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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옷걸이는 누군가의 배후다/정충화

 

 

모든 옷걸이는
옷을 위한 몸이다
주인을 대신하는 또 다른 몸
육신의 껍데기를 끌어안고
기꺼이 제 몸을 빌려주는
누군가의 대역代役이다
철 지난 양복을 걸치고
옷장 속 어둠을 거르거나
젖은 셔츠를 입고 빨랫줄에 매달려
햇볕과 바람의 통로를 지키는
수문장이 되기도 하는 것들

세상의 모든 옷걸이는
누군가의 배후다
나 역시
낡고 찌그러져 가는
한낱 옷걸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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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手巾 / 임은주

 

 

한 맘으로 비를 피했던 복사 벌 기행에서

호박엿 하나 물고 소독차 꽁무니연기 빼 닮은

물안개를 좇은 흔적 있다 한 자락 수건 쓴 적 있다

우산이 되었던 현수막의 긴 주름에서

어머니의 헌 가 만져졌다

빗방울 머금은 꽃,

그 꽃 꼭 쥐고 와서 봉투 흔들어 쏟았다

산 소독을 끝낸 물안개

머리 감싼 하얀 망울들 차창에 슬몃 차려놓을 때

유독 허리 휘도록 김 매는 꽃

쏘-옥 올라온 풀 숲 도라지 망울

오각으로 수건을 접었다

두른 수건 풀어 흔드는 콩 밭이거나 배추고랑 위

파밭만 두고 비탈 산 따라 굽는 허리 바라 본 수건이다

도라지 꽃은

밤을 지샌 비의 젖은 발

등이 휘는 바람 속에서 흙빛이 쏟아진다

자다 깰 때와 다른 잃어버린 보라의 나라

열 마지기 논 걷어가 귀 닫게 하고

흙탕물 걷으며 눈 닫게 한 장맛-비,

오각형으로 펑- 펑- 터지고 있다 도라지 꽃 피고 있다

한 방울 눈물 못 만드는 어머니 울음 되었다 나락 끝에 찔린 눈

나락을 끌어들인 먼 눈의 꽃술 되었다

마다 나무는 뽑히고 국수-집 나온 연기와 물안개 속

벗겨내도 벗겨지지 않는 아린 뿌리 가시 눈으로 닫히었다

마주보다 따라 왔던 큰-물을 닦고 간다

*아우라지 빗백 도라지

 

 

* 아우라지;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아우러져 강을 이루는 곳이라 하여 아우라지라 불리우는 정선 아리랑가사(님을 기다리는 처녀상)의 유래지.

 

                    

 

 <제6회 부천신인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부천신인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수건手巾 한 장이 주는 상상력의 감동

 

   시인은 시 한편을 쓰기 위해 소재로 채택한 사물의 끝자락까지 만져 보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때로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땀에 찌든 일상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시인의 손에서 재창조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심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시 쓰는 것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개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스승을 닮기도 하고 동료를 닮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습작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인에게 심사위원들은 높은 점수를 주게 마련이다.

이번 심사에서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수건>을 포함해서 2편이다. 그중 <나는 반죽이다>는 내면의 흐름을 반죽에 비교하여 노래한 기법은 참신했으나 진부한 시어들이 반복된다는 점이 약간 흠이다.

  <수건>은 시어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고 수건을 도라지꽃과 동질화시켜 여러 각도에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내며 나락에 질린 꽃술과 울음 없는 어머니의 눈물로 대비 시켜 삶의 애환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큰-물을 닦고 간다'는 수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생을 달관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군데군데 얘써 꾸민 흔적이 흠이지만 수건 한 장에 담아낸 풍부한 상상력과 착상, 그리고 시어의 참신함에 당선작으로 뽑았다.   

   비록 당선작에 들지 못한 시들 중에서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 응모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음을 부기해 둔다. 부천 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단을 이끌어 갈 역량 있는 많은 시인들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박영봉 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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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葬 / 정광주


           세찬 물때 맞아 몸살 앓는 부두에
           이제 돌아와 비로소 젖은 노제 지내는
           참방이는 수면의 저 깊은 한사리. 

           개기일식에 가려진 짙은 어둑살 너머
           침잠의 포구로 잦아드는 새의 그림자가
           부유하는 해면 위 식은 햇살을 비질한다.

           지새고 나도 한 없이 되돌던 지난한 세월 
           월령을 채운 만월에 시월은 한기를 내뿜고 
           풍어의 기쁨 속 뒤척이며 긴 밤 설레던 
           집어등 춤추는 불면의 날이 마감되면 
           집채 넘는 너울에도 고요한 숙면은 왔다.

           생애의 끝에서 파랑주의보는 소멸하고·
           창백한 사각의 창에 갇힌 흑백사진 속 
           굵게 주름져 해맑은 초로의 어부는 웃고
           다가올 미명에 문 여는 선창아래서 
           비린내 배어나는 햇살에 몸을 닦는다.

           푸름의 세월을 한껏 조율하던 바다에서
           망실해 뒤돌아보는 아득한 일월의 저편 
           흐려지는 시야에 만선의 깃폭을 내리고
           이제 삼베로 마름질한 고름을 꼭꼭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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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 김명숙

 

 

소리의 집이다
아니, 비워냄의 꽃이다

 

모두 비워내기 위해
제 몸을 진종일 널어 말린
누에고치이다

 

둥, 둥, 둥

 

저문 하늘로
팽팽한 울림이
바람의 등을 타고 올라
하늘을 가른다

 

비우고 비워 비로소 다다른 자리


소리꾼의 득음이다
부처의 깨달음이다

 

어두운 하늘로
자꾸만 파닥거려 날아오르는 소리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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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쟁이 / 문신진

 

7월의 태양이 연못에 빠질 때마다
소금쟁이는 가슴을 비틀고 있었어요
저 영감탱이를 몰아내고 왕이 되리라
민들레 홀씨 눈처럼 내려앉던 어제 오후
신경통에 삐걱거리는 다리를 끌던 영감을
꼴사나운 개부들 틈에 쓸어 넣고 만세를 불렀지

 

물방개 풍뎅이 연꽃위의 무당벌레까지
나의 등극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 같았어
무덤덤한 버들가지 빼고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움츠린 각시들을 모아놓고
허풍을 쳐대며 오만스럽게 그들 주위를 맴돌았지

내가 너희들의 지아비니라
연못에 주저앉은 구름조각을 밟으며
구럼처럼 번성할 내 후손들을 생각했지
아들이 아들을 낳고 손자가 손자를 또 볼 때까지
가로지른 은빛 거미줄 아래
부푼 꿈은 또 하나의 금빛 줄을 포개고 있었지

말잠자리가
나를 부퉁켜안고 하늘을 오르는데
울며 손 흔드는 각시들 꿈속처럼 희미한데도
중얼거렸지, 아들이 아들을 낳고, 손자가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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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공 황씨 / 금미자

 

우리 동네 길 모퉁이에 두어 평 남짓한 집수리 가게가 있다. 전기, 수도, 도배, 유리, 페인트, 방수, 보일러. 그야말로 만물상이다. 황씨, 동네 사람들은 가게 주인을 이렇게 불렀지만 그의 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사투리로 보아 고향이 경상도 어디쯤이라는 것밖에. 그는 친절하고 부지런하고 인사성 밝고 매일 아침, 거리는 물론 골목까지 청소를 했다. 때로는 아이들 등굣길 교통정리도 했다.

그의 가게는 날로 번창했다. 한 밤중에 전화를 해도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하수도가 막힐 때도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도 그가 다녀가면 거짓말처럼 고쳐졌다. 그가 제법 돈을 벌었을 거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수다쟁이 동네 아줌마들 중에는 황씨를 장가보내야 한다면서 입방아를 찧었지만 그는 씨~익 웃기만 했다.

지난 초겨울 통장네 집으로 황씨의 전화가 걸려 왔다.“통장님 저 황씨에요. 통장님께 죄송한 말씀드리려고요. 사실 저는 돌팔이 수리공이에요. 통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제가 언제 연장도구 한번 제대로 만지기나 했나요.”잠시 조용하더니 목구멍으로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통장님 저는요 건축현장에서 잡부 노릇하던 놈이에요. 더 이상 동네 사람들을 기만할 수가 없어서 가게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 번 돈은 마누라 암 치료비로 다 썼습니다.”다음날 굳게 닫힌 황씨네 가게 문짝엔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동네사람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마누라가 살았습니다.

  황씨 올림.”

 

 

[심사평] 시인은 인간의 소리를 들을수 있어야....

 

 ‘시는 신화이다.’라는 말은 시의 내용적 정의이다. 시의 내용, 즉 시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그러니까 시의 내용은 ‘신화’라는 것이다. 그러면 신화는 무엇인가. 신화는 글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혹은 ‘신과의 대화’이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신화에 쏠리는 관심을 흔들리는 배의 균형 잡기에다 비유했다. 신화적 세계가 대표하는 초 합리와 과학이 대표하는 합리 사이에 형평을 유지하려는 것이 바로 토마스 만의 균형의 이론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은 신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현대는 아무리 봐도 신들을 위해 떠오를 태양이 없는 시대다. 땅의 시대이며, 육체의 시대이며, 물질의 시대이며, 신이 잠든 시대이다. 신은 현대인의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 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신이 깨어나면 신화의 세계가 열린다. 이것이 바로 시를 창작하는 일이다. 그런데 신화의 의미 중 ‘신들의 이야기’는 서사시와 극시의 내용이며,‘신과의 대화’는 서정시의 내용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시를 신탁(신탁(神託)이라고 해서, 시인은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수리공 황씨’ 외 3편, ‘’산이 잠든 줄 알았어요‘ 외 4편, ’홍시‘ 외 4편, ’허물어지는 씨족 성‘ 외 4편 등 네 분의 작품이다. 사실 네 분의 작품은 수준이 거의 같아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모두 시를 1,2년 쓴 것이 아니라 꽤 오랜 수련기를 거친 분들로 보였다. 주제의 시적 형상화도 기성 시인에 뒤지지 않았다.

 ‘허물어지는 씨 족성’ 외 4편은 시적 용어가 다양하며, 현대적인 비판의식도 깔려 있으며, 시적 이미지의 형상화도 무난하다. 그러나 너무 과장하고 서두르는 것 같은 표현 때문에 진실성이 전해오지 안는 것이 흠이다.

 ‘홍시’ 외 4편의 작품은 ‘오랜 추억들만 하나둘씩/꺾어내고 있었네’에서 보듯이 너무 아름다운 서정시이다. 시적 문장력도 훌륭하다. 그러나 상식적 관념의 서술이 맘에 걸린다.

 ‘산이 잠든 줄 알았어요’ 외 4편은 거침없는 의인화의 기법과 이미지 전개의 자유분방함이 실험시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비유의 창의성과 신선감의 결여로 시적 감동이 적은 것이 흠이다.

 ‘수리공 황씨’는 산문시다. 그런 만큼 산문적 서술 특징이다. 그리고 산문시의 특성인 이야기(story)가 들어 있다.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 때 시적 긴장감이나 표현의 묘미를 맛볼 수는 없다. 그러나 다 읽은 다음에 오늘날과 같은 땅의 시대, 물질의 시대, 신이 잠든 시대에 신의 소리 곧 양심의 소리가 시적 감동으로 전해 옴을 느낀다. 이분의 다른 작품에선 시적 표현의 긴장감과 이미지 형상화의 뛰어남도 알 수 있었다. ‘수리공 황씨’를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한 이유이다. 

 

 

[당선소감]

 

 내가 가는 봉사 단체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을 하다보면 삶에 찌들어 숨쉬기조차 힘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시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어떤 분은 왜 그렇게 아프고 고통스런 이야기를 소재로 시를 쓰느냐고 하지만, 그들의 현실에 아름다운 언어로 희망의 날개를 달아 주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춥고 긴만큼 봄에 필 목련이 더 아름답다’고하면 내 어려운 이웃에겐 사치한 일인 것 같아 왠지 미안한 마음입니다.

  뜻밖의 당선 소식에, 생기 잃었던 내 속의 언어들에게 탄력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내 시의 소재가 되어 준 이웃들에게 감사합니다.



프로필 

제 1회 부천 여성백일장 장원

주소 :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371-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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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 이순례

마른 오징어와 푸른 동해 바다를 씹는다.
입안 가득히 바닷물과 목선과 속초 항구가 풍요롭다.
무료와 적막을 위해 마르고 긴 다리들을 준비한 오징어
집어등처럼 반짝이는 한 잔의 소주는
수평선 위에서 검푸른 고독의 냄새를 풍긴다.
쉰 목소리의 바람이 불고
속초항은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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