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 신이인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
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
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
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엮어,
붙들고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안팎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이름이 안팎일 수 있냐며 웃었는데요
손아귀에 쥔 것 그대로
보이는 대로
요괴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부리가 있는데 날개가 없대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인대
반만 여자고 반은 남자래
강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쫓겨난 누군가
서울의 모든 불이 꺼질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기슭에 떠내려오는 나방 유충을 주워 먹는 게 꽤 맛있다는 거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내 무릎에 올려두었던 수많은 오리너구리
오리가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나
진짜도 될 수 없었던 봉제 인형들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끊어낼 수 없는
주렁주렁
전구 없는 필라멘트들
불을 켜세요
외쳐보는 겁니다
아, 이상해.
[당선소감] "너무 곱씹어 단물이 다 빠져버린 미래...빚을 다 갚은 기분입니다“
나는 툭하면 이상한 애가 됐다. 초등학생 땐 이름보다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렸다. 중학교 담임 교사는 나 같은 애랑 잘 지내 주는 반 애들에게 선생으로서 고맙다는 말을 했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누군가 이상해! 소리쳤다. 누구는 나한테 특이한 척하지 말라고 하고 누구는 내가 특이해서 좋다고 하고 누구는 남들처럼 지낼 수 없겠냐고 한숨을 쉬었다. 영문을 몰랐다.
어쨌든 나도 당신들처럼 살아 보이겠다고, 시 같은 거 다시는 안 쓴다고. 봐, 나 평범하게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지만.
나는 시인이 될 수 없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씩 있다고 생각했다. 될 것 같은데, 정말 될 것 같은데.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될 것 같은데 영원히 될 것 같기만 한 사람. 나는 그게 나라고 믿었다. 그걸 받아들였었다.
너무 곱씹어 단물이 다 빠져버린 미래가 찾아왔다. 기쁘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글쓰기를 그만두고 돈을 벌면서부터 내 감정은 존재를 참는 방향으로 단련되어오고 있었다. 빚을 다 갚은 기분, 아니면 받아야 할 돈을 다 받은 기분. 조금 들떴고 홀가분했다.
한때 이 자리에 제일 먼저 적으려고 했던 이름을 생각하고 있다. 메모장에 줄줄이 저장해 놓고 누구 선생님, 선배님, 사랑하는 누구 친구, 한 명 한 명 부르려 했던 이름들이 많았다. 지금은 그중 하나도 기꺼이 부르기 어색하다.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전하겠다. 시인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저의 젊은 날에 함께해주셔서 기뻤어요. 우리가 쓰고, 배우고, 마시고, 사랑한 시간을 잊지 않을 겁니다. 끝내 이 말을 전할 수 있게 저를 이쪽에 세워주신 김소연 선생님, 장석주 선생님, 서효인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그리고 한 번 더 고맙습니다.
최고로 웃기고 올바른 사람인 서우주에게. 여전히 내 편인 김성은에게. 인생의 위로가 되어주는 이대휘에게. 정신여자고등학교의 편견 없던 선생님들에게. 여름이라고 불러달라는 멋쟁이들에게. 점례를 아는 친구들에게. 사랑하는 김미향, 신명균 씨에게. 내게 아직 남은 운이 있다면 모두 주고픈 신예지에게. 당신들이 있어서 난 좀 이상한 채로도 잘 살아 있다. 이 한국 사회에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것이다.
[심사평]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그 모두를 해내는 시"
개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개성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각자의 고유성을 얼마간은 지니고 있으며 생활과 사유 곳곳에서 그 고유함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숨기려 해도 얼핏 내비치는 사투리처럼, 감추려 해도 별안간 나타나는 표정처럼. 시는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개성을 서랍장 곳곳에 잘 수납하고 연과 행에 맞춰 잘 구획하는 관리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고유성을 극대화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난동꾼일 수도 있다.
심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중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길 바라게 된다. 관리자이면서 난동꾼이 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하길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잘 없으니까. 그 어려운 일이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일어났다.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은 정돈되면서 어질러진 시였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금의 시만큼 앞으로의 시 또한 기대된다. 기대하는 자의 설렘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함께 마지막까지 이야기한 작품은 '새, 하고 열린 옷장', '언젠가 부하들은 반란의 내색을 비춘 적 있다', '한국어 감정' 등이다. '새, 하고 열린 옷장'은 사소한 장면을 일시정지 상태로 만들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하는 미덕이 있었다. '언젠가 부하들은…'은 유머러스하고 의의성 있는 진행이 돋보였다. '한국어 감정'은 언어와 언어가 부딪쳐 생기는 감각과 진폭을 그리는 주제 의식이 담백했다. 모두 당선되지 않을 이유보다 당선될 이유가 더 많았으나, 약간의 행운이 부족했던 것으로 오늘의 아쉬움을 갈음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당선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건넨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세계 어딘가에서 역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들을 껴안으며 써나가 주실 것이라 믿는다. 관리자가 될 것인가, 난동꾼이 될 것인가? 그런 생각할 겨를 없이 시는 당신을 끌고 어딘가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면 좋겠다.
심사위원 서효인 시인, 장석주 시인,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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