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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교양 / 황인욱

 

흑사병의 역사를 뒤로하고 눅눅한 지하를 거닐던 쥐들이

시장의 외곽으로부터 이곳저곳을 누비며 악마의 씨앗을 뿌린다

높은음자리표를 따라 선율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면

이내 악마는 굽어보는 선단 위에서 지휘봉을 들고

품위 있는 연주를 시작한다

귀품 있는 ㄴ귀족부인의 영국식 치마 끝자락을 타고

머나먼 땅에 도착할 때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들조차 악마의 연주에 황홀해 마지않는다

 

기사는 투구를 쓰고 오래된 갑옷을 걸친 채

악마의 교향곡을 음미하곤,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간다

형용할 수 없는 정의감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퍼지며

죽음을 바라볼 때 경건해진다

 

기사는 오래된 나무 단상 위에 올라서

이내 악마를 단두대 앞에 세운다

단두대의 핏물이 바구니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았으리라

바구니 가득한 수많은 머리들 중 하나로 남겨질 악마의 자취

하지만 악마는 자신의 운명 앞에 미소로 응답한다

곧 칼날이 공간을 비틀고 악마의 목을 강타하니

사람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악마의 바람이 이루머지며

악마는

저주받은 암흑 속에서 휘파람을 분다

기사의 죽음은 단지 악마의 비석 앞에 놓인

안개꽃 다발 속에 하나의 이파리에 불과할 뿐

악마를 찬송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광장 가득 울린다

이 얼마나 고결한 교양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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