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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울음 / 이진환

       

숲에서 하나 둘 나무를 세고가면

나무가 되었다 숲이 되었다 고요가 되었다

고요가 깊어지자 웅크리고 있던 숲이 안개처럼 몸을 푼다

불신의 늪이 꿈틀거려서다

 

한 때, 뿌리 뻗친 늪에서 마구잡이로 우듬지를 흔들어대다

새 한 마리 갖지 못한 나무였다

눈도 귀도 없는, 그 몸속으로

흘러 다니던 울음을 물고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릴 적 어둑한 논둑길에서 두려움을 쫓던

휘파람소리와 함께 가슴을 졸이던 눈물이었다

 

울음의 반은 기도였으므로,

 

안개의 미혹(迷惑)에서 깨어나는 숲이다

고요란 것이 자연스럽게 들어서서 허기지는 저녁 같아

모든 생명이 소망을 기도하는 시간이 아닌가

두려움의 들녘에서 울던 오래된 울음이

징역살이하듯 갇혔던 가슴으로 번지고 있다

 

기도를 물고 돌아오는 새들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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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달란트 꺼내주신 주님께 감사

 

“예수님!/ 저희에게 은혜로/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우리를 위해/ 저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거/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예수님!/ 다음엔, 제가/ 제가/ 대신 죽을 게요.” 초등학교 2학년 한 여학생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으로 설교를 시작하신 목사님은 “어느 누가 쉽사리 이런 고백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까”를 반문하셨습니다. 부끄러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주신 달란트를 40여년 동안 헛간에다 처박아뒀던 죄인을 조용히 부르시고 녹슨 호미 다 닦아서 손에 들려주시며 늦었지만 이제부터 나가서 저 넓은 지경에서 김을 충실히 매라 하십니다. 한순간도 선별된 삶을 살지 못한 죄인을, 지겹지도 않게 지켜보신 겁니다.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긴 세월 보내고 뒤늦게 시작하는 나를 보며 속이 까맣게 탔는지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우리 뚱이, 각시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 많지만 동행하며 등을 기대주었던 김진수, 고마워요. 영광은 주님의 것입니다.

 

 

 

[심사평] “종교적 관념을 예술적으로 형상화”

 

국민일보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에 대한 응모자의 뜨거운 열정이 매우 기쁘다. 다만 종교적인 관념이 예술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돈독하고 깊은 신앙심이라 할지라도 그런 관념을 작품 속에 녹여 넣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신앙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해야 비로소 신앙시가 된다.

 

예술적 형상화를 쉽게 말한다면, 그림을 생각하면 된다. 한마디로 ‘이미지를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림 속에 어떻게 관념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를 머릿속에 자꾸 그려 보아야 한다. 예술이란 느낌으로 그 세계를 교감(交感)하는 것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발상이나 구성, 기교 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수감각과 버무리지 못한 탓으로, 아쉽게도 예심에서 대거 탈락해 4000편의 응모작 가운데 30여편만이 본선에 올라 왔다. 역시 본선에서도 종교적인 관념을 보다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가려내기 위해 유승우, 주원규 시인 등 본심 심사위원과 함께 심의를 거듭한 끝에 전원 합의에 의해 이진환의 ‘오래된 울음’을 대상작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미지의 예술적 형상화와 비유, 상징이 잘 조화되어 세련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기성작가의 영역을 뛰어넘는 수작이라 하겠다.

 

첫 연의 “숲에서 하나 둘 나무를 세고가면 / 나무가 되었다 숲이 되었다 고요가 되었다 / 고요가 깊어지자 웅크리고 있던 숲이 안개처럼 몸을 푼다 / 불신의 늪이 꿈틀거려서다”에서 보듯 바로 뛰어난 이미지의 형상화를 이루고 있다.

 

최우수작으로 선정한 박신열의 ‘봄의 부활’은 호흡이 짧다는 점을 뺀다면 대상감이다. “구멍 난 몸둥이에 꽃이 핀다”라든가 “어둠이 웃자 / 사내의 장미와 / 일용할 햇빛이 쏟아졌다” 등은 압축된 놀라운 이미지의 그림이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김명주의 ‘봄날의 기도’와 김복현의 ‘새벽길’도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 중 시적 구성에서 가장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 좀 더 정진하면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밀알상(장려상)으로 선정된 14편의 시들도 수상작 4편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꾸준한 시적 정진을 바라마지 않는다. 당선 또는 입선된 분 모두에게 축하의 말을 드리며, 밝은 문운을 빈다. 아울러 시적 표현을 응축한 많은 작품들을 보내준 응모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 심사위원장 전규태(시인, 문학평론가,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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