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당선소감] 사랑하는 것들 사라져도 이야기는 남아 있겠죠
어렸을 적,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은 문을 열어둔 채로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 사라질 거면 저 많은 별과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꽃은 왜 피고 수퍼 앞 고양이는 왜 목을 긁는지, 그 모든 것들이 알고 싶었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키워주신 혜능 스님이 작년에 세상을 비우고 걸어가셨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랑이 떠나면 가슴 한가운데에 번개처럼 금이 생기는데, 그 금 위로 사랑의 강물이 흐르게 된다는 걸 요즘에 와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가 남습니다. 몸이 사랑이 됩니다. 또한 그 이야기와 사랑조차 시간에 녹아 다 사라진대도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눈부신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사랑하는 김문주 선생님, 사랑의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의 스승이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처음 이곳에서 선생님이 강의했던 날, 칠판에 쓰신 詩라는 글자가 제 이마를 뚫었어요. 창이 흔들렸죠. 속이 일렁거렸어요. 창밖은 봄이었는데, 선생님이 나긋나긋 시를 읽어주셨는데, 바로 그때 저는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이상한 확신에 휩싸였어요. 시를 이야기할 곳도, 배울 곳도 없던 이곳에서 저에게는 선생님 단 한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시였어요.
소중한 기회를 주신 문정희, 정호승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영남대의 스승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 시를 쓰며 걸어온 현정이, 송이, 유신아. 우리 계속 같이 걷자. 같이 산책하자. 동우, 현수, 혁준, 택, 대희형, 승빈, 지영, 상회, 수정, 주은 늘 고마워요. 끝으로 어머니, 아버지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면서도, 밤이면 시를 읽어주신 두 사람. 저는 두 사람 덕분에 '사랑의 바깥'을 몰라요. 영재만 알지. 영재야, 이건 형이 처음 말하는 건데, 너는 형아가 쓴 시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사람이란다.
[심사평] 오르내리는 바이킹의 공포와 인내, 우리 삶 비춰
언어는 소통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의 한 단면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에 본심 심사 대상이 된 시의 경우, 소통하기 어려운 시가 많았다. 인간의 삶은 존재하지 않고 언어만 존재해서 그 언어의 유기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시의 그릇에 제각기 놓인 추상적 관념적 언어를 통해 언어의 난무(亂舞)를 보았다. 삶의 내용이 내포되지 않은 시의 언어는 그 의미를 잃는다. 의미를 잃고 형식만 남음으로써 소통이 불가능한 시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한국 시의 위기다. 그러나 최종심까지 논의된 몇몇 작품은 그런 위기감을 다소 진정시켜 주었다.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소통 가능한 언어로 쓰였으나 폭우에 떨어진 사과의 의미에 보다 깊은 사색의 비유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초행'은 화장한 유해를 들고 산을 오르는 과정을 대화체로 쓴 작품이다. 그러나 과정에 치우친 나머지 그 과정에서 추구해야 할 죽음의 의미에 대한 독자성이 부족했다. "다시는 안 볼랍니다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차 한 대가 쌩하니 지나가는 겁니다" 등에서는 유해를 모시는 진정성에 의구심이 일었고, "검은 봉투에 흰 가루를 품에 꼭 안고"에서는 응축되지 못하고 풀어진 점이 있었다.
'진심으로'는 진심에 대한 양의성이 있었다. '진심'을 진심(眞心)으로 이해했을 때는 시에 생명력이 있었으나 사람 이름으로 파악했을 때는 평범한 일기 같은 산문성이 두드러졌다.
당선작 '바이킹'은 한 남녀가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면서 한순간 겪게 되는 고통과 공포를 통해 우리 삶의 절망과 희망이 교직되는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재적 삶이 바이킹을 타는 행위로도 재해석되었다.
바이킹이라는 배를 타는 안식과 기쁨보다는 배가 좌우의 방향으로 높이 오르내릴 때 경험하게 되는 위험과 불안, 고통과 인내 등이 바로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실과 같다는 의미가 암유돼 있다. 당선을 축하한다. 당선자는 한국 현대시의 미래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 심사위원 정호승, 문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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