 주워 담는데

아린 열매들이 가슴에서 떨어져 내린다


날이 저물면 책들은 경사가 지고

내 사랑도 반쯤 기운다

작게 빛나는 달을 쥐고

책장 위에 쓰러져 있던 당신을 발견했을 때

얼어붙은 당신의 페이지에 입김을 불고

숨겨진 구절들을 손으로 더듬는다


독이 묻은 당신을 읽으며

소리 없이 죽어가는 밤

나무가 영혼을 뚫고 뻗어 가

건물을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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