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향해 수 만개의 발들이 말라가고 있다. 한 때 저 흡판들은 바다를 물어뜯던 폭력이었을 것이다. 새벽 출항, 집어등에 속아서 배를 가르고 꼬챙이에 꿰어져 내장도 제 속내도 다 내어주었던 것. 오징어는 온몸으로 햇빛을 투과시키며 온순해졌을 것이다. 바다에서 빠져나온 질량만큼, 다시 바다를 향해 몸에 깃든 물을 풀어주면서 늘 젖어 살았던 몸들이 있는 힘껏 가벼워지고 있다 어부들의 이른 잠과 밤바다를 낮에 엮어 가는 여인들의 노고까지 내일의 파도를 염려하며 축 늘어진 발은 다 알고 있는 듯 축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적당한 염분들은 투명한 몸에서 갈변되고 바람에 쉬이- 하고 사라지는 영혼들은 천천히 몸을 잊고 있다 아무리 바다를 캐내도 통장의 잔고는 뱃고동을 울리지 않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몸들은 부력보다는 중력이 먼저다 이제 바다를 향해 뻗어갈 듯 저 수 만개의 발들을 보라! 오징어는 바다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으려고 눈에 가시 같은 뼈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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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까치집 / 박혜란
아침마다 삼촌은 머리에 까치집을 짓습니다 밤새 헝클어진 머리로 찾아온 까치 부리가 쿡쿡 노총각 정수리를 쪼고 갔던 것이지요 목과 팔이 늘어난 러닝셔츠를 주워 입고 연거푸 머리를 긁으며 수돗가로 가는 삼촌의 뒷모습은 어수룩하고 궁핍합니다
툇마루에 할머니는 속병이 난지 오래 보내 놓은 입사원서 소식이 궁금해지는 대낮까지 푹, 잠을 자다가 허연 배를 긁고 나오던 삼촌은 실업보다 실없게 웃는 걸 잘 한답니다 할머니 타박하는 소리가 딱. 딱. 정수리를 때리고 구르르릉, 구르르릉 전기 펌프에 물 차오르는 소리가 아무도 모르게 삼촌 가슴 속까지 뻗어갑니다
베트남 처자라도 좋으니 젯밥 좀 얻어먹자고 일품 팔아 누추한 가계 좀 일으키라고 까치집의 까치가 바람을 모아 먹이를 물어 줍니다 순식간, 펌프로 차오르는 오래 고인 물처럼 한 가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삼촌 식도에서는 역류하는 쓴기침이 한참이지요
삼촌은 머리에 까치 한 마리 틀고 마당으로 걸어갑니다 할머니 걱정을 쓰락쓰락 밟고 뒷모습을 새겨갑니다 미워서 자꾸만 깊게 들리는 삼촌 발자국 소리가 까치 울음보다 더 손님 같은 대낮이 오고 있습니다 부스스한 정수리에서 까치도 까치처럼 잘도 웁니다
온라인 폭주처럼 쏟아지는 햇살이 수면계좌 같은 망각을 일깨울 때면 들킨 것 같아 내가 세상과 거래한 내력을 살피게 된다 불신이 팽배한 사회이지만 신용도 평가처럼 자명하게 자신을 밝힐 수 있다면 나의 하루하루는 통장정리처럼 일목요연할 것이다 허투루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않고 적립식으로 저축한다면 목돈 같은 내일이 오고야 말 것이다 이따금 내게로 계좌 이체되는 그녀와의 사랑은 내 집 마련 주택부금 속에서 중장기적인 우리의 미래를 청약하고 있다 온라인 폭주처럼 햇살이 쏟아지는 날이면 연이율처럼 약속된 우리 사랑은 서로의 깊은 속에서 행복을 무담보 대출한다.
붕어빵의 생은 뒤집어 지는데 있었다 둥그런 방패 속에 한 칸씩 자리를 잡고 빙글 돌때마다 노랗게 완성되는 삶, 하루 종일 열심히 돌리고 뒤집었지만 쪽방의 허기를 달래주기엔 여전히 부족했다. 그을려진 면장갑에서 이스트냄새가 풀풀 날리고 잘 익은 가난이 누런 종이봉투에 담겨 넘겨질 때마다 땡그랑 소리 내며 깡통 속으로 던져지는 오백 원짜리 행복 두 개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는 날엔 분주하게 돌아가는 방패 따라 수십 쌍의 붕어빵이 태어나고 아버지의 하루는 짧고 즐겁기만 하다. 깡통이 침묵하는 날씨 궂은 어떤 날엔 어항속의 금붕어도 보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붕어빵 먹여 재워야 하는 고단한 현실, 십 수 년을 하루같이 공들여온 희망이 힘없는 백열등 불빛 아래서 환하게 잠들어 있다. 머지않아 저 아이들이 아버지의 생활을 뒤집고 아버지의 방패를 용도 폐기 시키는 날 아버지도 기꺼이 자신의 삶을 뒤집을 것이다. 곤궁이 창끝처럼 찔러오는 생활전선에서 달랑 방패하나로 지금까지 꿋꿋이 지탱해온 아버지 오늘도 한 모금 길게 담배로 빈 배 채운다.
서울역 광장에 노숙자들이 비둘기 고기를 서로 먹겠다고 싸울 무렵 남편은 20년 동안 앉았던 의자를 내놓아야 했다. 달포 동안 체류한 사우디출장보고서를 마친 후 점심때였다. 처음으로 그는 한낮에 영원한 퇴근을 했다. 사장도 부사장도 상무도 한 발 앞서 내놓아야 했던 그 의자에 묻은 온기는 너무도 쉽게 사라졌다. 이제 그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지 않고 주름이 죽은 면바지를 입는다. 바닥에 편안히 눕는다. 헐렁헐렁한 시간들이 계속된다.
2. 놈의 동물성에 관한 비유
놈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카멜레온이다
놈은 봄날 늙은 암고양이,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그러다가도 놈은 메뚜기떼, 인정사정없이 논밭을 훑는다
3. 놈의 성정 관찰하기
놈은 수성(獸性)을 지녔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언제든 약한 자의 등을 물어뜯는다
놈이 얼굴을 할퀴면 흉터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놈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놈 앞에서 세계의 두목들은 무릎을 꿇는다
살살 비위를 맞추려는 자들을 가지고 논다
오대양 육대주는 놈이 활보하는 걸진 굿판이다
놈은 폭군 네로다
허리케인, 토네이도다
도미노의 달인이다
놈 앞에서 나는 벌거숭이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어린 아이다
꾸중들을까 봐 맘졸이는 오줌싸개다
놈의 포효에 남동공단 구로공단 사상공단 하남공단 굴뚝의 연기는 하늘로 치솟는다
그러나 놈은 순한 불독
때때로 발톱을 내리고
코끝을 간질이면 벌렁 드러눕는다
다독이는 손을 핥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때
공장의 기계는 명랑하게 웃는다
4. 놈의 신체학적 고찰
놈은 세계의 등뼈다
등뼈는 너를 나를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
놈의 등뼈가 휘어지면 허리는 삐끗, 골다공증 다리는 삐거덕삐거덕
놈은 귀가 여러 개다
여의도로 월 가로 런던 시티로 귀를 열어 놓는다
때때로 귓불이 파르르 떤다
놈은 갈퀴손을 그러쥐고 외쳐댄다
"세계는 내 손 안에 있소이다!"
5. 놈의 자연성 엿보기
놈은 영악한 놈, 바람을 닮았다
모습을 감춘 채 밤새 창문을 덜컹거리다가 아침이면 힁허케 사라지고
삼월에 꽃눈을 간질여 꽃을 피우다가도 시베리아 북풍을 몰고 와 폭설을 퍼붓는다
잎눈은 그대로 눈이되고 대지는 광꽝 얼고
봄은 제 자리에 그대로 돌이 된다
놈은 거대한 바다, 파도를 일으키고 파도를 잠재우는
나는 노조차 없는 쪽배
바람이 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수밖에
6. 희망 보고서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은
지하골방에서 징징대다 잠이 든다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는 이들의 등은
새우처럼 굽어 있다
굽어서 펴지질 않아
그대로 둥근 정물이 된다
바람의 말을 따라 새들이 지저귄다
태풍에 쓰러지고
찬서리에 고개가 꺾여져도
한 줄기 빛은 가슴 속에서 살아 숨쉬는 법
긴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라
내숭의 꼬리를 싹둑 자를 때
봄 언덕에는 노랗게 꽃다지 웃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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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해 경제신춘문예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경제를 주제로 문학작품을 쓴다는 일이 우선 쉽지 않을 것이다.
시 부분은 응모된 작품 수가 전년에 비해 적은데다가 그나마 응모자 대부분이 한편 정도의 시를 응모해 그 수준을 심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좋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한편만으로 평가를 내리기는 힘든 일이다. 또 시에서 경제라는 주제의 협소성 때문인지 경제신춘문예가 아닌 평이한 시들이 많았다.
경제는, 더 쉽게 얘기해 일반 응모자들이 그것을 아주 협소하고도 그릇되게 받아들이는 바대로의 '돈을 버는 일'이거나 '돈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로 우리가 그것을 적대시하거나 백안시할 부분이 아니다. 내년 응모자들은 이 점을 참고하기 바란다.
최종 본선에 올라온 작품은 시 부문에서는 '천정에 사는 남자' 외 4편의 시와 '놈에 대한 형이하학적 진단', 소설 분야에서는 '엘도라도는 어디 있는가', 동화부문에서 소중한 1리얄', 기행문과 제안을 수기 형식의 '꽃으로, 꽃으로 히말라야의 눈물을 닦아주길 바라며'이상 5편이었다.
이 중에서 '천정에 사는 남자'외 4편의 시들은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들과 전혀 차별성이 없다는 점에서 다음 기회를 보기로 했고, 소설 '엘도라도는 어디 있는가'는 원고지 200여매 이상 되는 소설이 친구와 나 사이에 문답으로만 거의 이루어지고 결말 또한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남은 작품 가운데, 우수상으로 뽑은 시 '놈에 대한 형이하학적 진단'은 우선 어휘구사력이나 길게 끌고 가는 호흡과 작품의 구성력이 돋보였다. 주제 또한 정면에서 경제를 다루었다는 점이 많은 점수를 얻었다. 바람이 있다면 작품이 길다 보니 중언부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었다.
최우수상을 놓고 막판까지 고민을 하다가 우수상으로 정한 '소중한 1리얄'은 아주 잘 쓴 동화이다. 작은 동전 하나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또 우리 삶의 아름다운 미래를 이야기한다. 흠이라면 동화적 상상력보다는 지나치게 교훈적이라는 점이었다.
최우수상으로 뽑은 '꽃으로, 꽃으로 히말라야의 눈물을 닦아주길 바라며'는 고등학생이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놀랍다. 네팔의 경제적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나름대로의 제안 방안도 그 나이의 청소년다운 독창성이 돋보인다.
한창 공부할 나이의 청소년에게 이토록 큰 상을 주는 것이 이 소년을 위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아닌가를 오래도록 토론한 끝에 심사의 공정성을 우선하여 최우수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부디 오늘의 이 영광이 미래의 독이 되질 않길 바란다.
세상으로 향한 회전문 열고 들어오는 구부정한 허리의 윤씨는 건축 일용직공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 지하 단칸방 벗어나려 희망으로 향하는 목도의 길 더듬어 온 것이다
내일의 빛으로 한금한금 엮어 모눈종이 위에 조용히 서 있는 집 상담석에 앉은 그는 소망의 설계도 펼쳐 보인다 행원은 오늘 아침 일어난 곳을 묻는다 일용직 윤씨는 설계도에 문제가 없다는 듯 행과 열을 오르내리며 내일의 창을 여닫는 동안 행원은 그가 지나온 길을 들여다본다. 부르튼 손과 홀쭉한 얼굴에서 험난했던 날들이 열린다
낡은 몸 접어 뉘던 지하 방 오래도록 세를 내지 못해 지상으로 내몰릴 몸을 기억 하는지 움찔 세상이 움직인다 연기가 피어 오르는 설계도 안 굴뚝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 방향이 운이 좋다고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집 앞에 당도할 수 있다면
상한 몸은 지금 아궁이와 구들을 지나 정초를 세우는 중이다 가족은 지하 단칸방 벗어 나려 한다.
빛으로 향한 길은 멀고 가파르다 그러는 동안 행원은 윤씨의 가난한 가계도 계속 들추고
윤씨는 밝은 앞날의 비밀을 캐내는데 행원은 아직도 과거를 읽어 간다. 지금 그의 거푸집 같은 손을 따라가면 툭툭 불거져 나온 강줄기 같은 실핏줄 끝으로 젊었을 때 심어 놓은 푸른 질경이 꽃 무늬를 만난다 그가 움츠릴 때마다 마른 꽃잎 한 무리씩 피었다진다
그는 대들보 건너고 있다 나무의 틀어짐 바로 잡으려 안간힘을 쓰다 나무의 숨결이 들려주는 법문을 읽고 있는 굵은 주름살에 갇힌 눈 들여다보다가 그의 진실을 만난다. 높이의 경계까지 올라온 것일까.
집은 늦어지고 있다 행원은 이제 윤씨의 현실을 트집 잡고 있는데
설계도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집은 그의 꿈길을 따라 계속 자라고 있다 촘촘히 서까래 얹고 추녀를 엮어 가며 하늘 행간과 수평을 맞추다 먼 하늘을 본다 상향식을 하듯이 굽은 키의 높이 만큼 하늘은 빈자리 비워 두고
이제, 집은 마무리가 되고 다시 건축 일용직공의 항해가 시작된다 용마루 올리자 바람이 분다 설계도 위의 꿈이 와르르 무너진다 윤씨는 꿈을 접어 봉투에 밀어 넣는다 언제 다시 개봉할지 모르는 어두운 가슴 한 편으로
긴 미로 끝 윤씨의 낙인이 그려지고 세상을 향해 나서는 순간 처마 끝 풍경이 하늘의 현 건드리자 겨울비가 내린다 행원이 윤씨의 머리위로 우산을 세우는 동안 멀리서 풍경소리가 내린다 "다시 오십시오, 당신이 희망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당신의 따뜻한 이웃입니다."
머니투데이가 주최하고 재정경제부 은행연합회 증권업협회 후원, 신한금융그룹 조흥은행 협찬으로 실시된 '제1회 대한민국 경제 올림피아드' 공모전 당선작을 아래와 같이 선정했습니다.
'금융경시대회' 부문 영예의 대상인 부총리상(상금 1000만원)은 '20대 사회 초년생을 위한 금융상품 개발 및 마케팅/고객관리 전략'을 공동출품한 박민지(21·서울여대 3)씨 등 10명이 차지했습니다.
우수상 3편(상금 각 300만원)은은행연합회장상에 박진형씨(출품작-영화산업 지적재산권 유동화),증권업협회장상에 최현준씨(인디펀드),조흥은행장상에 김홍준· 송윤정씨(금융 겸업화와 적금카드)가 각각 선정됐습니다.
'경제신춘문예'부문에서는 대상 수상작을 내지 못했습니다.우수상 3편(상금 각 300만원)은은행연합회장상에 김태환씨(작은 거인들이여 다시 일어서라)증권업협회장상에 조대영씨(땅)조흥은행장상에 강봉덕씨(풍경소리)를 각각 선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