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의 시간 / 안상학
지나온 날들을 모두 어제라 부르는 곳이 있다
염소처럼 족보도 지금 눈에 있는 어미나 새끼가 전부
지나간 시간들이 모두 무로 돌아간 공간을 보며 살아가는
황막한 고비에서는
그 이상의 말을 생각할 그 무엇도 까닭도 없으므로
남은 날들을 모두 내일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펌프가 있는 어느 작은 마을
사람이라곤 물을 길어 가는 만삭의 아낙과
뒤따라가며 가끔 돌아보는 소녀뿐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황황막막한 고비에서는
굳이 그 이상의 말을 만들 어떤 필요도 없으므로
시간과 거리를 물으면 금방이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운전기사와 길을 잃어도 쥬게르 쥬게르(괜찮아 괜찮아)만 연발하는 가이드를 보면서 나는 모든 지나간 날들을 아래라 부르던 내 할머니의 시간에도 새겨진 게 분명한 몽고반점과, 싸울 때면 쥐게라 쥐게라(죽여라 죽여라) 악다구니를 쓰던 할머니의 지워지고 없는 몽고반점을 떠올리며, 고비에다 주막을 차리겠다는 사내와 쏘다닌 열흘 동안을 나는 모든 지나간 날들과 아직 오지 않은 나날들을 어제와 내일로 셈하며 동업할 생각을 해 보았다
안상학 시인의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가 제23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고 창비는 11일 밝혔다. 본심은 이시영·장철문·정끝별 시인이 맡았고, 예심은 신철규 시인과 오연경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단은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한 시대를 증언하면서도 우리의 미래를 투시해내고 있다”며 “삶의 터전을 민속학적으로 재현해내는 백석 시와의 친연성뿐 아니라, 개인의 삶이 역사적 사실로 변성되는 과정에서 발산하는 시적 에너지가 어떤 담론의 흔적보다도 곡진한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안상학 시인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동시집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 평전 ‘권종대: 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 등이 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5·18문학상, 권정생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받았으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원이 수여된다. 수상소감과 심사평 전문은 ‘창작과비평’ 겨울호(194호)에 실린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신동엽문학상·창비신인문학상과 함께 11월에 열린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축소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자야(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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